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위는 영조 45년(1769) 8월 11일, 서울 장흥방에서 신대승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자는 한수(漢叟), 호는 홍전(葒田)이라고 하였다가, 뒤에 자하(紫霞)로 바꾸었다. 그가 어렸을 대에 경기도 시흥의 자하산 별장에서 글공부를 하였기 때문이다. 정조 23년(1799)에 실시된 알성시의 문과 을과에 합격하여, 그 이듬해 4월에 의정부 초계문신(抄啟文臣)으로 발탁되었다. 등과하기 이전에 정조가 신위의 재주를 듣고 편전에 불러 그 재주와 학문을 시험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10년 동안 한직에 머물다가 순조 11년에야 비로소 내직으로 옮겨 정3품에 올랐다. 이어 청나라로 가는 주청사의 서장관이 되어 북경에 따라갔는데, 이 연행(燕行)이 신위가 ‘유소입두(由蘇入杜)’의 기치를 내세운 동기가 되었다. 신위는 북경에서 당대의 석학인 담계(覃谿) 옹방강(翁方綱, 1733~1818)과 사귀게 되어, 청나라의 시학(詩學)에 대하여 물었다. 이 만남에서 감동을 받고는 돌아와서 그때까지의 글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는 곡산부사를 거쳐서 나이 쉰에 춘천부사로 부임하였는데, 이 동안에 가장 많은 책을 읽었고, 가장 많은 시를 지었다. - <신위의 시와 인생에 대하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