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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수호자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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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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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고전적 명저: 교회권력을 정면 비판하다
서양 중세 시기인 14세기, 이탈리아 파도바 태생의 한 의사가 정치적 사건에 깊숙이 연루되면서 서양 정치철학사에 길이 남을 고전적 명저를 남긴다. 바로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Marsilius Patavinus)가 쓴 대작 『평화의 수호자』(Defensor Pacis, 1324)이다. 특히나 이 책은 학계로부터 ‘근대 민주주의의 선취’, ‘중세 전통과의 결별 및 관용 사상의 선구’, ‘평신도 정신의 형성 원천과 기독교적 가치의 파괴’, ‘교황청의 악습을 고발해 독일 종교개혁의 선구’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른바 교회권력(교권)과 정치권력(속권)이 정면으로 충돌한 1323년부터 1324년 사이에, 교황 요한 22세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정치적 사건 ― 이 사건보다 250여 년 전에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 사건(1077년)을 통해 우리는 이미 두 권력 간의 정면충돌을 본 바 있는데, 두 세력 간의 긴장과 갈등은 중세 내내 지속되었다 ― 이 이 책의 저술 근간이 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당시 교황 22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루트비히의 황제 대관을 방해하고, 그를 이단자로 선언해 세속권력을 박탈하려 했지만, 마르실리우스는 단순히 교황에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황제 루트비히의 권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정치적 프로그램’을 제시하려는 야망으로 이 책을 썼다.

인간의 평화로운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책이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평화로운 삶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목표가 제시되어 있다. 이 세상에서의 행복과 저 세상에서의 행복이 그것이다. 전자를 실현하는 것은 그것의 기초적 조건인 평화로운 삶을 통해 가능하다.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정치학이 제시한 규칙을 따름으로써 그것에 도달할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은 구원을 얻음으로써 저 세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희망한다. 이에 대해 마르실리우스는 국가의 틀 안에서 인간의 지상적 행복을, 그리고 시민공동체 속에 편입된 교회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회권력은 지속적으로 정치권력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어두려 했는데, 그 최고의 표현이 바로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에 의해 1302년 교령(敎令) ‘우남 상크탐’(Unam sanctam) ― 교황에게는 두 개의 칼, 즉 영적인 칼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칼까지도 갖고 있다고 선포 ― 을 통해 명시화된 바 있다. 이 논리에 따른다면, 영적 권세뿐만 아니라 세속권력도 교황의 사법권 아래 있기에 국왕은 자신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정론적 주장의 배후에는 모든 가치, 특히 정의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신(神)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법은 신법에 종속되고 자연은 은총에 종속된다는 논리로 귀결되었다. 신정론자들은 이렇게 정치적 현상을 신학적 질서에 짜맞춤으로써 교황의 권세 충만의 필요성을 입증했다.
마르실리우스의 모든 기획은 신정주의를 극단적으로 ‘세속화’하는 것에 있었다(이런 측면에서 그는 이슬람 사상가 아베로에스의 지적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진다). 그에 따르면, 황제는 신정론자들에 의해 교황에게 부여된 것과 같은 역할과 기능을 누려야 한다. 당시 신정론자들에게 황제는, 교황이 자신의 통치의 편의를 위해 그에게 집행권을 위임한 단순한 관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마르실리우스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즉 교황은 총회의 단순한 관리자에 불과하며, 일반적으로 성직자들은 국가 내의 도구적 부분이 된다. 이렇듯 마르실리우스의 사상은 기존 사회질서를 재해석한 것이었고 이 질서의 기초를 인정하되, 그 현실적 조직을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평화의 수호자』가 본질적으로 부정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그가 황제의 권능을 너무나 잘 아는 적대자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적대자가 지향하는 목표를 오로지 황제에게로 옮겨 놓고자 한다. 단테(dante)가 『제정론』(De monarchia)에서 말한 것처럼 황제는 진실로 로마인의 군주라 불리는 세상의 감독자인 것이다.

마르실리우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이슬람 아베로에스주의에 자신의 사상적 토대를 두다
구체적으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면, 책 전체 구성은 두 이야기로 대별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국가를, 두 번째 이야기는 교회를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만 실상 마르실리우스는 같은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본다. 즉 이 책의 주제는 시민적 평화 및 그 평화를 교란하는 분쟁인데, 그는 두 이야기의 관계를 상호 보완적으로 파악한다. 그는 두 이야기에서 동일한 주제에 대해 첫째, 상이한 방법과 관점에서 ― 즉 이성과 계시 ― 다룬다. 둘째, 그는 두 이야기의 동일한 주제를 그것의 일반적 원인과 특별한 원인으로 각각 다룬다. 첫 번째 이야기는 평화와 분쟁의 일반적 원인을, 두 번째 이야기는 분쟁의 특별한 원인, 그러니까 교황청의 터무니없는 권위 주장에 대해 상세하게 다룬다.
이와 같은 논리 전개를 위해 마르실리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전통적인 독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법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아랍 세계에서 건너온 아베로에스주의이다. 아베로에스주의는 한마디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기독교 신앙과 충돌하는 경우에 이성적 진리와 계시적 진리의 이중(二重) 진리를 주장했는데, 마르실리우스의 아베로에스주의는 기독교 신앙과는 철저히 무관하게 이성에 의해서만 문제를 탐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렇듯 마르실리우스는 정치적 평화를 보존한다는 세속적 목표를 궁극적으로 신학적 목표로부터 분리해냈다. 결국, 그는 신학적인 것과는 상이한 콘텍스트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행위, 가치를 분석해 새로운 정치적 토대를 제공한 것이다.

『평화의 수호자』, ‘근대성의 길’을 제시하다
이 책은 단테에서 니콜라우스 쿠자누스(Nicolaus Cusanus, 1401~64)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정치사회적 구조를 이상화된 제국의 틀 안에서 반(半)신화적, 반유토피아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중세 사상의 전통에 속한다. 이 이상화된 제국의 메시아적 성격은 마르실리우스 같은 사상가에게는 정치적 해법으로 남았는데, 『평화의 수호자』는 바로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 지평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에 대한 중요하고도 역설적인 증언이다. 그가 보기에 당대의 뒤떨어진 정치 조직 체계에 의지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중세적 보편주의의 가치에 대한 집착을 증언하는 것인데, 이런 보편주의적 구조와 제도를 가진 사회적 집단으로서의 교회를 그는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사실, 그는 이미 쇠약해지기 시작한 적과 싸운 것이었으니, 1378년부터 1417년까지 지속된 가톨릭교회의 대분열은 이를 확인해 줄 것이었다.
아울러 이 책은 정치와 종교 사상의 후대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지닌 이념과 교훈을 전파했는데, 일종의 ‘근대성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5세기의 종교회의주의(Conciliarism) 운동과 16세기 종교개혁은 어느 정도 이에 빚지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