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4 1. 조선시대 농사짓기의 원형 찾기 9 2. 논밭 일구어 마련하기-개간과 간척 19 3. 작물 재배 기술의 전개 양상 39 4. 시비 기술의 지역적 특색 67 5. 농민들이 활용한 농기구 83 6. 물을 다스리는 기술과 도구들 101 7. 자연재해의 대비와 극복 133 8. 농민들의 농사짓기와 역사 발전 159 주석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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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농민들의 농사짓기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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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056812
951.5 -24-19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0003056813
951.5 -24-19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B000096090
951.5 -24-19
부산관 종합자료실(1층)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 기록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상인이 남긴 일기도 있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마을의 이야기도 있어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의 변두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속에서
[P.30] 정조를 비롯한 조선시대 중앙정부가 수행한 권농정책의 한 방향은 한광지와 진전의 개간을 권장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에 조정에서 개간을 장려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책을 펼쳤다. 그리하여 농경지의 확대가 17세기에서 18세기 무렵에 확연히 확인되는데, 이 가운데 특히 수전의 증대가 남다른 것이었다. 정조는 개간의 장려를 위해 역대 조정이 마련한 여러 가지 시책을 계승하여 수령에게 개간을 독려하고, 개간지에 대해 몇 해 동안 면세 조처를 취하고, 나아가 개간자에게 시상을 하기도 하였다. 18세기 중반까지 조정에서 수행하였던 개간에 대한 시책이 정조대에도 준행되었다.
[P. 48~49] 한전(旱田)을 기경하는 원리에 대해서 살펴보자. 한전 기경의 기본적인 원칙으로 “경지는 천천히 하는 것이 적당하다. 천천히 하면 흙이 연해지고, 소가 피곤하지 않게 된다. 춘하경(春夏耕)은 얕게 하는 것이 적당하고, 추경(秋耕)은 깊게 하는 것이 적당하다”라는 것을 『농사직설』에서 제시하고 있었다. 봄·여름갈이는 얕게 하고, 가을갈이는 깊게 하라는 것은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이라는 농서에 등장하는 기경의 원칙이었다. 봄작물, 가을작물에 연결되는 기경 작업에 얕고 깊은 차별을 두어서 갈기의 깊이를 각각 규정한 것은 봄철과 가을철의 토양의 조건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었다.
[P. 87] 『농사직설』의 수확용 농기구는 낫이었다. 미리 풀을 베어 시비재료를 만들도록 권장할 때 등장하는 농기구도 자루가 긴 낫이었다. 낫을 수확 작업뿐 아니라 산야의 초목을 베어 내는 작업에 이용하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관행이었다. 낫으로 작물을 수확한 다음 이렇게 획득한 작물을 사람이 식용(食用)으로 이용하려면 몇 단계 작업을 더 거쳐야만 했다. 농사일의 고단함은 이렇듯 땅을 기경하는 순간부터 수확한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다. 농민의 수고로움이 곡식의 한 알 한 알에 배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