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필로 나눈 문단 교우록 : 진솔한 편지글, 특이한 글씨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069281
811.6 -24-29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0003069282
811.6 -24-29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B000093697
811.6 -24-29
부산관 종합자료실(1층)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최고 지성인 97명의 육필 그리고 77명의 자필 서명이 담긴 글 이어령, 이해인, 나태주 등 특별한 인연의 산문집 국내 최초로 시도된 전혀 새로운 형식의 산문 시화담
이 책은 1959년 자유신문,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60여 년간 문학 활동을 펼쳐 온 박이도 시인이 평생 받아 소장하고 있는 육필서명본 중에서 그 필자들과 맺었던 ‘특별한’ 인연을 공개한 산문집이다
육필 서명과 함께 주고받은 글을 모아 공개한 이런 형식의 책은 국내 최초이다. 박이도 시인이 이번에 펴낸 『육필로 나눈 문단 교우록』에는 당대를 대표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시인 작가 화가 평론가들의 친필 서명이 모두 공개될 뿐만 아니라 그 서명본을 보내준 분들과의 인문학적 교유의 일화들이 곁들여져 있는데, 이는 예술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유와 함께 지금껏 소장해온 박이도 시인만이 집필할 수 있는 내용이다. 또한, 증정본 필자 중 작고한 분들이 많아 이런 자료들이 더욱 소중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 수록된 문단 저명인사들의 이름만 들어도 놀라울 정도다. 이어령. 김광균, 서정주, 조병화, 박희진, 이탄, 오규원, 마광수, 박목월, 김영태, 박성룡, 김광협, 김종길 박화목, 김종길, 이승훈, 조태일, 김현승 등 한 분 한 분이 모두 한국 현대 시문학사를 대표하는 분들이 아닌가. 또한, 이경남, 강인섭, 문익환 같은 시인이면서 언론인 목회자로 활동했던 분들, 전영택 황순원 이청준, 김승옥 현길언 같은 당대 최고의 작가들, 한 시대 방송가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신봉승, 주태익 선생, 여기에 화가 송수남, 서예가, 박종구, 수녀 이해인, 나태주 시인 등…은 우리 시대의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인문학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다. 이분들의 친필 서명과 함께 엽서와 편지글들은 누구라도 한 번쯤은 보고 싶어 하는 자료들이다.
“그의 시편들은 그 미소처럼 담백하고 고결하며, 그 마음처럼 순결하고 고아하여 우리에게 크나큰 위안을 준다.”_작가 조정래
최고 지성인들의 보물 같은 친필들을 독자와 함께 나눈다!
1부 시담 33명, 2부 편지 30명, 3부 엽서‧메모 34명 4부 자필 서명 77명 무려 174명의 육필이 들어간 이런 형식의 책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간되는 책이다. 박이도 시인이 이번에 집필한 『육필로 나눈 문단 교우록』에는 당대를 대표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시인 작가 화가 평론가들의 친필 서명이 모두 공개될 뿐만 아니라 그 서명본을 보내준 분들과의 인문학적 교유의 일화들이 곁들여져 있는데, 이는 예술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해온 분만이 집필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증정본 필자들이 두 분 외에는 모두 작고한 분들이어서 더욱 이런 자료들이 소중한 이유이다.
학자, 언론인, 소설가, 시인으로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고등학교 후배인 마광수 시인, 요절한 〈기다리는 마음〉의 천재 시인 김민부, 평생의 두 분 스승인 소설가 황순원, 시인 조병화, 〈민들레의 영토〉에 시의 씨를 뿌린 이해인 수녀, 시집〈꽃을 보듯 너를 본다〉의 풀꽃 시인 나태주 방송가의 풍운아 신봉승 방송작가 등등 한 분 한 분 모두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인연과 비화를 정감 있는 문장으로 불러오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오랜 세월 문단의 문객들과 나눈 육필 서명본을 비롯해 편지글과 엽서 글을 모아놓은 서첩(書帖)이다. 문단의 큰 어르신들부터 가까운 선후배들까지, 서로 나누었던 나의 사적 교우록이 되는 셈이다. 신문학이 싹트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단의 기라성들의 시화(詩畵)와 육필을 귀감(歸勘) 삼아 정면(正面)교사로 삼고자 함이다. 이분들의 시문(詩文)에 담긴 저마다의 문학적 발상법과 시정신에서 많은 교훈을 받은 바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어르신들의 예술과 인격을 기리고 명심불망(銘心不忘)하고자 한다. 특히 친필 육필로 받은 이분들의 함자와 필체를 한 자리에 모아 나 자신에게 귀감이 되는 서첩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P.64~65] 나는 자연인 마광수(馬光洙)를 사랑한다. 아니 그에 대한 연민의 정을 거둘 수가 없다. 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 스스로의 사유와 행동에 관한 원리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 천부天賦의 인권이라는데…. 문명사회의 법과 제도들은 천부의 인권과 선의의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가 광수를 죽였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음란행위를 하던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를 시험했던 자들,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내린 설법이다. 여인을 끌어 왔던 무리들은 모두 뒤꽁무니를 뺐다. 이들이나 음행한 여인이나 모두 생래의 선한 양심소유자들이 아닌가. 이들은 율법을 신봉하는 서기관 바리새인들이다. 이들의 양심과 음행한 여인의 양심을 저울추에 달아본다면 어느 쪽이 법적인 죄가 무거울까. 당연히 현행범인 음행한 여인이 무거울 것이다. 이런 판단에 대해 예수님은 지혜롭게 용서와 사랑의 본질에 의한 판결을 내렸다. 세상과 법정이 마광수에게 내린 조롱과 범법적(?) 판결은 ‘선한 사마리안 법’으로 합리화될 수 있을까. 즉각적인 판단이 어렵다. - ‘누가 마광수를 죽였는가’ 중에서
[P. 94~95] 편운(片雲) 조병화 선생님은 나의 대학 스승이시다. 그는 스승 이전에 한국어로 시를 쓰는 대문호이다. 김소월의 월계관을 이어 받아 국민적 호응을 받는 지경에 이른 시인이다. 학부와 대학원 시절과 그 후 교수 요원으로 함께 근무했던 기간까지 합쳐 보면 오랜 세월을 가까이에서 모셨던 분이다. 선생님을 자주 대하며 그의 생활신조나 행동거지에서 받은 인상 중에 한, 두 가지를 소개하련다. 선생님께선 엄격히 시간을 지키는 분이셨다. 언젠가는 밖에 나와 점심을 함께 먹고 연구실로 올라가다가 지인을 만났다. 지인은 선생님에게 커피를 대접하겠노라고 간청을 했으나 선생님은 그럴 시간이 없다고 사양했다. 연구실에 돌아와 차를 마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미리 약속하지 않은 시간은 공연히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직장 생활 13여 년 만에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였다. 한번은 강의가 있는 날 20분 전에 연구실로 오라는 조교의 전갈을 받았다. 시간에 맞춰 문리대학장(당시)실로 방문했더니 내가 제출한 리포트를 펼쳐 보이면서 야단을 치셨다. 내용인즉 원고지에 쓴 글씨가 괴발개발 난필이어서 읽어 보시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빨간 색연필로 여기저기 표시를 해 삐뚤어진 글씨를 지적하셨다. 나는 죄송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이렇게 선생님께서는 매사에 직선적이고 솔직한 성품이셨다. -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것이다’ 중에서
[P. 105] 1960년대에 활약했던 시인 김민부(金敏夫)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대학을 나와 방송국 PD로 입사해 각종 방송 원고를 쓰면서 그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다. 방송작가로 명성을 더 쌓아가다가 31세에 요절(夭折)한 천재 시인이다. 나의 친구 김민부에 관한 잊히지 않는 기억은 그의 장례식장에서 본 참혹했던 광경이다. 얼굴에 화상을 입은 부인을 대신해 두 남매(?)가 영정 앞에 나란히 서서 조화를 단에 올려놓고 분향하는 장면에서 나는 “흑-”하고 옆 사람들이 들을 정도 흐느낀 것이다. 나도 모르게 격한 연민의 감정이 폭발했던 것이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어린 자식들의 등장이 순간적으로 너무나 애처롭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그는 문화촌(갈현동)에 살았다. 집에서 가까운 적십자병원(서대문)에서 장례식을 치른 것이다. - '일출봉에서 하늘나라로 사라지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