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붕괴라는 허상 통일은 정치가 아니고 경제이다 통일은 적대의 종식이지만 갈등의 시작이다 통일은 초불확실성이다. 짧은 평화 그리고 위기의 일상화 신냉전의 도래와 분단의 고착화 북핵의 인질이 되고 있다. 남북간 특수관계가 적대의 근본 원인이다.
책속에서
1953년 초연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기다림을 연극으로 만들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무 목표도 없이 오직 기다림이 목적이 되어버린 인간들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혹시 ‘고도’가 우리가 기다리는 ‘통일’이 아닐까?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주인공 블라드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어느 시골길에서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와 시간이 맞는지,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막연히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고도’라는 인물은 끝내 등장하지 않았고, 단지 소년 전령을 통해 “오늘은 못 오고 내일은 꼭 온다”는 전갈만 받게 된다. 이들은 50년 가까운 시간동안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마치 지난 70여년 동안 ‘통일’이 “누군지도 모르고, 언제 어떻게 오는지도 모른 채 기다리는 행위가 습관이 되어버린” 우리를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분단 이후 매일 ‘통일’을 외치면서 기다렸다. 정치인, 학자, 전문가들은 “통일이 오늘은 못 오고 내일은 꼭 온다”고 하면서 준비하고 있으라고 한다. 그리고 세월은 하염없이 70년이 흘렀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또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연극에서는 ‘고도’가 누구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 물론 작가인 베케트조차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냐는 질문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이처럼 우리 중에 아무도 ‘통일’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어떤 이는 ‘민족통일’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통일 대박’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합의 통일’이라고 하고 다른 이는 ‘흡수통일’이라고 한다. 또 우리는 ‘통일’이 언제 올 것인지를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 블라디미르가 “습관은 우리의 모든 이성을 무디게 하지”라고 말한다. 우리도 ‘통일’을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 우리의 이성을 무디게 하고 있다. ‘통일’이 ‘민족적 사명’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우리의 이성을 무디게 하여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을 막아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미래, 민족의 미래를 오로지 ‘통일’에 기대면서 통일되어야만 우리 민족의 번영과 영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신기루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