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직전까지 ‘위안부’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인 그녀의 발자취 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故) 강덕경의 삶 조명
『‘기억’과 살다』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이 책은, ‘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강덕경의 일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널리스트 도이 도시쿠니(土井敏邦)가 쓴 이 책은, 일본에서 『“記憶”と生きる 元「慰安婦」姜徳景の生涯』라는 제목의 원서와 동일한 이름의 다큐멘터리 영화와 함께 2015년에 발간되었다.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대로, 1990년 전후부터 한국사회에서 일본군‘위안부’ 이슈는 상당히 주목받는 사회문제로 시작되어 정치·외교문제로 확대된 데 반해 여자근로정신대 피해는 대중에게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90년대 초입에는 정신대가 ‘위안부’를 의미한다고 생각해서 사실의 왜곡도 생겼었고,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경우에는 순결이데올로기가 뿌리깊은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 본인들이 ‘순결을 잃은 가치없는’ 여성으로 비칠까봐 두려워하거나 오해로 인한 피해로 불안한 삶을 살기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주목받기를 꺼려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국사회가 그들을 일제의 노동 동원 피해자로서의 측면에 그다지 주목하지도 관심주지도 않은 채 해방 70여 년을 보내온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위안부’ 피해자인 강덕경이라는 한 사람의 반평생을 쫓은 기록이다. 1994년 12월부터,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인 1997년 1월까지의 생활과 말을 기록하고, 덧붙여 1998년에는 강덕경의 귀국 후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위안부’문제는 머지않아 해결되거나 잊혀질 줄 알았으나, 일본군‘위안부’문제는 사라지기는커녕 20년 이상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이제는 중대한 국제문제로까지 되어 있다.
1997년 2월 2일, 한일 간 국민기금 논쟁이 한창 진행 중인 와중에, 특히 연초에 기금 측이 7명의 한국인 피해자에게 은밀하게 지원금을 건네준 것이 밝혀져서 한일 양국 정부 간에 불협화음을 야기하고, 시민단체와 피해자 간에, 또 기금을 수령하였거나 수령 의사가 있는 피해자와 기금에 반대하는 피해자 사이에 갈등과 분열이 들끓던 시기에, 향년 69세 강덕경은 ‘끝까지 싸워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강덕경 하면, 지금도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 운동에서 곧잘 투사의 이미지로 소환되곤 한다. 그러나 이제는 운동으로 수렴되는 피해자로서가 아니고, 오롯이 강덕경이라는 인간에 집중해 보았으면 한다.
또한 한국사회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군인에 의한 ‘강제연행’이라는 동원방식이어야 ‘위안부’피해자로 인정하려는 수용자(한국사회를 포함한 증언 청취자)의 태도로 인해 일부 피해자의 동원 관련 증언 내용이 바뀌는 현상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피해자 자신의 문제라기보다 여성인권보다 사회인식을 우선하려는 운동이나 사회의 문제이다. 정상가족이데올로기나 스테레오 타입의 피해자상, 그리고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집단으로 그려지기 쉬운 아시아 피해자” 또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집단’”에서 벗어나 ‘과장도 허식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서의 한 개인으로, 피해자를 기억하고 사유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도록 한다. 강덕경의 삶은 우리가 성찰하고 사유해야 할 과제를 던져 주고 있다.
“위안부 제도는 필요했다”고 득의양양하게 말하는 하시모토 씨에게 ‘위안부’로 끌려간 당사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아픔’이 보이기는 하는 걸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이야말로 책장에 잠들어 있던 이 기록을 세상을 향해 물을 때라고 -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