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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을 출간하며

1장 친가에서 25년
-유년 시절
-내가 겪은 6·25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공부 시작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정진우 교수님과의 만남
-대학생활
-가정교사 생활
-졸업 독주회
-사랑하는 친정 형제들

2장 결혼과부산 정착
-초량동 신혼집
-시부모님과 시댁 식구
-삼성약국
-동해상호신용금고
-아들 원배, 영배
-시부모님의 별세

3장 대학교수 생활 Ⅰ
-대학강사가 되다
-부산에서의 첫 독주회
-대청장 연주홀
-전임교수 임명과 바빠진 교단생활
-산업대학교 콘서트홀
-부산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
-국립교향악단과의 협연
-부산대학교 교수로
-예술대학 음악학과 출범
-세 번째 독주회
-독일 쾰른 음대 연수
-만학의 꿈을 품고 대학원 진학
-미국 노스웨스턴 음대 연수
-미국 여행과 모차르테움 여름 연수
-귀한 경험이 된 해외 연수

4장 대학교수생활 Ⅱ
-귀국 후의 바쁜 나날
-가은아트홀 개관
-Muse 실내악단 결성과 가은 피아노 페다고지
-부산 피아니스트들의 그룹 활동
-예술대학 부학장
-예술대학 학장 시절
-예술대학 음악관 개관
-유럽 순회 여행
-정년음악회
-논문과 CD 발행

5장 정년 후의 나날들
-나의 신앙생활
-다시 시작된 신앙생활
-남산제일교회
-남편에게 부어 주신 성령 세례
-김해 단감농장(반곡농원)
-고성 고향 생가 개축
-부산음악콩쿠르
-단발머리 친구들

부록
-부산 음악인 단체
-기고글
-개인 독주회와 공연
-표창과 수상
-부산시 공연장 개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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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세월이 가져다준 선물들 : 피아니스트 나광자 회고록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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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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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피아니스트 나광자 교수
선물처럼 지나온 80년 인생 이야기


피아니스트 나광자 교수는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를 졸업한 후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에 재직했다.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과 교수 재직 중 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했으며, 부산 피아노듀오협회 회장, 한국피아노학회 부산영남지부 회장 등을 지냈다.

한평생 피아니스트로, 교육자로 활발히 활동한 나광자 교수는 부산, 서울 등지에서 17여 회의 개인 독주회를 개최했으며 대만,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하와이 등 해외에서도 독주회를 가졌다. 부산시립교향악단과의 두 번의 협연을 비롯하여 서울 국립교향악단(현 KBS교향악단),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신포니에타 등과 협연하였다.

이 책은 자연인 나광자 교수의 개인사부터 피아니스트로 살아오며 그가 부산 음악계에 남긴 무수한 발자취를 담았다.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등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지나온 개인의 소회는 물론, 음악대학조차 찾아보기 힘들던 시절 우리나라 1세대 피아니스트로이자 교육자로 활동하며 만나게 된 음악사의 일면 또한 엿볼 수 있다. 정진우, 제갈삼, 이상근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들과의 인연을 비롯해 대청장 연주홀, 산업대학 콘서트홀, 부산시민회관과 문화회관, 부산대학교 음악관 등 부산지역 연주홀의 생생한 역사 또한 담고 있다.

나광자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사랑받는 아내이자 며느리, 어머니로서 건강히 가정을 꾸리고 피아니스트로서 수많은 공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80년 세월이 마치 하나님의 선물 같았다 회고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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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구는 어느 큰 냇가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 냇물을 사이에 두고 아군과 북한군 사이에 국지전이 벌어졌다. 우리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냇가 땅콩밭에 누워 있었다. 큰 냇물 사이로 총알이 쌩쌩 날아다녔다. 피~잉 피~잉. 우리 식구 외에도 피란민이 꽤 많았는데 사람들이 다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더니 얼마쯤 지나 총알 소리가 멈추었다. 우리 모두는 서둘러 일어나 그곳을 벗어났다. 작은 짐을 진 나도 어른들을 따라 산모퉁이 길을 돌아갔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쌩’ 하고 내 옆을 지났다. 순간 놀란 나는 길 옆 수로로 퐁당 빠져 버렸다. 물이 없었기에 다행이었다. 총알이 얼마나 가까이 지나갔는지는 몰라도 어찌나 놀랐던지 그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내가 겪은 6·25
음악 선생님과 상의해 학교에 피아노 구입을 적극적으로 건의하여 결국 허락을 받았다. 학교에서 피아노 살 돈을 계획하여 기금을 마련했고, 드디어 우리 대전서여고에도 피아노가 들어왔다.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로, 외국 물품을 들여와 우리나라에서 조립한 것이었는데 성능은 좋았다. 나는 그 피아노로 입시를 준비했다. 3학년 겨울방학 입시가 가까울 때는 하루 8시간씩 피아노를 쳤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연습하고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학교에서 6시까지 연습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새벽 1시까지는 남폿불켜고 공부를 했다(전깃불은 8시가 되면 꺼졌다). 이렇게 연습하고 공부하여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고등학교 시절
신혼 살림을 차린 초량동 집은 초량동 산 중턱에 있었다. 지금은 옛 부산 부두가 매립되어 높은 빌딩에 가려졌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집에서 초량 앞바다 멀리 등대 사이로 드나드는 배가 훤히 보였다. 1965년은 박정희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한 해이기도 하다. 부산 부두는 월남 파병군들을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우리 집에서는 사람들이 흔드는 태극기가 휘날리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만큼 꽤 높은 산 중턱에 넓게 자리 잡은 집이었다.
-초량동 신혼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