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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4

1부 / 인간 조광조
01 | 양사를 파직하여 언로를 여십시오
대간의 본분은 언로를 여는 것 20 | 인왕산 치마바위 전설 25 | 구언에 응한 것은 불문에 붙여야 28
02 | 정정당당하게 과거시험을 보다
벼슬보다 학문에 정진하리라 33 | ‘춘부’로 생원시 장원급제 36 | 성균관 입재하여 학풍을 북돋우다 43 | 성균관 추천으로 벼슬길 열려 45
03 |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이 하나이다
추천받을 바엔 정식 과거 보고 출사 51 | 세 단락으로 나눠 책문에 답하다 56 [ 참고 ] 조광조의 알성시 책문과 대책 전문 62
04 | 광란의 임금을 갈아치우다
무소불위의 훈구세력 73 | 예측불허의 악행 저지른 연산군 78 | 삼대장 주도로 일어난 중종반정 81
05 | 나면서부터 아름다운 자질이 있었다
이성계와 사돈 맺은 명문가 85 | 떡잎부터 남달랐던 바른 아이 87 | 홍인우와 퇴계의 《행장》 90 | 남곤과 멀리하라며 먼 곳으로 이사 92 | 신분 뛰어넘어 갖바치와 교류 94 | 청백리 숙부 영향 많이 받아 96
06 | 부부는 인륜의 처음이요, 만복의 근원이다
축첩도 안 하며 부부간 금실 과시 101 | 허물 아내 내쫓기 전에 교화가 우선 102
07 | 조선 도학의 계보를 잇다
늘 바른 자세로 책 읽어 107 | 희천에 유배 중인 사림의 영수 109 | 절실한 마음으로 김굉필 문하에 들다 112
08 | 오로지 소학만 읽다
소학, 소학교의 필독 수신서 118 | 스승 허물 지적한 건치묘식 사건 120 | 어렵기로 유명 한 《근사록》도 읽어 122
09 | 엄숙하고 바른 자세로 글을 읽다
사서삼경 중심으로 읽다 126 | 세상 사람들과 교류 129 | 맹자 호연장, 그 의미를 깨치다 132
10 | 역모에 연루되다
김공저 · 조광보 옥사 사건 137 | 조광조, 젊다는 이유로 풀려나 141

2부 / 개혁가 조광조

01 |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하다
언로 닫은 대간과는 함께 일할 수 없어 147 | 훈구세력 견제를 위해 조광조 중용 150 | 임금의 학문 성취는 나의 임무 154 | 조광조의 학문하는 방법 156 | 군자와 소인을 가려 써야! 159 | 개혁 통해 성군으로 만들 수 있어 164
02 | 도가로는 어둠을 밝힐 수 없습니다
종묘제례에 올릴 소가 죽은 사건 167 | 유교 나라에서 도교식 제사는 안 될 일 171 | 소격서 혁파가 개혁의 출발 173 | 속고내 체포 정정당당하게 해야 176
03 | 정몽주·김굉필 문묘 종사 추진하다
고려에 충절을 지킨 도학의 영수 180 | 마침내 정몽주 문묘 종사 185
04 | 개혁을 위한 숨은 인재 발굴에 나서다
개혁의 출발은 인적 개혁부터 187 | 개혁 세력 확보를 위해 현량과 실시 190 | 현량과로 신진인사 28명 선발 196 | 향약, 적극 보급 나서 199
05 | 공훈 없는 가짜공신을 퇴출하다
수면 위로 꺼낸 정국공신 개정 문제 203 | 과다한 공신 책봉 205 | 재정 상태 위협하는 포상 207 | 엉터리 책봉으로 공신 117명으로 늘어 210 | 2, 3등 일부와 4등 모두 위훈 삭탈 212
06 | 중종, 밀지를 내리다
주초위왕 사건 216 | 훈구세력의 조직적 반격 220 | 중종, 사림파 척결 밀지 내려 223 | 소인이 군자 해쳤다 해도 상관하지 않아 225 | 훈구세력, 중종의 표신 갖고 신무문으로 입궁 228
07 | 붕당죄로 체포되어 유배되다
야밤에 체포조 들이닥쳐 232 | 오직 나라를 위해 충성했을 뿐 235 | 사사에서 장 백 대 후 유배로 감형 240
08 | 임금을 어버이처럼 섬겼노라
전라도 능주로 유배 떠나 244 | 양팽손과 교류하며 유배 생활 247 | 사사 어명을 갖고 온 의금부도사 253
09 | 용인 선산에서 영면에 들다
장례 치르자 무지개가 해를 둘러 257 | 조광조 명예 회복 260

[ 부록 ]
행장 266
조광조 연보 281
조광조 관련 이미지 282
참고문헌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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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하는 사람, 조광조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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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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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감내해가며
개혁에 목숨바친 조광조의 삶과 마주하다

시대를 초월해 현재적으로 요구되는 조광조의 개혁 정신


개혁은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꼽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개혁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냈던 적이 있었던가. 번번이 변죽만 요란하게 울리는 데 그쳤다. 개혁의 대상이었던 기득권층의 강력한 반발을 결국 극복해내지 못하고 중간에 주저앉았던 것이다. 더욱이 우리의 근현대 역사를 관통했던 시대정신인 민주화와 산업화과정을 거치면서 상식과 보편성 같은 가치는 되레 사치로 여기는 풍토가 만연해졌다. 그러다 보니 효율성과 속도만 치중했고, 그 결과 많은 적폐가 만들어졌다. 그 적폐는 이제 부메랑이 되어 성장과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적폐는 개혁의 대상이지 계승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조광조의 개혁 사상은 어떤 특정 지도자나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현재적으로 요구되는 시대정신이다.
이 책은 ‘개혁’이라는 낱말과 떼래야 뗄 수 없는, 조선 중종 때 대사헌을 지낸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삶과 사상을 다룬다. 조광조는 ‘개혁’이란 화두가 필요한 시대의 격변기 때마다 소환되는 역사 인물이다. 특히 국정 과제의 일 순위로 으레 ‘개혁’을 꼽을 수밖에 없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단골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이전 정부와 차별화를 이루고 잘못된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개혁의 동력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조광조의 삶과 사상에 접근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특히 어린 시절의 경우처럼 사료의 절대 부족으로 실체적 사실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는 역사적 사실과 사실 사이의 빈 곳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 ‘팩션faction’ 형식을 빌려 조광조의 삶과 사상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감내하며
개혁에 목숨 바친 조광조의 삶과 마주하다


조광조는 애초 벼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학문에만 뜻을 두었었다. 무오사화로 함경도 희천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김굉필에게서 사사한 그는 고려의 정몽주와 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로 이어지던 도학道學의 계보를 이었다.
성균관 추천으로 벼슬길에 나가게 되자 그는 공정하지 않다며 정식 등용문인 과거시험을 보았다. 알성시에서 을과 장원으로 급제하고 사간원 정언을 제수받은 그는 때마침 폐비 신 씨중종의 조강지처 복위 문제로 조정이 시끄러울 때, 언로를 막은 대간들과 함께 일할 수 없다며 사직을 배수진으로 치고 잘못된 조치에 강력하게 맞섰다. 결국, 대간들이 바뀌고, 구언에 응했던 박상과 김정은 유배에서 돌아와 복직되는 것으로 이 일은 마무리된다. 이렇게 조광조는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후 유교 국가에서 도교를 섬기는 일은 안된다며 소격서 철폐를 추진했고, 개혁의 전위대로 삼을 사림 세력의 등용을 위한 현량과를 도입하는 한편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약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도록 하는 등 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순풍에 돛단 듯 차근차근 개혁을 추진해 나가던 조광조는 마침내 아무도 달지 못했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나섰다.그동안 수차례 논의는 있었지만 실제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정국공신 책봉 과정에서 있었던 문제를 정면으로 개정하기로 했던 것이다. 정국공신靖國功臣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한 중종반정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 주는 공훈이었다. 그런데 이때 책봉된 117명의 공신 중 상당수가 아예 반정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책봉되었었다. 공적이 있으면 상을 받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반정 삼대장박원종·성희안·유순을 중심으로 한 권력자들의 가족 친지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책봉된다면, 이를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조광조는 거짓 공훈자들의 공신 책봉을 삭탈하기로 했었다. 물론 중종과 공훈자들이 속해 있는 훈구세력은 집요한 반격을 가했다. 그럼에도 조광조는 거침없이 꿋꿋하게 삭탈 작업을 밀고 나가 결국 해내고 만다.
하지만 그 개혁의 칼날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세력을 겨눈다. 조광조 일파를 제거하라는 중종의 밀지를 받은 훈구세력은 야밤에 신무문을 통해 궁에 들어가 이들을 잡아들이라는 중종의 교지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조광조를 비롯한 개혁 세력들에게 붕당의 죄를 씌워 잡아들였던 이 사건을 역사는 기묘사화己卯士禍라고 부른다. 기묘사화로 조광조는 전라도 능주에 유배되었다가 한 달 만에 이런 절명시를 남기고 사사된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였고, 나라를 내 집처럼 근심하였네. 해가 아래 세상을 굽어보
니, 충정을 밝게 비추리愛君如愛父 憂國如憂家 白日臨下土 昭昭照丹衷”

그는 개혁하는 사람, 조광조이다.

학문에 뜻을 두었다가 관직을 추천받자 불공정하다며 정정당당하게 과거를 보고 벼슬길에 나선 대쪽 선비, 허물 있는 아내를 내쫓기 전에 교화가 우선이라는 휴머니스트, 사간원의 일개 정언임에도 ‘직분’을 잃은 대간과 함께 일할 수 없다며 사직 투쟁을 벌여 존재감을 드러낸 강직한 사람. 그는 진보적인 사람 조광조이다.
‘도를 밝히는 것[明道]’과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하는 것[愼獨]’을 좌우명 삼아 일단 꺼냈다면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되는 개혁을 위해 거침없이 내달렸던 사림의 영수, 백성들의 교화를 통해 이상 사회를 실현하고자 백성들의 자치규약인 향약 보급에 나섰던 유학자, 서슬 퍼런 기득권층의 기세에 눌려 누구도 함부로 손대지 못했던 거짓 공훈을 삭탈했다가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던 행동하는 양심. 훗날 문묘에 종사 된 시대의 사표. 그는 개혁하는 사람 조광조이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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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0] 조광조는 자신의 평소 갖고 있던 실천 덕목을 꺼내 설명한다.
“전하께서는 ‘도를 밝히는 것[明道]’과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하는 것 [愼獨]’을 마음 다스리는 요체로 삼고, 그 도를 조정에 세우면 기강은 어렵지 않게 설 것이며, 법도도 어렵지 않게 정해질 것입니다. 공자가 ‘석 달이면 가하고, 삼 년이면 이룰 수 있다’고 한 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도를 밝히는 것’과 ‘혼자 있을 때 조심하는 것’은 조광조의 좌우명이나 다름없는 덕목이다. 명도는 그가 도학주의자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도를 밝힌다’는 우주 만물은 하늘의 도에 따라 운행되는데, 인간 세상을 하늘의 뜻이 펼쳐진 이상세계가 되도록 한다는 지치주의至治主義를 지향한다. 지치는 《서경》 〈군진편〉에 나오는 ‘지치형향 감우신명至治馨香感于神明’에서 따온 말로, 잘 다스려진 인간 세계의 향기는 신명을 감명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 세 단락으로 나눠 책문에 답하다, 중에서.
[P. 102] “부부는 인륜의 처음이요, 만복의 근원이므로 관계되는 바가 지극히 중대하오. 부인의 성질이 음침하고 어둡고 무지하여 비록 잘못하는 바가 있더라도 남편으로서는 마땅히 바른 도리로 거느려 감화시켜서 가정의 도를 함께 이룩하는 것이 후덕한 일이오. 만약에 혹시라도 모범이 되는 도리를 다하지 않고 갑자기 내쫓으려 한다면 박정한 데에 가깝지 않겠소. 향차 한 집안의 윤리에 관한 일은 바깥 사람이 감히 논의할 수 있으니 스스로 헤아려서 처리하는 것이 좋겠소.”
이 말은 들은 진사는 탄복하여 돌아갔다고 한다. 잘못이 있다고 무조건 박정하게 내쫓기보단 그 허물을 고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또 도와주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 조광조의 생각이었다. 내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렇게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허물을 발견하면 그 즉시 감정적인 반응과 대응을 하기 마련이다. 즉각적인 감정적 대응은 화해보다는 이별을 불러오기 마련이고. - 허물있는 아내 내ㅤㅉㅗㅈ기 전에 교화가 우선. 중에서.
[P. 128] 조광조는 특히 스승김굉필의 스승인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발표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비판 했다가 주검마저 무덤에서 파헤쳐져 부관참시를 당했던 일을 떠올리곤 몸서리를 쳤다. 조선 시대 4대 사화의 신호탄이었던 무오사화였다. 물론 중종반정으로 달라진 것도 있었다. 연산군의 포악한 전제정 치가 끝나고 억눌려 있던 선비들의 기세가 조금 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됐다.
조광조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악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개혁을 해야 한다. 그 개혁 은 성리학이 널리 구현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 사서삼경을 중심으로 읽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