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인도-파키스탄 분립 역사 재구성과 종교 공동체 간의 화합 모색_박소영 1. 머리말 2. 인도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 세속주의에 대한 도전 3. 힌두-무슬림 공동체의 형성과 갈등의 정치화 및 분립 4. 구술 자료를 통한 분립 역사의 재구성 5. 맺음말
09과테말라 원주민 학살 기억의 소환과 미국의 ‘문화투쟁’_박구병 1. 머리말 2. 과테말라의 내전과 원주민 학살 3. 멘추의 증언 4. ‘문화투쟁’으로서의 멘추-스톨 논쟁 5. 맺음말
10영국의 영국적 가치 교육 논쟁: 시민 내셔널리즘 혹은 인종 제국주의?_강선주 1. 머리말 2. 영국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영국 정체성의 창안 3. 영국 민주시민교육의 딜레마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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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갈등과 역사교육 = Social conflict and history teaching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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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해석의 산물인 역사적 사실을 세계는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가?
각국의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역사 이해의 다양성이 아닌 이해 과정의 다양화를 도모한다
교육과정 개편과 교과서 개발에 국가(nation)나 주(state)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나라에서는 국가가 교육과정 및 교과서를 통해 ‘다수’의 시각에서 역사를 독점하거나 ‘소수’의 역사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 화합을 추구하여 ‘다수’의 시각에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소수’의 목소리를 다루려 노력하기도 하고, ‘다수’가 자행한 폭력을 반성하고 ‘소수’와 함께 과거사를 재서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나라도 있다. 한국과 중국은 현대사 해석 문제가 학문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논쟁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민간인에게 가해진 폭력, 터키의 경우에는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 프랑스는 노예제, 독일은 헤레로 전쟁, 인도의 경우는 파키스탄 분립 과정, 캐나다는 원주민 기숙학교 문제, 미국에서는 과테말라에서 일어난 원주민 학살 기억에 대한 역사적 해석, 영국의 경우에는 인종갈등과 테러 등의 사회문제가 역사교육과 시민교육의 향방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사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교육은, 견해의 차이를 억지로 통일하거나 좁히려 하기보다 역사해석의 경험을 통한 다원적 관점의 역사 인식을 통해 화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책은 각국의 서로 다른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역사 이해의 다양성이 아니라 이해 과정을 다양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책속에서
[P.40] 국정 역사 교과서 파동이 일단락된 다음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역사 전쟁’으로 인한 사회갈등의 해소를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국정화 이후의 역사학과 역사교육을 논의하는 심포지엄을 학회와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열었으며,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는 역사 갈등을 역사교육의 발전적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개별 학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글들도 다수 발표되었다. 역사 갈등이 주로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진 만큼, 그 해소 방안도 학교 역사교육을 대상으로 제시되었다. 그렇지만 대통령 기념관이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립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사 갈등은 학교 역사교육뿐 아니라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교육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따라서 현대사 갈등의 해소를 위한 역사교육의 방안은 학교뿐 아니라 사회에서의 역사교육에도 적용을 모색해야 한다.
[P. 53] ≪빙점≫ 사건의 발단이 되는 「
[P. 85] 현대화와 역사 교과서」
는 중산대학(中山大學) 철학과 교수였던 위안웨이스(袁偉時)가 쓴 글이다. …… 그의 근현대사 해석은 ≪빙점≫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중국공산당의 주류적 역사해석과 달랐다. …… 학계에서는 그의 주장이 학술적 견해의 하나로서 용인되었으나 역사 교과서 등으로 대표되는 공식적 역사 인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즉, 태평천국이나 의화단 등 민중운동을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교과서의 인식이 대중의 일반적 역사관이라고 할 때, 위안웨이스의 글이 대중을 독자로 하는 지면에 실릴 경우 인식이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현으로 편성된 이래 지금까지 인간의 존엄과 공생, 평화라는 지난한 과제를 안고 있다. 오키나와는 독립 왕국에서 일본의 영토로,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13년간 미군의 점령 아래 있다가 다시 일본에 반환된 섬,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기지의 섬, 강대국의 군사적 대결의 장소로 “일본이면서도 일본이 아닌” 지역이다(아라사키 모리테루, 2016). 오키나와 주민들은 지금도 여전히 본토 일본인으로부터 차별과 소외를 받고, 주둔해 있는 미군 병사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 오키나와의 역사에서 해석이 치열하게 경합하는 사건은 태평양전쟁기 오키나와 전투 기간에 일어난 오키나와 민간인 희생, 이른바 집단자결이 대표적이다. 오키나와 전투 시기 민간인 희생과 그에 대한 해석은 제국주의 일본의 전쟁 기억뿐만 아니라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자국의 역사를 인식하는 관점이 충돌하는 대표적인 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