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 잡놈 아들을 두었던 부인 16 02_ 온 존재를 바친 여인 22 03_ 한때가 길었던 선진 씨 28 04_ ‘흐흐흥’ 웃기만 하는 부인 32 05_ 파 한 뿌리 애국자 부인 36 06_ 자찌바찌 부인 40 07_ 외간 남자 손을 잡고 기도하던 여자 45 08_ 미칠 이유가 없는 여자 48 09_ 잊고 있던 여인 52 10_ 욕망을 종이 접듯 접은 여자 57 11_ 9월 어느 날 여인 60 12_ 종잡을 수 없던 여인 63 13_ 오십 넘어 폭발한 휴화산 67 14_ 말 같고 소 같았던 도식이 아줌마 69 15_ 첫사랑을 못 잊는 할머니 74 16_ 단점도 장점도 보여 주지 않은 근효 씨 77 17_ 여전히 살아 있는 할머니 82 18_ 아까운 레시피를 잊은 순영이 86 19_ 무궁화호에서 만난 할머니 90 20_ 운세를 바꿔 드리지 못한 여인 93 21_ 달 보고 욕한 어떤 할머니 97 22_ 평생 끼니 걱정만 하다 간 신실한 여인 100 23_ 남편 탓에 화가가 된 아줌마 106 24_ 하느님 말씀을 전하러 온 윤리 선생 112 25_ 말과 돈 때문에 떠난 스님 116
번성하다
26_ 꿈의 융단에 막 발을 들여놓은 서지안 122 27_ 붕어빵 굽는 처녀 126 28_ 야밤에 기어코 떠난 여인 130 29_ 뒤늦게 회의를 품은 여인 135 30_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138 31_ 내 심정과 똑같았을 삼수생 어머니 144 32_ 가슴이 숯검댕이가 되었다는 아주머니 150 33_ 9년이나 떡을 썬 외제아줌마 155 34_ 10월 같았던 여인 160 35_ 밑 빠진 독에 은혜를 붓고 있는 여인 165 36_ 돌멩이 밑을 보고 만 여인 169 37_ 영원한 사랑을 받은 여인 175 38_ 제대로 경멸할 줄 알았던 여인 179 39_ 쓰레빠 신고 내려온 여인 183 40_ 꿈에 나타난 여인 187 41_ 노랑장미를 먼저 찜했던 아이 191 42_ 지조 없던 여인들 195 43_ 빈손으로 다니지 않는 여인 198 44_ 산유화 여인 202 45_ 유례없는 독서왕 206 46_ 인심 따위 쓰지 않는 할머니 209 47_ 제라늄 같았던 김 선생 213 48_ 밤기차 타고 온 멸치장수 217 49_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여인 221 50_ 시간을 뛰어넘지 못하는 여인 225
물들다
51_ 선물을 강요하는 여자 230 52_ 어머니를 포기한 여인 234 53_ 징검다리 여인 238 54_ 쓰지 않을 수 없는 외할머니 242 55_ 사우나민국 여인들 246 56_ 선덕했던 여인 248 57_ 500년 후를 위해 모금한 여인들 252 58_ 손녀를 맡기고 싶은 여인 258 59_ 세상에나 마쌍에나 여인 261 60_ 지혜 충만 명륜 여사님 265 61_ 느닷없이 행복에밀리 269 62_ 이런 여인 273 63_ 딸이라는 여인 275 64_ 첩딸 선심이 278 65_ 따귀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은 여인 282 66_ 교장 사모님 소리도 듣고 사는 여인 285 67_ 사랑에 솔직했던 여인 290 68_ 감히 추녀라 불렸던 여인 294 69_ 깡깡 부인 300 70_ 남아 있는 만큼만 먹으면 된다는 할머니 304 71_ 남도 친구들 308 72_ 고금도 불어 선생님 315 73_ 귀를 씻고 싶게 만든 여인 319 74_ 북간도 여인 김수복 322 75_ 이름이 우뚝 섰던 여인 325 76_ 파초 그늘 아래서 책을 읽는 여인 330
여물다
77_ 재능 측정이 이른 아이 338 78_ 남편을 사기꾼으로 고소한 여인 340 79_ 입으로만 창업하는 아줌마들 346 80_ 잊히지 않고 전해 오는 여인 350 81_ 지긋지긋하지 않게 살다간 여인 355 82_ 정작 필요할 때는 없는 여인 358 83_ 부부싸움에 이골난 여인 361 84_ 7급 공무원 박영남 씨 366 85_ 보통이면서 보통을 넘어선 여인 370 86_ 순간을 뜨겁게 산 체타나 373 87_ 허세 고군분투 회장님 379 88_ 윗집 부인 383 89_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 386 90_ 이촌 언니 390 91_ 주문에 충실했던 여인들 393 92_ 약점 따위는 입 밖에 내지 않는 여인 398 93_ 불현듯 생각나는 여자들 401 94_ 손님을 지켜야 한다는 세신사 411 95_ 요 근래 스친 여자들 414 96_ 나란 여자, 아니 할머니 418 97_ 지혜로운 현숙 씨 431 98_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자 437 99_바뀌었다고 해도 바꿀 수 없다는 작은엄마 440 100_산신령이 되었다는 내가 만난 최초의 여인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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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100명의 여자 이야기입니다 : 이명선 수필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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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하여튼 100명의 여자 이야기입니다》라는 이 책에 실린 100명의 여인들은 ‘어쩌다 만난 그대’가 아니고, 작가의 삶에 ‘하릴없이 등장한 그대’들도 아니고, ‘필연적으로 만나야 할 그대들’이었다. 100명의 그대들은 그녀들이 아니면 들려줄 수 없는 독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작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에세이로 풀어놓았다. 여름날 소나기처럼 짧게, 더러는 팽나무처럼 오래도록 그늘을 만들어 주며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모진 겨울 한가운데 찾아든 햇빛 같았던 분도 있고, 지루한 장마에 널어 논 빨래 같기도 했던, 어두컴컴한 방앗간에서 맡는 고추 냄새 같기도 한, 봄바람에 날리는 버들잎 같던, 갓 핀 2월 매화 같았던, 고스란히 삭풍을 견디던, 조각조각 이어진 조각보 같았던 분… 이 한 분 한 분이 귀한 손님이었음을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는 작가.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도움인 줄 모르고, 배움을 주었는데도 건성 지나친 것을 아쉬워하며 그녀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써서 세상에 남겨 두기로 했다.
이 책은 <움트다>에 스물다섯 분, <번성하다>에 스물다섯 분, <물들다>에 스물여섯 분, <여물다>에 스물네 분의 100가지 이야기를 경쾌하게, 진지하게, 거침없이, 유려한 문장으로 진한 페이소스와 함께 긴 울림을 토해내고 있다.
책은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네모난 창’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컴퓨터의 장방형 검색창이 알고 싶은 욕망을 채워 주는 위력을 발휘하지만, 결코 종이책만큼은 아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온전히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거나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낸 이 책이 또 다른 ‘네모난 창’이 되어 우리 안의 나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책속에서
01_ 잡놈 아들을 두었던 부인
아버지의 약첩은 작았다. 싼 약재를 푸짐하게 넣어 약첩을 부풀리지 않았다. 손님에게 바로 약을 지어 주지도 않았다. 약재의 독성을 빼기 위해 따로 법제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약을 지으러 몇 번씩이나 오가는 일을 귀찮게 여겼다. 그래도 아버지는 화제(和劑)를 내고 며칠 지나서야 약을 주었다. 숙지황이란 약재는 구증구포(아홉 번 쪄서 아홉 번 말리는 작업)를 거쳐야 제대로 된 약효가 났다. 다른 집에서는 이 약재를 적당히 몇 번 찌고 말린 것을 사다 쓴다고 했다. 아버지는 집에서 주로 약재를 만들어 사용했다. 자연 다른 집보다 약값이 비쌌다. “싼 약을 지어 주어도 그 약을 먹고 나았다는 사람이 많은데 왜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느냐. 환자가 오면 약을 지어 주면 되지, 단방약을 일러 주며 시장에 가서 그것을 사다가 달여 먹으라고 그냥 돌려보내느냐. 경옥고를 기껏 비싼 원료 들여서 만들어 놓고 왜 싸게 팔아서 이문을 남기지 못하느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주로 했던 소리다. 당장 5남3녀나 되는 자식들 먹일 쌀과 연탄이 바닥을 보이는데도 환자를 돌려보내는 아버지가 답답해서 손님이 가고 나면 한소리 하곤 하셨다. 한창때는 대학생 여럿에 밑으로 중고등학생이 줄줄이 있었으니 등록금 대기도 벅찼을 것이다. 그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분이 매니큐어 부인이었다.
요즘처럼 사우나가 있었으면 사우나에서 하루 종일 살면서 온갖 세상사를 시시콜콜 물어내어 비판하고 정리하고 판결을 내렸을 부인이다. 한의원이 앞에 있고 뒤에 안집이 있었는데, 이 부인이 오면 뒤에까지 소리가 왕왕 울렸다. 뒤채 마루에 잡으라는 쥐는 건성만성 쳐다보고 온종일 수행자인 양 눈을 감고 있던 고양이도 이 부인의 목소리가 들리면 눈을 뜨고 고개를 길게 빼 보곤 했다. 나는 이 부인의 활력이 싫지 않았고, 그녀가 가져오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앞채로 통하는 문을 열고 있기도 하였다. 매니큐어 바르는 이도 드문 70년대 초에 이 부인은 퍼런 수박색을 진하게 칠하고 다녔다. “얼굴은 흉년에 열린 까지몽탱이 같은데 어디에 복이 들어서 부자로 잘사는지 모르겠다.” 어깨가 조붓하고 얼굴이 얌전하게 생겨서 남의 말은 안 할 것처럼 보이는 분이지만, 건건이 소견을 맑게 밝혔던 우리 어머니 평이다. 매니큐어 부인의 남편은 지금도 건재한 G정기화물 회사 사장이었다. 매니큐어 부인은 외제 물건이 아니면 상대도 않는다고 했다. 수박색 매니큐어를 그 시대에 벌써 발에도 바르고 다녔는데 미국제라고 자랑을 했다.
매니큐어 부인은 어머니 말에 의하면 ‘실삼맞은 부인’이었다. 어머니는 ‘실삼맞다’를 점잖지 못하면서 심히 경망스러워 보이는 사람을 가리킬 때 썼다. 실삼스럽기도 했지만 화끈한 성격이어서 약을 지으면 첩약 정도가 아니라 일 년치 먹을 환약을 짓거나 경옥고처럼 비싼 약을 대량 구매해서 우리 집 경제에 윤활유 역할을 해 주었다. 이런 단골이 몇 집 있었는데 요즘 말로 하면 우리 집 보약 마니아들이었다. 욕도 거침없이 내뿜었다. 특히 자기 아들을 ‘세상에 없는 잡놈’이라고 불렀다. J시 처녀는 다 잡아먹는 귀신이라고도 했던가? 고등학생밖에 안 되는 나이에 깡패질은 기본이고, 집에서 돈도 가져가지 않는데 펑펑 잘 쓰고 다니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 드물어 어미인 자기도 코빼기를 볼 수 없다며 아들 흉을 늘어놨는데, 그것이 흉거리로 들리지 않고 무용담으로 들리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무용담의 주인공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 끝에 감옥에 가야 할 처지에 빠졌다. 매니큐어 부인은 J시의 유력인사를 총동원하여 잡놈 아들을 빼냈다. 아버지의 희미한 친척도 일조를 했다고 들었다. 아버지와 같은 ‘청해이씨’ 일족 중 한 분이 마침 판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분 도움이 컸다고 매니큐어 부인은 명절이면 비싼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잡놈 아들은 파출소에서 나온 후, 그 부인 말에 의하면 잡놈질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일찌감치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속사포로 그간 경위를 설명하던 부인이 답답했는지 댓바람에 한의원으로 달려왔다.
그 아들의 진짜 무용담이다. 감옥에 갈 뻔했던 아들이 부모님 앞에서 선언하더란다. “지금부터 공부해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겠습니다.” “전교 꼴등씩이나 하는 니가 공부를 하겠다고? 키우던 개가 웃겠다, 이놈아! 남 쥐어패지나 말고 엎드려 자빠져 있어.” 그런데 교과서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던 놈이, 빈 가방만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녀석이 공부를 시작했단다. 일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다른 집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한의원에 오기도 하는데 그 아들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매니큐어 부인은 가을이면 가족을 데리고 와서 진맥을 하고 보약을 앞앞이 지어 갔다. 아들보고도 같이 가서 진맥을 받고 약을 짓자고 하였더니 “아랫도리 성성한데 왜 약을 짓느냐” 했다며, 어린놈이 할 소리냐며 ‘갈갈갈’ 웃어댔다. 그 아들을 한 번 보고 싶었다. 부인 말로는 자기와 달리 남편을 닮아 키도 크고 인물이 훤하다고 했다. 매니큐어 부인이 오면 혹시나 하고 바깥채에 볼 일이 있는 체 나가보기도 했지만 아들은 그 부인 말대로 코빼기도 보여 주지 않았다.
그 잡놈이라 불리던 아들은 주변의 예상을 모두 뒤엎고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 그가 했던 공부 방법이 우리 집 한의원에 오는 손님들에게 비법으로 전해졌지만 글쎄, 그렇게 따라서 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우선은 잡놈이 선행되어야 근성을 발휘할 듯싶은데 우리 집 단골손님 아들들은 대부분 양반이었다.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러 다니던 학생 하나는 잡놈 근성은 없었으나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는데, 속은 어떤지 모르겠고 겉으로 보면 점잖은 국회의원이 되어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되었다. 그 정치인의 어머니는 매니큐어 부인을 상스럽다 여겨 어쩌다 한의원에서 만나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매니큐어 부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았고 전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인 어머니를 ‘우뭉여사’라고 비아냥거렸다.
후기 ‘G정기화물’이란 회사는 어느 도시에 가나 간간이 보인다. 그럴 때면 매니큐어 부인이 생각난다. 그 아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의 공부 비법이 대대로 전해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하기는 그의 공부 비법은 알려 줘도 따라하기 힘든 방법이었다.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에게는 비법에 불과했다.
02_ 온 존재를 바친 여인
빗소리가 듣기 좋아서 차 안에 한참 있었다. 그날도 비가 왔다. 빗소리를 좋아하지만 비 오는 날 돌아다니기는 예나 지금이나 싫어한다. 하필 비가 오는 날 시내 다방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날 만난 분은 훗날 ‘최명희’가 된 분이다. 그때도 이름은 ‘최명희’였지만 당시는 기전여자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국어 선생님 ‘최명희’ 씨였다. 나이보다 어른스러워 보이는 반듯한 성품을 가진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분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글로 쓸 만큼 알고 있지 못하지만 ‘최명희’ 씨가 왜 독신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서 이분을 ‘내가 만난 100명의 여자들’에 감히 올린다. 대학교 선배였다고는 하지만 같은 시기에 다니지 않아서 옷깃조차 스쳐 지날 일은 없었다. 당숙 아들이 작가와 같은 과를 다녀서 이 만남이 이루어졌다. 인터넷에 올려진 ‘최명희’ 씨 사진을 보니 맨드라미 빛깔 립스틱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이런 색을 과감히 칠할 수 있는 여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전반적으로 수수해 보였다. 목까지 내려오는 생머리에 화장기도 별로 없고 두꺼운 천으로 된 원피스 차림이었다. 밝은 색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입음직한, 패션에 안목이 있는 옷차림은 아니었다. 겨울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였다. 비를 맞아서 우산을 써도 어쩔 수 없이 신발은 젖고, 스타킹에 물이 밴 꿉꿉한 상태로 들어섰다.
‘최명희’ 씨는 우리 큰오빠와 얼마 전 선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왜 나를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 상황이 어색했다. ‘최명희’ 씨는 바로 용건으로 들어갔다. 큰오빠가 마음에 들지만 자기는 결혼하지 않기로 오래전에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전해 달라는 용건이었다. 평생 숙제처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이미 성인이 된 당사자들끼리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 같았다. 굳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앞으로도 볼 이유가 없는 나를 만나서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 뒤로 한 번 ‘최명희’ 씨 집을 방문했는데 오빠의 대답을 전하러 갔는지, 아님 어떤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집 안 모습은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다. 남문다리 건너 한옥으로 지붕이 낮고 어두컴컴했다. 집 안은 정갈해 보였고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지만 풍족한 형편이 아님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평생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글 쓰는 일이었음을 『혼불』을 읽고서야 알았다. 오빠가 만난 ‘최명희’와 『혼불』 작가를 처음에는 연결하지 못했다. 저자 약력을 보고서야 동일인이구나 싶었다. 인사말이었겠지만 작가 ‘최명희’ 말대로 오빠가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다. 오빠는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했고 한문 실력도 누구 못지않게 뛰어난 데다 독서량 또한 만만치 않은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동아일보 기자를 잠깐이지만 했는데 글 쓰는 솜씨도 남달랐다. 오빠가 죽기 전 원고지 5천 매 정도의 회고록을 남겼다고 들었다. 책으로 출간하겠다고 해도 큰올케가 보여 주지 않으니 내용을 모르겠지만 『혼불』의 ‘매안이씨’ 기록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청해이씨’ 가문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최명희’는 ‘삭녕최씨’로 『혼불』 배경지인 남원 사매면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곳에 삭녕최씨 종가가 있다고 한다. 소설 속 매안이씨 종부 청암 부인이 살던 곳이다. 최명희 씨 집안이 종부 집안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추측건대, 오빠와 ‘최명희’ 씨가 다방에서 잠깐 만나고 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번인지 두 번인지 모르겠으나 한 번 만났다 해도 둘의 이야기는 전주천 흐르듯 이어졌을 것이다. 그 물살이 아쉽지만 ‘최명희’는 평생 해야 할 일을 하자면 독신이어야 기능했을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혼불』은 나의 온 존재를 요구했습니다.” 그녀 말대로 온 존재를 던져야 가능한 일을 결혼해서 남편이며 시댁 식구, 자식에게 시간을 나눠 주다 보면 흐지부지 ‘혼불’은 빠져 달아나고 말지 않았을까. 작가의 아버지도 한몫 거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최명희 씨 부친이 평생 술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가족을 힘들게 했다고 하니 결혼에 회의를 품었을 수도 있겠다.
생뚱맞게 플로베르가 떠오른다. 그는 하루 18시간을 오직 글만 쓰며 살았다고 한다. 독신으로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신이었지만 누군가 뒷바라지를 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다. 역시 독신이던 누나가 평생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고 하니 17년간 계속된 『혼불』을 썼던 작가 역시 독신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임박한 재앙』을 쓴 소설가 ‘린 샤론 슈워츠’는 “좋은 여자와 작가가 동시에 되기는 불가능하다. 서른두 살 때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좋은 사람이 되느냐, 작가가 되느냐. 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최명희’는 이미 스물네 살에 독신을 선택했다. 국자와 펜을 들고 고민하다가 그녀도 과감히 국자를 담 밖으로 던져 버렸다. 유하의 시처럼 ‘사랑의 지옥’을 겪게 할 만큼, 사람을 혼미에 빠지게 할 만큼 매력이 있는 오빠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최명희’가 어떤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았기에, 소설가 이청준이 평했듯,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을 남길 수 있었으니까 천만다행이다. 작가 ‘최명희’는 『혼불』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어떤 작품도 쓰지 않았다. 오직 이 한 작품만을 위해 이 지구, 지구 중에서도 한국에 온 사람이었다.
여름에 오래된 책들을 정리했다. 오래된 책들로 그렇지 않아도 더운 여름이 더 더웠다. 누렇게 바랜 『혼불』을 내놨다가 들여놓기를 반복했다. 결국 버리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에 꽂았다. 『혼불』보다 나는 그녀가 썼다는 수필 몇 편이 더 궁금하다. 『혼불』은 『토지』를 읽을 때만큼 몰입하지 않았다. 완벽을 기하려는 서술묘사가 사람을 지치게 했고, 소설의 일차적 특성을 반감해서 띄엄띄엄 읽거나 어느 부분은 읽지 않을 권리를 가동해야 했다.
후기 사전을 보니 ‘혼불’을 전라도 방언이라고 써 놓았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전라도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쓰고 있을 법하다. 크기에 대한 설명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종발만 하다고 써 놓았는데 내가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듣기로는 머리가 주먹만 하고 꼬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고 들었다. 혼불은 죽은 뒤에 빠져나오는 불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생명의 불이다. 생명의 불은 어디선가 또 다른 생명에게 불을 지피고 있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