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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 내 마음에 담은 시선詩仙들을 기리며 -박이도

십 년 만에 부치는 글월 -김광균 선생님에게
“시를 육성으로 낭송하자” -수연 박희진 선생님
시집 『소등』에 대한 부러움 -김형필이 이 탄이 된 사연
후백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투명인간으로 돌아온 초개에게 -김영태의 추억을 더듬으며
김광협 형, ‘만년필’은 갖고 가셨나요 -아버지 쏙 빼닮은 기자 따님 김예령 맹활약 중
애증의 무덤을 넘어 -늦봄 고 문익환 목사님에게
“어느 먼 곳에서 운명이 날 오라 손짓 하네” -박화목 선생님의 과수원 길을 걸으며
포커페이스의 암호 찾기 -모더니스트 이승훈의 비대상(非對象)이란
희미한 기억 속에 온유돈후한 시풍 -김구용 시인의 유불 사상에 기반한 시적 행적
정신적 사표가 되어 주신 고고한 선비정신 -한시와 영시를 두루 창작한 김종길 선생
누가 마광수를 죽였는가 -유서가 된 메멘토모리, 광마 왜 그랬어
지구에서 본 우주공간, 환상적인 관찰과 상상력 - 재기발랄했던 ‘상징시인’ 황석우
“올바른 말은 올바른 정신을 낳습니다” -필체의 품격 눌당 하희주 시인
한지에 먹물이 스며들 때 - 무아의 경지에 -수묵화의 대가 송수남 형에게
이미지와 상징 조작에 시적 개성 돋보여 -먼 이국 땅에서 한 줄 부음으로 떠난 박남수 시인
외유내강의 지사형 언론인 이경남 -유주현의 ‘조선총독부’를 대필하기도
독재 정권에 맞서 온 몸으로 저항시를 쓴 사나이 -후배 시인 조태일과의 인연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것이다” -스승 조병화 선생님의 이모저모
자유로운 산문시의 지경을 확장하다 -정진규의 매너리즘을 경계한 시정신의 내면일기
일출봉에서 하늘나라로 사라지다 -요절한 천재 시인 김민부
차돌같이 단단하고 이슬같이 투명한 영혼의 숨결 -모국어로 고독의 끝을 풀어낸 시인 김현숭
시인·언론인·정치인의 삼색 인생을 살다 -아직 뚫리지 않은 경의선을 두고 떠난 시인 강인섭
판소리로 불태운 한의 ‘서편제’ - “종교냐 문학이냐” 말년에 소회 밝히기도 한 이청준
광야의 예언자, 현실과 맞서는 시정신 -수석(水石)에서 자연의 오묘한 세월을 명상한 시인 박두진
다정다감했던 성품의 시인이자 언론인 -식물성에의 소묘로 자연계를 조망한 박성룡
지사형의 신앙 동지 -왜곡된 4.3사건 등에 대한 비정에 앞장 선 작가 현길언
“내 앞에선 남을 흉보지 마라” -시로 등단해 소설가로 대성하신 은사 황순원
전영택 목사를 스승으로 모셨던 방송작가 주태익 -백합보육원 시절 강양욱 등과 월남 후의 인생 역정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단의 풍운아 -자상한 맏형처럼 문협 이사장으로 활약했던 황 명
문예 전 장르를 아우른, 불세출의 명성 -신봉승의 사극 〈조선왕조 5백년〉 등
자유분방했던 한글세대의 기수 김 현 -시인의 감성을 꿰뚫어 보는 긍정의 시학 펼쳐
마음이 가난했던 무욕무심의 시인 임인수 -시집 『땅에 쓴 글씨』는 문우들이 출판해
“동리 선생의 귀는 당나귀 귀” -이데올로기 문학은 참된 문학이 아니라고 주창한 김동리 선생
불상을 연상케 한 과묵의 시인 -‘현대시학’으로 문단의 대부 역을 자처했던 전봉건 선생
이즈음 우리의 말글살이는 어떻습니까? -첫 스승, 한실 이상보 박사님
서사시 「우체부」로 주목받은 모더니스트 -현장 비평으로 현대시의 판을 키워놓은 문덕수 교수
작가적 역량, 화려한 상 복의 김문수 -“친구야, 내 친구 문수야”
시집 『종려』로 문단 데뷔 -아동문학가로도 활약한 신앙 시인 석용원
노선의 경지에 이른 잠언시 -토착어로 살려낸 우리의 성정(性情) 서정주
한글세대의 상징적 아우라 -「생명연습」 등 특유의 문체 계발한 김승옥
1960년대 한국기독교 문단을 이끌어 낸 공로자 -북에서 활동했던 김조규 시인과 형제 시인 김태규
언어 절제, 토속어의 상징성을 살려 -시로 확인해 가는 박목월 시인의 영생의 길
모국어의 향수 속에 역이민을 꿈꾸던 소설가 -송상옥, L.A 이민지에서 쓸쓸히 사라지다
시와 서예를 아우른 영활한 서예가 박종구 -서사체로 엮은 천지창조의 비의
「화수분」은 왜 그 시대의 대표작인가? -늘봄 전영택 작가의 이력
허무주의자 오규원의 시적 패러디 -30년 만에 뜯어본 연하장
생명 위기의 시대에 힐링의 전령사 -민들레의 영토에 뿌린 사랑의 씨앗 이해인 수녀

Letters
황동규 시인 | 박남철 시인 | 김주연 평론가 | 조정래 작가 | 김병익 평론가 | 성찬경 시인 | 조병화 시인 | 나태주 시인 | 장사익 노래꾼 | 김시철 시인 | 윤석산 시인 | 장 호 시인 | 최승범 시인 | 김준오 평론가 | 유재영 시인 | 서정춘 시인 | 유경환 시인 | 허영자 시인 | 한영옥 시인 | 이광석 시인 | 우한용 교수 | 임인수 미망인 신효숙 | 김광휘 작가 | 방송작가 주태익 | 2020년 이근배 시인이 보낸 신년 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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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국내 최초로 시도된 전혀 새로운 형식의 산문집
평생 받아 소장한 육필서명본과 주고받은 편지

최고 지성인들의 육필을 편집에 담은 마흔여덟 분의 시담(詩談)
이 책은 1959년 자유신문,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60여 년간 문학 활동을 펼쳐 온 박이도 시인이
평생 받아 소장하고 있는 육필서명본 중에서
그 필자들과 맺었던 ‘특별한’ 인연을 공개한 산문집이다


이런 형식의 책은 국내 최초이다. 박이도 원로시인이 이번에 집필한 『내가 받은 특별한 선물』에는 당대를 대표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시인 작가 화가 평론가들의 친필 서명이 모두 공개될 뿐만 아니라 그 서명본을 보내준 분들과의 인문학적 교유의 일화들이 곁들여져 있는데, 이는 예술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해온 분만이 집필할 수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증정본 필자들이 두 분 외에는 모두 작고한 분들이어서 더욱 이런 자료들이 소중한 이유이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시인들의 이름만 들어도 놀라울 정도다. 김광균, 서정주, 조병화, 박희진, 이탄, 오규원, 마광수, 박목월, 김영태, 박성룡, 김광협, 김종길 박화목, 김종길, 이승훈, 조태일, 김현승 등 한 분 한 분이 모두 한국 현대시문학사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아닌가. 또한, 이경남, 강인섭, 문익환 같은, 시인이면서 언론인 목회자로 활동했던 분들, 전영택 황순원 이청준, 김승옥 현길언 같은 당대 최고의 작가들, 한 시대 방송가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신봉승, 주태익 선생, 여기에 화가 송수남, 서예가, 박종구, 수녀 이해인 등…은 우리 시대의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인문학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다.

최고 지성인들의 보물 같은 친필들을 독자와 함께 나눈다!

“그의 시편들은 그 미소처럼 담백하고 고결하며, 그 마음처럼 순결하고 고아하여 우리에게 크나큰 위안을 준다.”_작가 조정래

이 책은 1959년 자유신문,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60여 년간 문학 활동을 펼쳐 온 박이도 시인이 평생 받아 소장하고 있는
육필서명본 중에서 그 필자들과 맺었던 ‘특별한’ 인연을 공개한 산문집이다


이런 형식의 책은 국내 최초라는 점이다. 박이도 원로시인이 이번에 집필한 『내가 받은 특별한 선물』에는 당대를 대표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시인 작가 화가 평론가들의 친필 서명이 모두 공개될 뿐만 아니라 그 서명본을 보내준 분들과의 인문학적 교유의 일화들이 곁들여져 있는데, 이는 예술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해온 분만이 집필할 수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증정본 필자들이 두 분 외에는 모두 작고한 분들이어서 더욱 이런 자료들이 소중한 이유이다.

고등학교 후배인 마광수 시인,
요절한 <기다리는 마음>의 천재시인 김민부,
평생의 두 분 스승인 소설가 황순원, 시인 조병화,
민주 투사(?) 허명을 남기고 떠난 ‘아름다운 서정시인’ 문익환 목사,
<민들레의 영토>에 시의 씨를 뿌린 이해인 수녀,
방송가의 풍운아 신봉승 방송작가 등등
한 분 한 분 모두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48명의 인연과 비화를 정감 있는 문장으로 불러오고 있다.

글이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야말로 박이도 시인을 위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만큼 박 시인의 인간적 품격과 시의 격조가 혼연일체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성직자적인 고요한 미소로 평생을 살아온 고운 마음의 소유자 박 시인의 시편들은 그 미소처럼 담백하고 고결하며, 그 마음처럼 순결하고 고아하여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를 준다.(작가 조정래)

저자는 머리말에서 “오랜 세월 문단의 문객들과 나눈 육필서명본을 비롯해 편지 글과 엽서 글을 모아놓은 서첩(書帖)이다. 문단의 큰 어르신들부터 가까운 선후배들까지, 서로 나누었던 나의 사적 교우록이 되는 셈이다. 신문학이 싹트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단의 기라성들의 시화(詩畵)와 육필을 귀감삼아 정면(正面)교사로 삼고자 함이다. 이분들의 시문(詩文)에 담긴 저마다의 문학적 발상법과 시정신에서 많은 교훈을 받은 바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어르신들의 예술과 인격을 기리고 명심불망(銘心不忘)하고자 한다. 특히 친필 육필로 받은 이분들의 함자와 필체를 한 자리에 모아 나 스스로에게 귀감이 되는 서첩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육필서명 필자
강인섭 김광균 김광협 김구용 김동리 김문수 김민부 김승옥 김영태 김종길 김태규 김현 김현승 마광수 문덕수 문익환 박남수 박두진 박목월 박성룡 박종구 박화목 박희진 서정주 석용원 송상옥 송수남 신봉승 오규원 이경남 이상보 이승훈 이청준 이탄 이해인 임인수 전봉권 전영택 정진규 조병화 조태일 주태익 하희주 현길언 황금찬 황명 황석우 황순원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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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14] 나는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황제皇帝와 나」라는 시로 당선했다. 1월 4일자 지상에 작품이 실리자 전국에서 편지가 답지했다. 뜻밖의 서신들이었다. 그 중 소포 하나가 배달되었다.
난생 처음 받아본 소포, 보낸 이의 함자銜字는 김광균金光均. 소포를 뜯어보니 고급 양장본의 『시집 와사등詩集瓦斯燈』이 나왔다. 시집의 저자 김광균이란 함자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먼 옛날인 듯 마음속에 무한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시집에 편지 봉투가 끼워져 있었다. 봉하지 않은 봉투에서 뽑아 보니 만년필로 쓴 손글씨 편지로, 두 장에 이르는 장문이었다. 그 내용은 ‘우리 시단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요지의 격려의 글이었다. 나는 이 편지를 제일 먼저 서정주 선생님에게 보여 드렸다. 그리고 신촌 주변에 몰려 하숙하던 마산 출신 송상옥, 이제하, 강위석 등과 송수남 등의 친구들의 요청으로 이 편지를 건넸는데, 그 후 편지는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읽고 적어 보며 그렇게 암송하던 시 한 편 「설야雪夜」가 동動사진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속 표지에는 머리말에 해당하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와사등瓦斯燈에 처음 불이 켜진 것은 20년 전의 일이다. 떠나온 지 오랜 내 시의 산하山河 저쪽 일이라, 지금도 등불이 살아 있는지 이미 꺼진 지 오래인지 알 길이 없다.
- ‘십 년 만에 부치는 글월’ 중에서
[P. 27] “이제 내가 무슨 행복이 있겠는가/ 이 일밖에는/친구여 이 소식마저 없거든/다시는 나를 찾지 말게나.”
이 서시는 돌아가시기 16년 전의 시집 『우주는 내 마음에 있다』의 서문이다. 이 시집을 받아보면서 ‘아! 이 어른이 묘비명을 미리 써 놓은 것이구나’ 하는 예감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서시는 내가 시를 지어 시집으로 출판하는 일만이 행복이라는 말씀이다.
- ‘후백后白 황금찬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중에서
[P. 64~65] 회가 열린 명동 주변의 한식점에서 처음 만났다. 광수의 얼굴 표정은 졸리운 사람 같았다. 내가 나온 대광고등학교의 한참 후배였다. 내가 시집 출판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에 잠시 뜸을 드리더니 “선배님, 학교 선생님들이 하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시집에 미칠 광狂 자를 넣어 스스로 필명으로 사용했다.
그가 말한 ‘학교선생님’이란 작가 이범선 선생님을 말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후 세간엔 19금급 음란물 수준의 작품을 계속 발표하며 사회적 풍속사범으로 쇠고랑을 차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의 근황이 한동안 뜸했다. 내가 시서화전을 준비하면서 마 교수에게 내 시에 삽화를 곁들인 서화를 부탁했더니 두 폭을 그려 보내왔다. 친필 서명한 『광마집』은 분실한 듯 찾지 못해 아쉽다. 대신 마 교수가 그려준 서화 한 폭을 보여 드린다.
- ‘누가 마광수를 죽였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