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그 시집 『가능주의자』(나희덕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최문자 | 민음사 | 2022년 3월) 『그라시재라』(조정 | 이소노미아 | 2022년 6월) 『바람 불고 고요한』(김명리 | 문학동네 | 2022년 9월)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천수호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심장보다 높이』(신철규 | 창비 | 2022년 4월) 『생물학적인 눈물』(이재훈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장석주 | 난다 | 2021년 12월)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이병철 | 걷는사람 | 2021년 11월) 『색색의 알약들을 모아 저울에 올려놓고』(이지호 | 걷는사람 | 2021년 8월) 『우리의 피는 얇아서』(박은영 | 시인의일요일 | 2022년 4월) 『창』(성은주 | 시인의일요일 | 2022년 5월) 『사랑의 근력』(김안녕 | 걷는사람 | 2021년 11월)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이윤학 | 간드레 | 2021년 4월) 『여름밤 위원회』(박해람 | 시인의일요일 | 2021년 11월) 『나는 입버릇처럼 가게 문을 닫고 열어요』(박송이 | 시인의일요일 | 2022년 10월) 『천 년 동안 내리는 비』(정한용 | 여우난골 | 2021년 2월) 『홀연, 선잠』(김정수 | 천년의시작 | 2020년 4월) 『사물어 사전』(홍일표 | 작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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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 : 전영관 산문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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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064259
811.88 -24-35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3064260
811.88 -24-35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B000097369
811.88 -24-35
부산관 종합자료실(1층)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노력할수록 방황하는 존재의 낯설고도 익숙한 산책
차분함을 소심함으로 고요함을 우울증으로 예단하는 세상에서…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은 플라뇌르(Flaneur, 산책자)로서 시인이 지나온 장소와 그 장소에 스민 사람들, 그 장소가 떠올린 먼 순간들을 담은, 전영관 시인의 산문집이다. 굳건하게 믿어온 가l치관과 기준이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일보다도 친구보다도 숙면을 택할 만큼 자기착취에 지친 이 시대에 “인간은 사랑 말고 또 어떤 것을 발명해내야 살아갈 수 있는지” 시인은 질문을 던진다. 비판이나 주장이 아닌, 혼자서 혹은 가까운 이들과 함께한 시간과 공간을 가만 들여다보는 사색의 문장들을 통해. 그 사이에서 비치는 또는 고백된 시인의 자화상은 “세 끼니를 다 챙겨도 허우룩한”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고, “나날의 애달픔이 완화”될 위로를 안기고자 한다.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은 ‘1부 책상의 역사’, ‘2부 다정과 소란’, ‘3부 안부, 호기심’, ‘4부 그 시집’으로 나뉜 77편의 짧은 산문들, 그리고 시인의 시와 직접 찍은 사진들이 함께한다. 장사 안 되는 임차인만 바라보며 생활비를 아끼고 있는 임대인은 사정을 잘 알기에 아무 말 못 하고, 마스크로 표정을 감출 수 있는 것을 차라리 다행으로 여긴다.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은 상대와 싸울 때는 버티는 게 최고라면서. 팬데믹 시기를 배경으로 한 최근 이야기의 한편에, 중1 때 수업료를 못 내던 가난한 학생에게 새 책들을 건네고 도서관 자리도 마련해주고 방학 동안 무료 과외까지 해주시던 선생님과의 수십 년 전이 회고된다. 이러한 1부에 이어 2부에선 시 강의 듣던 사람들과의 이야기, 가족들과의 다사다난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3부는 ‘안부’와 ‘호기심’의 차이, ‘기억’과 ‘추억’의 차이, ‘불안’과 ‘두려움’의 차이, ‘집착’과 ‘미련’의 차이를 포함하여 일상에서 유사한 용도로 쓰이는 두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시인의 눈으로 풀어냄으로써 갈피를 잡기 쉽지 않은 현대인의 내면을 성찰하게 한다. 4부는 나희덕, 최문자 등 열아홉 시인의 최근 시집을 소개하는 리뷰들로 구성돼 시집을 고르고 읽어가는 탁월한 길을 펼쳐 보여준다.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은 고통을 다룰 수 있어야 시를 쓴다는 전영관 시인의 말을 스스로 실천한 산문집이다. 현재의 이야기든 과거 어느 시점의 이야기든,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든 한 단어에 관한 이야기든 한 권의 책에 관한 이야기든, “인간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방황하는 존재”라는 그의 시구에 공감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맞게 될 또 다른 시간과 장소들을 기다리게 한다.
어느 장소에 거기 안 간 사람을 데려가보고 새로운 의미화가 이루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른바 ‘장소의 탄생’이다. 삶은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미술관이라서 기억할 수 있는 만큼만 기쁘거나 슬프다. […] 산문집이라는 ‘장소의 탄생’을 독자들과 이뤄내고 싶다. 나날의 애달픔이 완화된다면 행복하겠다. 우리는 웃지 않으면 가라앉는 마법의 호수에 떠 있다. (작가의 말에서)
만물이 살아 움직이는, 사유로서 유동하는 세계
봄이 다가와 옷장을 정리하며 겨울 외투에 인사를 건넨다. 11월에 다시 꺼내 들 때를 기약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우리 집 선풍기에는 어떤 정령이 깃들어 있나 궁금해하기도 한다. 우리 집이라는 공간에 스민 식구들의 수런거림과 탄식과 애틋함을 선풍기도 집에 들어오는 순간 읽고, 경청했을 것이다. 이런 집이구나, 다른 냉방기가 없으니 고장 나지 말아야겠다면서 다짐했을 테고. 이러한 활유活喩의 세계가 있다고, 그곳은 만물이 살아 움직이는, 사유로서 유동하는 곳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만물을 사람으로 본다거나 사람에 견주어서 표현하는 의인擬人과는 대각선 방향에 있다. 유喩는 깨우침, 끄덕거림의 뜻이고 의擬는 본뜨고 흉내 내는 뜻이라서 격 자체가 다르다.” 단순한 물건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되고 우리는 ‘사용자’가 아닌 ‘관계자’로 거듭나게 된다.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가 새로움을 만들고, 그렇게 생각이 바뀌면 세상은 이미 이전의 세상이 아니다.
세게 당기면 떨어질 것같이 아슬아슬하면서도 단단히 감싸고 자세를 풀지 않는 단추 같은 사람이 좋다. 단추같이 순서가 필요하고 잘못했는데도 바로잡을 기회를 가진 이가 좋다. 헐거운 마음의 단추가 바로 당신이다. (18쪽)
책속에서
[P.15~16] 산책로에 매화가 있는데 그 아래에 서면 향기에 적셔지는 것만 같았기에 향기는 날아가는 게 아니라 쏟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는 3층에 산다. 창밖 매화 향기가 내게로 솟아오르는 것 같아 누군가에게라도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어림도 없는 망상이지만 천사로 채용된다면 행인들의 슬프고 다정함이 다 보이는 3층에 근무하고 싶다. 슬픈 사람 없도록 하겠다는 게 아니라 다독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소망을 세우고 싶다.
[P. 26] 우리 식구를 길거리에 주저앉게 한 사람이 찾아온 적 있었다. 그해 열다섯에 세상의 참혹을 다 겪었다. 아버지 동업자인 그이의 죄책감인지 후회인지 지금도 모른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마주 앉았다가 “밥 먹고 가” 하시고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국졸 학력의 아버지는 성인 현자도 아니고 당신의 무력감을 절감한 것도 아닐 테다. 나이 들어서는 그이가 ‘운명의 상징’이었다고 생각했다. 운명이 찾아온다면 밥이나 사주련다. 그 밥은 상가의 육개장쯤이나 되겠지.
[P. 28] 안정제 먹고 자니까 기절한 셈이지만 언제 또 쓰러질지 몰라 겁난다는 아내는 수면제조차 거부하고 뜬눈으로 지새우는 날이 많다. 안쓰럽고 무참해서 의존성 없는 수면유도제라도 먹으라고 몇 번이나 권했지만 그럴 수는 없단다. 둘 다 약기운에 정신 놓고 자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깨울 거냐고 맥 놓는다. 눈물 많은 구급대를 자처하겠다는 심사다. 신은 자신을 흉내 내는 것 같아서 지극히 선량한 사람은 싫어할 거라고 히죽거렸다. 그러니 당신은 영영 불러주지 않는다고 웃어주었다.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이라서 뇌경색에도 살아남았다고 으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