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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난단티』, 50년 이후
서문
밤의 전투
죽은 자들의 행진
심문관과 마녀 사이의 베난단티
사바트에 간 베난단티

부록
1972년 이탈리아어판의 저자 후기 | 한국어판 서문
옮긴이의 말 | 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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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난단티 : 16세기와 17세기의 마법과 농경 의식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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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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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사의 문을 연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명저

“우리가 이기면 그해에는 풍년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면 흉년이 됩니다.”
회향단을 든 베난단티는 수숫대를 든 마녀들과 싸웠다.


우리는 역사에서 벗어나 즉각 접할 수 있는 개인을 만나리라 예상하는 곳에서 오히려 공동체에 전해내려오는 전승의 힘은 물론 사회생활과 연결되어 있는 희망과 필요성을 만난다. (174쪽)

이제는 이름조차 사라져버린 유럽 변두리의 민간신앙이 굴절되고 변형되고 왜곡되어 마침내 소멸해버린 과정을 통해서도 훌륭한 역사가 쓰일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게 다가왔다.
_조한욱, 「옮긴이의 말」에서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이탈리아 한 지역의 재판 기록을 추적하다
미시사의 문을 연 저명한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첫 책 『베난단티』가 교유서가 어제의책 시리즈 중 하나로 다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긴즈부르그가 27세에 썼던 박사학위 논문을 묶은 책으로,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이탈리아 북동부의 프리울리 지역에서 벌어진 농민들의 이단 심문 기록(베난단티-마녀에 대한 재판)을 바탕으로 하여 당시 농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았고, 그 이면에 비친 사회상을 연구하였다.
원서는 1966년에 출간돼 역사학계와 독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국내에서는 2004년¨『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도서출판 길)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 출간하여 국내 역사연구자들과 일부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으나 지속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절판되었다. 그러나 원서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영어권에서도 판을 달리하여 출간되었는데, 2020년에는 50주년 기념판으로 이탈리아 ADELPHI EDIZIONI사에서 펴냈다. 이 책에는 50주년 기념으로 쓴 글이 추가돼 있다. 이 글은 긴즈부르그가 2017년 피사고등사범학교 학술발표회에서 기고했던 글을 보완한 것으로, 이후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번 한국어판에도 이 글을 번역하여 게재했다. 이 글에는 긴즈부르그가 ‘베난단티’를 연구하게 된 배경이 잘 드러나 있다. 긴즈부르그는 유대인으로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에서 박해받았던 의식적, 무의식적 경험이 있었는데 자신이 박해받았던 경험이 베난단티의 박해 경험과 유사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 책을 집필한 무의식적 동기였을 수도 있다고 밝힌다. 그뿐 아니라 역사학, 사회학, 신학, 심리학, 정치이론, 인류학, 종교학 등 방대한 학문 분야에서 제기된 문제점들과 그에 대한 자신의 대응을 잘 정리하여 알려주고 있다.

1959년 가을에 피사고등사범학교 학생이었던 나는 학교의 도서관에서 갑자기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정확한 순간을 기억하는 데, 나는 유리로 된 선반에 몸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라기보다는 세 가지의 결심이었다. 첫째로 나는 역사가라는 직업을 추구하게 될 것이며, 둘째로 나는 마녀사냥의 과정을 연구하기 시작할 것이며, 셋째로 나는 마녀사냥이라는 것 자체보다는 그 희생자에, 정확하게는 마술의 혐의로 고발당한 남자와 여자들에게 초점을 맞추리라는 것이었다.
_「『베난단티』, 50년 이후」에서

오랜 감금과 유도심문으로 마녀가 돼버린 베난단티
긴즈부르그는 17세기로 지나던 무렵 이탈리아 프리울리라는 지역에서 농민들에 대한 이단 재판 기록을 추적해 연구했다. 긴즈부르그의 이 연구는 역사학의 한 분야가 되는 미시사의 개척이자 새 연구방법의 지평을 열었다. 재판을 받던 농민들은 계절이 바뀌는 축일마다 몸에서 벗어난 영혼으로 회향가지를 들고 수숫단을 든 마녀들과 전투를 벌였다. 그 전투에서 농민들이 이기면 그해는 풍년이 되고, 마녀들이 이기면 흉년이 된다. 이 농민들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로 스스로 ‘베난단티’라고 부른다. 그들은 악마를 숭배하는 마녀와 싸우며 가톨릭을 수호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재판은 신과 악마의 대결 구도 속에서 베난단티는 교구 성직자의 고발로 심문을 받게 된다.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이들이 오랜 감금과 유도심문을 겪으면서 마녀라고 자백하게 되고 범죄자가 된다. 긴즈부르그는 지금은 사라진 베난단티가 풍년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유라시아 대륙에 퍼져 있던 샤머니즘과 같다고 여겼다. 이 책은 이교도에 대한 억압과 지배층의 방어적인 면으로 민중문화의 독자성과 생명력이 어떻게 소멸하는지 잘 보여준다.

나는 희생자들의 신앙과 태도에 대해 무엇인가 알기 위해 그들의 감정과 동화되려는 힘에 이끌려 마녀재판을 연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금방 인식할 수는 없다 해도 이런 종류의 계획에는 역설적인 측면이 있었다. 여기에는 유도신문과 고문을 수단으로 하여 재판관들이 희생자들에게 씌운 문화적 고정관념을 희생자들의 탓으로 돌리게 될 위험이 있었다. 나는 내 최초의 질문과 재판기록의 성격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에 대한 인식이 또다른 간격의 해결 방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재판관의 질문과 베난단티의 대답 사이의 간격을 말한다.
_「한국어판 서문」에서」

※ 교유서가 어제의책 시리즈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잊었고 잃어왔다.
이제는 사라진 것들을 복원할 시간이다.
세상의 모든 책은 어제의 책이다.
어제의 책은 오늘을 해석하고 내일을 비춘다.
그러므로 어제의 책은 오늘의 책이고, 내일의 책이며, 언제나 살아 있는 책이다.
교유서가 어제의책 시리즈는 절판된 비운의 도서를 찾아 독자에게 다시 선보인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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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 나는 50주년이 되기 이전에도 1966년에 나온 나의 첫 책 『베난단티』로 여러 차례 되돌아가곤 했다. 거의 집착에 가까운 이 반복적인 탐구는 자서전으로 기록하고 싶은 충동이라기보다는 방법론적인 충동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나 자신과 그 당시의 나 자신 사이의 연속성을 염두에 두면서 어떤 의식적·무의식적 동기에 의해 그 책을 쓰려는 시도를 선택했는지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프로이트 이전의 순진한 시각으로 당시까지 무시되었던 것처럼 보였던 무의식적 요인을 강조했던 것인데, 그것은 역사적이고 대단히 권위적인 방법에 근거한 많은 생각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P. 35] 이 책에서 나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전반까지 프리울리 농민사회의 종교적 태도와 넓은 의미의 망탈리테를 극히 제한적인 관점에서 연구했다. 그것은 특정의 강압을 받은 결과 점차 마법으로 동화되어갔던 민중신앙의 핵심에 관한 역사이다.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 속의 에피소드이지만, 마법과 그에 대한 박해라는 일반적인 문제를 잘 밝혀준다.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개인들의 태도와 행동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 자료를 살펴본다면 생생하고 흥미로운 개별 사례의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갈 위험이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매 단계마다 ‘집단정서’ 또는 ‘집단심리’와 같이 일반적이고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기보다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자 한다. 프리울리 지역의 이 증언은 수십 년 또는 수백 년까지 지속되었던 큰 흐름이 종종 무의식적이기도 했던 대단히 개인적·사적인 반응과 계속하여 교차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P. 42] 한 세기 동안 베난단티는 마녀로 변질되었고 풍년을 꾀하려는 밤의 만남은 폭풍과 파멸로 귀결된 악마의 사바트가 되었다. 따라서 프리울리에서 악마적인 마법이 기존 풍요제의 변형된 형태로부터 나왔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유추를 통해 이 결론을 유럽의 다른 지역까지 확대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비록 단편적이고 제한적이라 할지라도 이 결론은 미래의 연구를 위한 실제적인 가설로 도움이 될 것이다. 어쨌든 광범위하고 핵심적인 지역에 이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은 마법의 민중적 기원 문제에 새로운 접근방법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