대한제국기와 식민지시기 해외 유학생들은 한국 근·현대지성사는 물론 항일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이들은 다양한 사조와 근대학문을 수용하여 근대국가 건설에 매진했다. 나아가 광복 이후 독립국가 건설론도 모색하는 선각자로서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이들은 단순하게 개인적인 지적 능력 향상에만 머물지 않았다. 물론 일부는 외세에 의존하는 등 민족적인 공분을 초래하는 인물도 있었다. 지금까지 청산되지 못하고 한국사회 ‘뜨거운 감자’로서 생채기를 남긴 민족반역자인 친일파가 그들이다. 하지만 지식인들 상당수는 많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조국광복을 위하여 진력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미·소 냉전체제에 의한 혼란기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정부 수립을 위한 초석이 되었다. 자유민주주의가 심각한 도전을 받자 과감히 자신들 기득권을 버리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투쟁에 나섰다. 이러한 범주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상산(常山) 김도연(金度演, 1894~1967)이다. 김도연 인생역정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민지시기 2번에 걸쳐 옥고를 겪은 독립운동가이자 광복 이후 여러 차례 국회의원과 초대 재무부장관을 지낸 정치인이었다. 일본과 미국 유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경제전문가이기도 했다. 이를 교육과 산업 진흥을 위하여 실천하였을 뿐만 아니라 직접 기업을 경영하였다. 학문적인 전문성은 국가 경제정책을 수립·집행하는 수장으로서 역할이 가능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머리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