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禮記≫의 대표적 주석서, 오경대전五經大全의 하나 ≪예기≫는 사서오경四書五經의 하나로 동양문화의 핵심인 예禮를 설명한 책이다.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은 명明나라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 때 호광胡廣 등에 의해 편찬된 오경대전五經大全의 하나로 ≪예기≫의 대표적 주석서이다. 이 책은 진호陳澔(元)의 ≪예기집설禮記集說≫을 바탕으로 송宋나라와 원元나라의 학설들을 모아 만든 책이다. 진호는 주자朱子의 사전四傳 제자로, 성리학性理學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기존 ≪예기≫ 해석의 주류였던 정현鄭玄(後漢)의 주注와 공영달孔穎達(唐)의 소疏를 산삭刪削하고 성리학자들의 학설을 종합하여 편찬한 책이 바로 ≪예기집설≫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필독서로 당시 ≪예기≫ 해석의 표준이 되어 과거科擧에서 주요 교재로 채택되었고, 경학연구經學硏究에도 기본 교재로 쓰였다.
≪역주 예기집설대전 3≫을 출간하며 ≪역주 예기집설대전 3≫은 한학자漢學者이자 한문고전 번역으로 명망이 높은 성백효 선생과 오랫동안 ≪예기≫를 연구해온 이상아, 연석환 연구원이 함께 번역하였다. 성백효 선생은 오랜 시간 ≪예기≫를 연구하였으며 그 결과물이 본회의 오서오경독본五書五經讀本 ≪예기≫로 출간된 바가 있다. 본서의 번역은 한문 원전의 원의를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역주譯註에는 국내외 연구 성과를 폭넓게 반영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으며, 원문은 우리나라 전통 방식으로 현토懸吐하였다. 그리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50여 개의 도판圖版을 수록하였다.
공자孔子와 증자曾子의 예禮에 대한 문답, 세자世子의 예법, 동양사회의 이상향 ≪역주 예기집설대전 4≫에서는 제7권인 <증자문曾子問>, 제8권인 <문왕세자文王世子>, 제9권인 <예운禮運>을 다루고 있다. <증자문>은 증자曾子와 공자孔子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예禮에 대해 물은 것이 많은데, 예제禮制 가운데 의문 나는 점이나 미비한 점 등을 다루고 있다. <문왕세자>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세자世子 시절의 법도를 모범으로 삼아 세자의 언행이나 예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예운>은 예의禮儀와 예제禮制의 기원이나 연혁, 운행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동양의 이상사회를 제시한 대동大同이 실려 있다.
책속에서
대동大同, 동양의 이상사회 대도大道가 행해질 때에는 천하를 공유물로 여겨 어진 이와 능한 이를 가려 뽑으며 신의信義를 강습講習하고 화목을 닦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기의 친속을 친애할 뿐만이 아니고 자기 자식을 사랑할 뿐만이 아니어서 노인은 생애를 잘 끝마침이 있게 하고 장성한 이는 쓰일 곳이 있게 하며 어린이는 자라는 바가 있게 하였다. 그리고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독신자와 폐질廢疾을 앓는 자는 모두 부양받을 수 있게 하며 남자는 직분이 있게 하고 여자는 시집갈 곳이 있게 하였다. 재화가 땅에 버려지는 것을 싫어하면 싫어하지만 굳이 자기만 <재화를> 보관하여 가지려 하지 않았고, 힘이 자기 몸에서 나오지 않음을 싫어하지만 굳이 자기만을 위해서 <힘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간사한> 꾀가 막혀 일어나지 않았고 도적과 난적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바깥문을 닫지 않았으니, 이것을 대동大同이라 이른다. - ≪예기집설대전≫ 권9 <예운禮運> 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례가 함께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증자曾子가 묻기를 “부모의 상喪이 함께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어느 분을 먼저 하고 어느 분을 뒤에 합니까?”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장례葬禮는 <친족 관계나 지위가 가볍거나> 낮은 사람을 먼저 하고 <친족 관계나 지위가 중하거나> 높은 사람을 뒤에 하고, 그 전奠은 <봉양하는 일이므로> 높은 사람을 먼저 하고 낮은 사람을 뒤에 하는 것이 예禮이다. <장례는 정情을 빼앗는 일이므로 가벼운 분을 먼저 하니> 어머니의 빈殯을 열고 나서 장례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빈殯에 전奠을 올리지 않고 장례를 행할 적에 대문 밖 오른쪽의 평소 빈객을 대접하던 곳에서 슬퍼하지 않는다. 장례하고 돌아와서는 아버지의 빈殯에 전奠을 올린 뒤에 빈객들에게 <빈殯을 열 시기를> 말하고 마침내 아버지 장례의 일을 준비한다.” - ≪예기집설대전≫ 권7 <증자문曾子問> 중에서
부친인 왕계王季의 병환을 근심한 문왕文王 <왕계王季가 병환이 있어서> 평상시의 일을 편안히 행하지 못하는 때가 있으시면 내수內竪가 문왕文王에게 고한다. 그리하면 문왕이 얼굴에 근심하는 기색을 띠고서 길을 다닐 적에 걸음을 바르게 하지 못하셨다. 그러다가 왕계가 음식 드시는 것을 회복한 뒤에 또한 처음의 <낯빛을> 회복하셨다. 밥상을 올릴 적에 반드시 음식의 차갑고 따뜻한 절도를 살펴보셨으며, 밥상을 물리거든 잡수신 바를 물으시고 <궁중 요리사인> 선재膳宰에게 명하기를 “<남은 찬을> 다시 <올리지> 말라.” 하셨다. 선재가 “네.”라고 대답하면 그런 뒤에야 물러가셨다. - ≪예기집설대전≫ 권8 <문왕세자文王世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