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강화도 가서 살자’고 한 남편의 제안이었다. ‘한번 살아보고 싫으면 도로 나오면 되지’ 싶어 용감무쌍하게 어린 자녀 둘을 데리고 강화도 허름한 구옥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남편은 농사짓고 아내는 도시로 출퇴근하는 시간을 15년 동안 이어간다. 저자는 서울에 있는 잡지사에 다니며 주말에는 농사짓는 일상을 꾸리다가 어느 날, 긴 머뭇거림을 끝내고 농부로 전업한다. 농부로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농사, 툭 까놓고 말할게요』는 오랜 시간 귀농귀촌을 경험하고 관찰한 저자가 농부로 전업하며 쓴 농부 분투기이다. 땅 한 평 없이 농업노동자로, 임대 농부로 일하다가 친환경 농장을 꾸린 농부 부부의 기록과 꿈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귀농귀촌을 꿈꾸거나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과 격려를 보낸다. 귀촌의 좋은 점과 어려움, 내 땅의 중요성과 좋은 땅을 고르고 만드는 방법, 작물 선정과 판매 등 사업성까지 꼼꼼하게 짚어보며 농촌에서 농부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안내한다.
자연의 힘과 시간의 힘을 알려준다. 농부가 건네는 치유의 에세이
중장기 계획은 물론 매년, 매월, 매주, 매일의 계획을 세우고 그걸 달성하려고 자신과 주변을 닦달하는 습관 나의 모든 노동과 지식과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보는 습관 사람의 말을 다 믿지 않고 사람 사이의 거리를 지키려는 습관 한가하고 심심한 순간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고 바삐 움직이려는 습관 남이 하는 일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려는 습관
이것은 저자가 꼽은 도시생활자의 습관이다. 그리고 이런 습관들이 농부로 사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자연과 시간의 섭리에 따라 순응하고 기다리는 삶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기다림, 여유, 협력 등 농사에 필요한 마음들을 짚어본다. 그리고 이런 마음들은 쫓김의 삶을 사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것들이기도 하다. 소음과 불빛 없는 감각의 휴식, 멈춤의 순간, 자연의 속삭임 등을 섬세하게 그리며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돕는다. 이렇게『농사, 툭 까놓고 말할게요』는 단순히 농부와 농사를 소개하는 가이드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건네는 손길이기도 하다.
농부가 지구를 구할 수는 없겠지만 도움은 되고 싶어 친환경 농부의 농사짓는 마음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쓰지 않고 퇴비를 직접 만들어 밭에 뿌린다. 농장에는 두더지와 고라니가 다녀가고 메뚜기와 개구리가 함께 산다. 꿀벌을 모셔오기 위해 양봉을 배우며 자주 벌에 쏘이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꿀벌의 모습에 감탄한다. 저자는 친환경으로 도라지, 고추, 고구마를 키운다. 그리고 그가 키운 작물은 더 달고, 더 단단하고, 더 고소한 맛을 뽐낸다. 비록 수확량은 화학비료를 쓴 작물보다 적지만 맛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일반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존경과 고마움도 잊지 않는다. 기후 위기 시대, 식량 주권의 중요성이 부상하고 있는 요즘, 저자는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농부라고 말한다. 우리 땅에서 우리가 먹을 것들을 생산하고 나누는 농부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되도록 자연을 해치지 않고 농사짓는 친환경 농부들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토로한다. 비록 농부가 지구를 구할 수는 없겠지만 나빠지는 걸 조금이라도 늦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이 책에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든 해야 하는 농사의 중요성을 주요하게 다룬다. 그리고 권한다. 베란다와 옥상 한켠에서라도 푸성귀를 심어보자고, 우리는 모두 농부의 후손들이니 해낼 수 있다고 다독인다.
책속에서
[P. 19] ‘시골 가서 농사나 지어라’라든가 ‘나도 시골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농부는 경제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문턱이 낮은 직업이다. 농사지을 땅만 있으면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배워야 하는 고급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특수작물, 과수 등 일부는 배우기 매우 어려운 기술이 필요할 수 있다), 감독관이나 상사 밑에서 눈치 보며 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심으면 적든 많든 거두게 된다.
[P. 31] 농사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기다림과 포기를 익히게 한다.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이다. 서둘러도, 악착같이 덤벼들어도 그렇다. 자연의 힘, 시간의 힘은 도전의 대상이 아니라 순응하고 따라야 할 섭리다. (중략) 삶이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온전히 내 손으로 (조직의 힘이 아닌) 이룰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명상과 깨달음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농사를 짓는 내 어깨와 머리 위로 먼지처럼 내려앉는다. 그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