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트랜스젠더 여성 운동선수가 있다. 남성부와 여성부 중 어느 경기를 뛰어야 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이른 논의임을 알지만 기획하고 출간해야 했다. 이 책은 트랜스젠더의 스포츠 참여에 대해 이념과 정치 성향, 편견, 혐오가 가린 시시비비를 엄밀히 논해보는 책이다. 명쾌한 답이나 시원시원한 주장은 없다. 그만큼 팽팽한 문제를 다뤘다. 성 소수자의 포괄적 스포츠 접근성 강화는 많은 이들이 지향하는 바다. 다만 주제와 대상을 넓히면 쉽게 다양성에 대한 담론으로 귀결된다. 포괄적 논의로 가는 길목에 까다로운 공정 담론 하나가 숨어있다. 바로 ‘시스젠더 여성’의 ‘엘리트 스포츠’ 리그에 ‘트랜스 여성’이 참여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물음이다. 메달엔 감정이 없고 기록만 있을 뿐이다. 공론화할 것은 산적했지만 이 문제에 좁게 집중한 이유다.
늘 나뉘어 있는 여론은 상수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했다. 제도적으로 문제가 없는가, 생물학적으로 정말 불공정한가 등은 이 책이 다투고자 하는 핵심 쟁점이다. 특히 가장 언론의 주목도가 높았던 로렐 허버드와 리아 토머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허버드가 2020 도쿄 올림픽에 등장하며 도화선을 놓았다면 토머스는 이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다. 그들이 정말 경기에서 불공정한 이익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찾기 어려웠고 특히 국내에는 잘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에서 특히 토머스의 사례가 크게 회자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에너지 위기·인플레이션 등 거시 환경으로 인해 지지율 고전을 면치 못하며 공화당의 약진을 허용했다. 이 문제 역시 중간선거를 앞두고 선거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문화 전쟁의 틀로 논의되고 소비되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의 파고가 높은 상황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의 번복도, 소수자들의 권리도 선거 전략에서 뒷순위로 밀렸다. 토머스의 사례는 언제든 로 대 웨이드 판결처럼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판례가 중요한 영미법에서 이 문제가 만약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들의 이념에 따라 결판난다면 트랜스젠더, 특히 트랜스 여성의 엘리트 스포츠 참여 기회는 장기간 박탈당할 것이다.
보통 어떤 국가에서 생활 체육의 특정 종목이 발달하면 프로·아마추어 리그 등 엘리트 스포츠에서 강점을 보이게 마련이다. 다만 그 역도 성립한다. 특히 소수자에 있어 엘리트 스포츠와 스포츠 스타의 상징성은 크다. 진로의 문제이자 롤 모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생활 체육이라는 저변에 성 소수자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생활 체육은 신체·정신 건강 문제로 이어진다. 바라보며 꿈을 키울 수 있는 대상과 환경의 부재는 학생 또는 저연령층의 생활 체육 참여 의지를 위축하고 동류 집단으로부터의 차별을 부를 수 있다. 이 문제는 다시 건강 문제로 이어진다. 악순환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더 많은 성 소수자를 엘리트 스포츠에서 만나는 것이 스포츠의 공정 신화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점이다.
대표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 책을 펴내며 당사자성이 있는 박한희 변호사의 의견을 담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덕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평과 공정을 쉽게 배치(背馳)시키는지 돌아본다. 이 책은 엘리트 스포츠가 추구하는 정의(justice)에 대한 고찰이지만 훗날 성 소수자 엘리트 선수가 등장할 한국 사회엔 훨씬 더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물음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 정의인가?”
*북저널리즘은 북(book)과 저널리즘(journalism)의 합성어다. 우리가 지금, 깊이 읽어야 할 주제를 다룬다.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시하고 사유의 운동을 촉진한다. 현실과 밀착한 지식, 지혜로운 정보를 지향한다. bookjournalism.com
책속에서
[P. 11] “엘리트 스포츠는 승패가 냉정하게 갈리는 세계다. 허버드의 등장은 엘리트 스포츠, 그것도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에 큰 난제를 안겼다.”
[P. 18] “2020 도쿄 올림픽에는 역대 가장 많은 성 소수자 선수가 출전했다는 사실이다. 최소 172명으로 집계되는데, 2012년 런던 올림픽에는 23명, 2016년 리우 올림픽에는 56명이 출전한 것에 비해 그 수가 크게 늘었다. 이전의 모든 올림픽에 참가한 성 소수자 선수를 합친 것 보다 그 수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