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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증보개정판에 부쳐

1부 | 시담

김광균 - 십 년 만에 부치는 글월
박희진 - “시를 육성으로 낭송하자”
이탄 - 시집 『소등(消燈)』에 대한 부러움
황금찬 - 후백(后白) 황금찬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김영태 - 투명인간으로 돌아온 초개(草芥)에게
김광협 - 김광협 형, ‘만년필’은 갖고 가셨나요?
문익환 - 애증의 무덤을 넘어
박화목 - “어느 먼 곳에서 운명이 날 오라 손짓 하네”
이승훈 - 포커페이스의 암호 찾기
김구용 - 희미한 기억 속에 온유돈후(溫柔敦厚)한 시풍
김종길 - 정신적 사표가 되어 주신 고고한 선비정신
마광수 - 누가 마광수를 죽였는가
황석우 - 지구에서 본 우주 공간, 환상적인 관찰과 상상력
하희주 - “올바른 말은 올바른 정신을 낳습니다”
송수남 - 한지에 먹물이 스며들 때-무아(無我)의 경지에
박남수 - 이미지와 상징 조작에 시적 개성 돋보여
이경남 - 외유내강의 지사형(志士型) 언론인 이경남
조태일 - 독재 정권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시를 쓴 사나이
조병화 - “결국, 나의 천적(天敵)은 나였던 것이다”
정진규 - 자유로운 산문시의 지경(地境)을 확장하다
김민부 - 일출봉에서 하늘나라로 사라지다
김현승 - 차돌같이 단단하고 이슬같이 투명한 영혼의 숨결
강인섭 - 시인·언론인·정치인의 삼색(三色) 인생을 살다
이청준 - 판소리로 불태운 한(恨)의 ‘서편제’
박두진 - 광야의 예언자, 현실과 맞서는 시 정신
박성룡 - 다정다감했던 성품의 시인이자 언론인
현길언 - 지사志士형의 신앙 동지
황순원 - “내 앞에선 남을 흉보지 마라”
주태익 - 전영택 목사를 스승으로 모셨던 방송작가 주태익
황명 -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단의 풍운아
신봉승 - 문예 전 장르를 아우른, 불세출(不世出)의 명성
김현 - 자유분방했던 한글세대의 기수 김현
임인수 - 마음이 가난했던 무욕무심의 시인 임인수
김동리 - “동리 선생의 귀는 당나귀 귀”
전봉건 - 불상을 연상케 하는 과묵의 시인
이상보 - 이즈음 우리의 말글살이는 어떻습니까?
문덕수 - 서사시 「우체부」로 주목받은 모더니스트
김문수 - 작가적 역량, 화려한 상(賞) 복(福)의 김문수
석용원 - 시집 『종려(棕梠)』로 문단 데뷔
서정주 - 노선(老仙)의 경지에 이른 잠언시
김승옥 - 한글세대의 상징적 아우라
김태규 - 1960년대 한국기독교 문단을 이끌어 낸 공로자
박목월 - 언어 절제, 토속어의 상징성을 살려
송상옥 - 모국어의 향수 속에 역이민을 꿈꾸던 소설가
박종구 - 시와 서예를 아우른 영활(靈活)한 서예가 박종구
전영택 - 「화수분」은 왜 그 시대의 대표작인가?
오규원 - 허무주의자 오규원의 시적(詩的) 패러디
이해인 - 생명 위기의 시대에 힐링의 전령사
김재홍 - 시인보다 더 시를 사랑한 현장비평가
무세중 - 행위(行爲)예술로 승화시킨 전위예술(前衛藝術)
윤혁민 - 소탈한 성미, 허스키한 저음의 풍모

2부 | 편지
조정래 | 황동규 | 박남철 | 주태익 | 김병익 | 성찬경 | 나태주 | 조병화 | 장사익 | 김시철 | 윤석산 | 장호 | 김광휘 | 유경환 | 유재영 | 이광석 | 한영옥 | 김원호 | 스즈키 하루코 | 왕수영 | 이형기 | 유성호 | 조창환 | 구상 | 박주택 | 이경 | 오세영 | 하현식 | 최승범 | 김준오

3부 | 엽서와 메모
이향아 | 김주연 | 허영자 | 우한용 | 한광구 | 홍성원 | 장석주 | 정연희 | 이수익 | 민영 | 신달자 | 이은봉 | 이태수 | 이혜경 | 문효치 | 임보 | 노유섭 | 유종호 | 정호승 | 이성수 | 마광수 | 김경수 | 김종회 | 이승하 | 김국태 | 민경배 | 박준 | 박성준 | 조용기 | 이동원 | 김순권 | 홍정길 | 이수영 | 신봉승

4부 | 서명
감태준 | 강위석 | 강창욱 | 강희근 | 고인환 | 고찬규 | 곽효환 | 구인환 | 권이영 | 권택명 | 김광규 | 김규동 | 김기태 | 김기택 | 김상현 | 김석 | 김수복 | 김신지 | 김영준 | 김윤희 | 김정수 | 김종 | 김지헌 | 김철교 | 김행숙 | 나석중 | 남금희 | 문성모 | 문현미 | 민윤기 | 박덕규 | 박병두 | 박완호 | 박종해 | 박진환 | 박찬일 | 배한봉 | 서윤석 | 서하진 | 성춘복 | 송성헌 | 신덕룡 | 신현봉 | 안수환 | 유안진 | 유자효 | 윤대영 | 윤효 | 이건청 | 이계준 | 이무권 | 이문재 | 이봉일 | 이상범 | 이상호 | 이성천 | 이수영 | 이영묵 | 이영춘 | 이정재 | 이준관 | 이충재 | 임원식 | 전광식 | 정규웅 | 정이녹 | 정재영 | 정희성 | 최규창 | 최금녀 | 최동호 | 최용호 | 최은숙 | 최진영 | 하옥이 | 홍기삼 | 홍용희

이근배 휘호
표정 -사진작가 육명심(陸明心)의 독심술(讀心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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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필로 나눈 문단 교우록 : 진솔한 편지글, 특이한 글씨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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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최고 지성인 97명의 육필 그리고 77명의 자필 서명이 담긴 글
이어령, 이해인, 나태주 등 특별한 인연의 산문집
국내 최초로 시도된 전혀 새로운 형식의 산문 시화담

이 책은 1959년 자유신문,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60여 년간 문학 활동을 펼쳐 온 박이도 시인이
평생 받아 소장하고 있는 육필서명본 중에서
그 필자들과 맺었던 ‘특별한’ 인연을 공개한 산문집이다


육필 서명과 함께 주고받은 글을 모아 공개한 이런 형식의 책은 국내 최초이다. 박이도 시인이 이번에 펴낸 『육필로 나눈 문단 교우록』에는 당대를 대표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시인 작가 화가 평론가들의 친필 서명이 모두 공개될 뿐만 아니라 그 서명본을 보내준 분들과의 인문학적 교유의 일화들이 곁들여져 있는데, 이는 예술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유와 함께 지금껏 소장해온 박이도 시인만이 집필할 수 있는 내용이다. 또한, 증정본 필자 중 작고한 분들이 많아 이런 자료들이 더욱 소중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 수록된 문단 저명인사들의 이름만 들어도 놀라울 정도다. 이어령. 김광균, 서정주, 조병화, 박희진, 이탄, 오규원, 마광수, 박목월, 김영태, 박성룡, 김광협, 김종길 박화목, 김종길, 이승훈, 조태일, 김현승 등 한 분 한 분이 모두 한국 현대 시문학사를 대표하는 분들이 아닌가. 또한, 이경남, 강인섭, 문익환 같은 시인이면서 언론인 목회자로 활동했던 분들, 전영택 황순원 이청준, 김승옥 현길언 같은 당대 최고의 작가들, 한 시대 방송가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신봉승, 주태익 선생, 여기에 화가 송수남, 서예가, 박종구, 수녀 이해인, 나태주 시인 등…은 우리 시대의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인문학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다. 이분들의 친필 서명과 함께 엽서와 편지글들은 누구라도 한 번쯤은 보고 싶어 하는 자료들이다.

“그의 시편들은 그 미소처럼 담백하고 고결하며, 그 마음처럼 순결하고 고아하여 우리에게 크나큰 위안을 준다.”_작가 조정래

최고 지성인들의 보물 같은 친필들을 독자와 함께 나눈다!


1부 시담 33명, 2부 편지 30명, 3부 엽서‧메모 34명 4부 자필 서명 77명 무려 174명의 육필이 들어간 이런 형식의 책은 국내에서 최초로 출간되는 책이다.
박이도 시인이 이번에 집필한 『육필로 나눈 문단 교우록』에는 당대를 대표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시인 작가 화가 평론가들의 친필 서명이 모두 공개될 뿐만 아니라 그 서명본을 보내준 분들과의 인문학적 교유의 일화들이 곁들여져 있는데, 이는 예술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해온 분만이 집필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증정본 필자들이 두 분 외에는 모두 작고한 분들이어서 더욱 이런 자료들이 소중한 이유이다.

학자, 언론인, 소설가, 시인으로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고등학교 후배인 마광수 시인,
요절한 〈기다리는 마음〉의 천재 시인 김민부,
평생의 두 분 스승인 소설가 황순원, 시인 조병화,
〈민들레의 영토〉에 시의 씨를 뿌린 이해인 수녀,
시집〈꽃을 보듯 너를 본다〉의 풀꽃 시인 나태주
방송가의 풍운아 신봉승 방송작가 등등
한 분 한 분 모두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인연과 비화를 정감 있는 문장으로 불러오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오랜 세월 문단의 문객들과 나눈 육필 서명본을 비롯해 편지글과 엽서 글을 모아놓은 서첩(書帖)이다. 문단의 큰 어르신들부터 가까운 선후배들까지, 서로 나누었던 나의 사적 교우록이 되는 셈이다. 신문학이 싹트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단의 기라성들의 시화(詩畵)와 육필을 귀감(歸勘) 삼아 정면(正面)교사로 삼고자 함이다. 이분들의 시문(詩文)에 담긴 저마다의 문학적 발상법과 시정신에서 많은 교훈을 받은 바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어르신들의 예술과 인격을 기리고 명심불망(銘心不忘)하고자 한다. 특히 친필 육필로 받은 이분들의 함자와 필체를 한 자리에 모아 나 자신에게 귀감이 되는 서첩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육필서명 필자
강인섭 김광균 김광협 김구용 김동리 김문수 김민부 김승옥 김영태 김종길 김태규 김현 김현승 마광수 문덕수 문익환 박남수 박두진 박목월 박성룡 박종구 박화목 박희진 서정주 석용원 송상옥 송수남 신봉승 오규원 이경남 이상보 이승훈 이청준 이탄 이해인 임인수 전봉권 전영택 정진규 조병화 조태일 주태익 하희주 현길언 황금찬 황명 황석우 황순원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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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4~65] 나는 자연인 마광수(馬光洙)를 사랑한다. 아니 그에 대한 연민의 정을 거둘 수가 없다. 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 스스로의 사유와 행동에 관한 원리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 천부天賦의 인권이라는데…. 문명사회의 법과 제도들은 천부의 인권과 선의의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가 광수를 죽였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음란행위를 하던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를 시험했던 자들,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내린 설법이다. 여인을 끌어 왔던 무리들은 모두 뒤꽁무니를 뺐다. 이들이나 음행한 여인이나 모두 생래의 선한 양심소유자들이 아닌가. 이들은 율법을 신봉하는 서기관 바리새인들이다. 이들의 양심과 음행한 여인의 양심을 저울추에 달아본다면 어느 쪽이 법적인 죄가 무거울까. 당연히 현행범인 음행한 여인이 무거울 것이다. 이런 판단에 대해 예수님은 지혜롭게 용서와 사랑의 본질에 의한 판결을 내렸다. 세상과 법정이 마광수에게 내린 조롱과 범법적(?) 판결은 ‘선한 사마리안 법’으로 합리화될 수 있을까. 즉각적인 판단이 어렵다.
- ‘누가 마광수를 죽였는가’ 중에서
[P. 94~95] 편운(片雲) 조병화 선생님은 나의 대학 스승이시다. 그는 스승 이전에 한국어로 시를 쓰는 대문호이다. 김소월의 월계관을 이어 받아 국민적 호응을 받는 지경에 이른 시인이다. 학부와 대학원 시절과 그 후 교수 요원으로 함께 근무했던 기간까지 합쳐 보면 오랜 세월을 가까이에서 모셨던 분이다. 선생님을 자주 대하며 그의 생활신조나 행동거지에서 받은 인상 중에 한, 두 가지를 소개하련다.
선생님께선 엄격히 시간을 지키는 분이셨다. 언젠가는 밖에 나와 점심을 함께 먹고 연구실로 올라가다가 지인을 만났다. 지인은 선생님에게 커피를 대접하겠노라고 간청을 했으나 선생님은 그럴 시간이 없다고 사양했다. 연구실에 돌아와 차를 마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미리 약속하지 않은 시간은 공연히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직장 생활 13여 년 만에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였다. 한번은 강의가 있는 날 20분 전에 연구실로 오라는 조교의 전갈을 받았다. 시간에 맞춰 문리대학장(당시)실로 방문했더니 내가 제출한 리포트를 펼쳐 보이면서 야단을 치셨다. 내용인즉 원고지에 쓴 글씨가 괴발개발 난필이어서 읽어 보시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빨간 색연필로 여기저기 표시를 해 삐뚤어진 글씨를 지적하셨다. 나는 죄송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이렇게 선생님께서는 매사에 직선적이고 솔직한 성품이셨다.
-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것이다’ 중에서
[P. 105] 1960년대에 활약했던 시인 김민부(金敏夫)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대학을 나와 방송국 PD로 입사해 각종 방송 원고를 쓰면서 그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다. 방송작가로 명성을 더 쌓아가다가 31세에 요절(夭折)한 천재 시인이다.
나의 친구 김민부에 관한 잊히지 않는 기억은 그의 장례식장에서 본 참혹했던 광경이다. 얼굴에 화상을 입은 부인을 대신해 두 남매(?)가 영정 앞에 나란히 서서 조화를 단에 올려놓고 분향하는 장면에서 나는 “흑-”하고 옆 사람들이 들을 정도 흐느낀 것이다. 나도 모르게 격한 연민의 감정이 폭발했던 것이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어린 자식들의 등장이 순간적으로 너무나 애처롭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그는 문화촌(갈현동)에 살았다. 집에서 가까운 적십자병원(서대문)에서 장례식을 치른 것이다.
- '일출봉에서 하늘나라로 사라지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