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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펴내면서-성한표(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한겨레신문 전 편집국장, 논설주간)
이 책을 왜 내게 되었나?-추모문집 편집인 신홍범(조선투위 위원, 한겨레신문 전 논설주간)

1. 조선투위와 함께
· “기자 더 하고 싶지만…”-성한표
· 추억 속의 그 사람 정태기-신홍범
· 내가 본 정태기-최병선(조선투위 위원)

2. 한겨레와 정태기
· ‘공성이불거’, 정태기와 한겨레 창간 과정-이원섭(1980년 조선일보 해직, 전 한겨레 논설위원실장, 전 가천대 신방과 교수)
· 언론인 정태기를 위한 작은 기록-김현대(한겨래신문 전 대표이사 사장)
· 배우는 머무르지 않는다-박성득(한겨레신문 전 제작담당 이사)
· 뒤늦게 드리는 감사의 인사-지영선(서울그린트러스트 이사장, 전 보스턴 총영사, 한겨레신문 전 논설위원)
· 2020년 언론은 두 큰 별을 잃다-김형배(한겨레신문 전 논설위원, 방송문화진흥회 전 감사)
· 功成而弗居-고급 정론지를 꿈꾼 이상주의자-권태선(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한겨레신문 전 편집국장, 논설주간)
· 어느 지혜로운 이의 고독-정남구(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성공으로 이끈 매그넘 코리아 프로젝트-하수정(북유럽 전문가, 한겨레 전 미디어카페 사업팀장)
· 정태기 선배를 추모하며-안수찬(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한겨레신문 전 기자)
· 정태기 사장님의 기억-이원재(초대 한겨레경제연구소장)

3. 정태기를 생각하며
· 정태기를 그리워한다-이대공(전 포스코 홍보담당 부사장)
· 그는 뛰어난, 친절한, 겸손한 신사였습니다-쿠보다 히로지(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의 사진 작가)
· 농업, 농촌을 돕는 일이라면 해보죠-신수경(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 「대산농촌」 편집장)

4. 나의 아버지
· 나의 아버지-정진형(토목공학자, 고 정태기 선생의 아들, 미국 거주)
· 그 우주의 마당-정재은(SF동화작가, 고 정태기 선생의 딸)

5. 기록 속의 언론인 정태기
· 『한겨레 사사社史』에 기록된 언론인 정태기
· 9회 만루 투수 심정으로

6. 정태기가 남긴 글
· 우리의 결의
· 제 3년을 맞으며
· 3년이 뜻하는 것
·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 또 다른 20년을 향하여
· 학생과 매스컴
· 지식인의 자세: 최영오崔永吾 군의 기사를 읽고
· 농업과 농촌의 중요성에 관한 국민적 공감이 필요한 이유

7. 정태기의 생태적 세계관과 문명관
: 대산농촌재단 이사장으로서 「대산농촌」에 쓴 글
· 우리 농업의 창조적 결실을 위하여
· 우선 농지만은 지키자
· 아시아 유일의 청정 농업국가를 이루자
· 희망은 농촌과 농업의 부흥에 있습니다
· 농업은 국방과 같은 것
· 농촌 불패, 농업이 미래다
· 2010년 새해, 지구를 살리는 농업의 가치는 더욱 무거워질
것입니다
· 농업의 미래, ‘씨앗 민주주의’
· “3만 달러까지만”
· 농업, 농촌 부흥운동을
· 앞으로의 ‘10년’
· 농업은 영원하다: 재단 창립 20주년을 맞으며

정태기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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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정태기 이야기 : 언론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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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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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언론을 다시 살리려고 했다,
새 언론을 만들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1960~70년대 언론자유수호투쟁을 이끌고, 「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한
정태기 전 한겨레신문 대표이사이자 전 조선투위 위원장 추모문집

언론인 정태기는 ‘언론암흑시대’에 언론이 권력의 탄압을 받아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언론을 살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투위 기자들과 함께 일어나 단호하게 싸웠습니다. 알아야 할 것을 바로 알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여러 가치 중에서 언론의 가치를 지고한 가치로 알았으며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그의 분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새 시대를 열려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참다운 언론, 새 언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그래서 ‘새 신문’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앞장서서 해직언론인들과 함께 국민모금으로 만든 신문이 「한겨레신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그가 남긴 메시지는 지금도 외치고 있습니다. 참된 언론이 나라와 세상을 올바로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나쁜 언론은 나라를 망치고 파멸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거짓된 언론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정태기는 누구인가?

정태기(1941~2020)는 1941년 2월 28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를 나왔다. 1965년 조선일보사에 입사, 경제부 기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독재권력의 언론탄압으로 언론이 죽음에 이르자 이를 구하기로 결심, 동료기자들과 함께 언론자유수호투쟁에 나섰으며, 그로 인해 32명의 기자들이 해직되었다. ‘조선투위’ 위원장으로 8년 동안 이 단체를 이끌다가 이로 말미암아 투옥되었다. 해직된 후 동양화학(주) 기획실장으로(1976~78) 일했으며, ‘도서출판 두레’를 만들어 경영했고(1978~83), 뒤이어 ‘화담기술(주)’을 창업하여 대표를 맡았다(1983~87). 그러나 그의 꿈은 진정한 언론을 이 땅에 세우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1987년부터 그가 앞장서서 해직언론인들과 함께 국민 모금으로 만든 것이 「한겨레신문」이었다. 그러나 1990년 상무이사로 이 신문사를 떠났다. 1992년부터 3년 동안 포스데이타(주) 부사장으로 일했으며, 1995년 10월부터는 약 5년에 걸쳐 (주)신세기이동통신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대기업을 경영했다. 그는 2005년 어려움에 처해 있던 한겨레로부터 부름을 받고 한겨레신문 대표이사로 다시 돌아왔다. 한겨레 ‘제2창간운동’을 벌이는 등 한겨레를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고급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2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다. 2007년 한겨레를 퇴사한 뒤엔 그해부터 4년 동안 대산농촌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한국의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일에 열심히 참여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강원도 평창군의 농촌으로 들어가 살았으며, 2020년 10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2020년 제8회 리영희 특별상을 받았으며, 2021년 6월엔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유공자로 선정되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한국 언론사에 지조 있고, 유능하며, 책임감 강한 언론인의 전형

정태기 조선투위 전 위원장이 이 세상을 떠난 지 만 3년이 되었습니다. 정 위원장은 신문 제작에 참여한 기자로서도 뛰어났지만, 1975년 당시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언론의 사회적, 역사적 책무를 지키려던 언론운동에서도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조선일보 동료기자들의 자유언론 수호를 위한 신문제작거부 투쟁을 주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사로부터 해고당한 32명의 기자들과 함께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를 결성하여 투위 위원장으로서 한국의 언론운동을 이끌어나갔습니다. 2년이 채 남지 않은 2025년 3월이면 조선투위 출범 50주년을 맞게 되는데, 그는 이 50주년을 5년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조선투위는 출범 50주년을 앞두고 여러 의미 있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는데, 고 정태기 위원장을 추모하는 문집은 이 행사의 첫걸음이 됩니다. 조선투위는 같은 시기에 결성된 동아투위와 함께 한국 언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조선투위는 특히 동아투위 및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함께 민주 민족 언론을 지향하는 한겨레 창간을 주도했으며, 오늘까지 한국 언론의 주요 국면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조선투위의 역사가 바로 정태기 위원장의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을 많은 분들이 읽고 한국 언론사에 지조 있고, 유능하며, 책임감 강한 언론인의 전형을 발견하는 보람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성한표(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한겨레신문 전 편집국장, 논설주간)

이 책을 왜 내게 되었나?

이 문집은 고인 정태기 선생의 뜻에 반反한 것입니다. 고인의 뜻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평소 그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 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에 관한 책이 준비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는 강력하게 반대했을 것이고 한사코 말렸을 것입니다. 자신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을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이 책을 냈습니다. 그 까닭은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이 너무 고귀하고 크기 때문입니다. 그 유산을 기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언론이 아주 큰 위기를 맞고 있어 그의 유산을 적극 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정태기 선생은 3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때때로, 곳곳에서 ‘정태기’가 이야기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를 존경하는 후배들이 그의 부재不在를 안타까워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비범한 정신’, ‘숭고한 혼’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 세상엔 여러 가치들이 있지만 정태기 선생은 언론의 가치를 ‘지고한 가치’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가치를 지키려고 싸웠고, 그 때문에 고난을 당했습니다. 언론이 탄압을 받아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 언론을 살려내려고 조선투위 기자들과 함께 단호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해직되었고 8년 동안이나 조선투위위원장으로 이 단체를 이끌었습니다. 그 때문에 감옥에도 갔습니다.
그의 분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짜 언론, 참된 언론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아 나섰으며, 그런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보려고 했습니다. 참된 언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앞장서서 만든 것이 ‘한겨레신문’입니다. 한겨레는 많은 해직언론인들과 국민들의 뜨거운 염원이 모아져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신문을 ‘시작한’ 정태기가 아니었으면 한겨레는 아직도 우리의 머릿속에만 들어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 한국의 언론은 또다시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사라진 지 30여 년 후에 또다시 ‘언론 암흑시대’를 맞으려고 합니다. 이미 그 어둠 속에 들어서 있습니다. 국민들의 소중한 자산인 공영방송을 사유물인 양 장악하려고 온갖 무법적인 행동을 자행하고 있으며, 신문을 포함한 모든 언론을 손아귀에 넣고 통제하려 합니다. 가짜 뉴스를 없애겠다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을 ‘국가 반역죄’로 다스려 ‘폐간’시키고 기자를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합니다. 군사독재 아래서도 이렇게 야만적인 폭언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언론이 이런 경멸과 모욕을 받아본 적이 없습나다. 한국기자협회가 지난 8월 회원들(약 1만 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자들의 85%가 현재의 언론이 ‘억압당하고 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대답은 고작 9.9%였다고 합니다.
한국의 언론계는 이 위기의 정체를 바로 보고 모든 힘을 모아 단호하게 싸워야 합니다.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 언론 탄압을 남의 일로 보고 방관한다면 머지않아 그 탄압의 칼날이 자신의 가슴을 찌를 것입니다. 언론계 전체가 나서야 합니다. 한국 언론이 이 탄압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저 끔찍한 ‘암흑’ 속으로 떨어져버릴 것입니다.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바쳤던 정태기 선생의 투쟁정신이 여러분의 싸움을 도와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참 언론을 찾아 나섰던 고인의 ‘언론 정신’이 ‘프로파간다’로 전락한 오늘의 거짓된 언론을 바로 보게 하고 이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추모문집 편집인 신홍범(조선투위 위원, 한겨레신문 전 논설주간)

언론의 자유, 그리고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

사람들은 군사독재시대를 ‘암흑시대’라고도 부른다. 나라와 사회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맘 놓고 말할 수 없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언론이 권력의 탄압에 굴복하여 알려야 할 것을 알리지 못하고 거짓 보도로 국민을 속여 국민을 어둠 속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언론이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고 권력의 통치수단의 하나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이 죽어 있는 언론을 살리려고 조선일보 기자들이 궐기하여 싸운 것이 1975년의 ‘3·6 자유언론수호투쟁’이었다. ‘있는’ 사건을 ‘없는’ 사건으로 만들고, ‘없는’ 사건을 ‘있는’ 사건으로,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이라고 보도하는 신문을 더 이상 만들 수 없다고 거부한 것이 조선일보 기자들의 3·6 제작거부투쟁이었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지금이라도 올바른 신문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기자들을 대거 해직시킨 것이 1975년의 ‘조선일보 사태’였다. 언론사가 언론의 생명인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기자 32명을 언론사에서 추방한 것이 조선일보였다. 그 해직당한 기자들이 결성한 단체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다. 이 조선투위가 1년 반 뒤 50주년을 맞는다.
조선투위는 결성된 뒤 약 반세기에 걸쳐 언론의 자유와 민주언론을 위해 싸워왔으며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과 함께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다. 조선투위는 언론암흑시대를 살면서 언론다운 언론을 갈망해온 국민과 함께 새 언론 만들기에 나서 ‘한겨레신문’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리하여 동아투위, 80년해직언론인들과 함께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었던 ‘한겨레’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