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치매를 인간에게 가장 비극적이고 비참한 병이라고 말합니다. 주변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보다 더욱 비참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자아를 잃는 것.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인간의 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최후의 보루입니다. 자신을 잃는 것보다 큰 슬픔이 어디 또 있을까요.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치매의 경우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합니다. 비참함 속의 비참함입니다. 평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기록하는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기억은 금방 사라질 수 있지요. 그러나 기록은 다릅니다. 또한 인간은 기록을 통해 기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기억과 기록은 상반된 것이 아닌,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내가 남기는 글들은 기록이 되어 나 그리고 누군가에게 또 다른 기억으로 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내 기억과 존재가 희미해지더라도 말입니다.
“명석한 두뇌보다 몽당연필이 낫다.”라는 경구가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