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어딘가 아프다, 아픈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보자 자주 머리가 아프다. 소화가 잘 안 된다. 살다 보면 때론 생각하지 못한 큰 병에 걸리기도 한다. 혹은 마음이 아파, 정신과 약을 먹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선 우리 모두 가벼운 질병 하나쯤 안고 살아간다. 크든 작든,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우리는 병원에 가고 약을 처방받는다. 약을 먹어도 아픔은 빨리 줄어들지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을 고치지 않으면 질병은 만성질환이 되고 만다. 사는 동안 내내 우리는 그 병을 안고 산다. 그래서 다르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항생제, 비타민 등 수많은 알약들 말고 다른 처방이 당신에겐 필요하다. 당신의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꺼내보자. 몸이 아픈 이야기도, 마음이 아픈 이야기도, 어떤 질병이든 괜찮다. 그 고통에 딱 맞춤한 문학을 처방하려고 한다.
사그라지지 않는 아픔에, 같이 문학을 읽는 건 어떨까 인문약방 ‘일리치약국’에서 일하는 저자는 문학을 전공했다. 약국에서 일하지만 약사는 아니다. 그는 약국에서 일하며 약이 아닌 소설을 처방하고, 인문학 공동체에서 글쓰기를 가르친다. 동료들과 함께 더 나은 ‘나’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한다. ‘문학처방전’은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저자가 아픔을 호소하는 친구들과 약국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개인별 ‘맞춤처방전’이다. 세 번쯤 만나서 의뢰인의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거기에 맞는 ‘문학’을 처방하는 것이 이 약국의 특별한 진료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되던 그해 시작된 이 처방전 인터뷰는 최근에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이야기한 모두의 아픔과, 모두의 처방전이 책으로 엮어졌다. 의뢰인들의 질병은 다양했다. 고혈압, 허리 디스크, 위암, 원형탈모 등 몸의 고통도 있었지만 산후우울증, 알콜의존증, 만성피로, 공황장애 등 마음의 병을 의뢰한 환자들도 꽤 많았다. 의뢰인들의 상황을 좀 더 다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저자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 상황,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바라는 상황까지 촘촘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의뢰인의 고통 완화에 도움이 될 ‘문학’을 선정해 처방했다. 처방된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기회를 가졌다. 복잡하게 얽혀 보이는 문제에 함몰되지 않고, 그와 비슷한 상황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내 문제를 달리 해석해볼 수 있는 구석이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도 더불어 가졌다. 이 인터뷰 시간들을 거치며 저자와 환자 모두, 알게 된 것이 있다. 혼자서 아파하기보다, 그 고통을 누군가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보는 것도 고통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의 몸을 정확히 바라보고 질병의 원인을 되짚어 보면서, 의뢰인들은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기도 했으니 말이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이야기를 처방하는 시간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 『보건교사 안은영』, 『여행의 이유』, 『일기』부터 단편 소설 「루카」, 「재」, 「구르기 클럽」 등 ‘문학처방전’에는 다양한 소설과 에세이가 소환된다. 이 이야기들이 당신의 병을 완전히 낫게 해주지는 않더라도, 당신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는 있을 것이다. 이야기에는 힘과 위로가 있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에겐 질병에 잠식당하지 않고, 질병과 함께 유쾌하게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단기간에 고통을 없앨 약보다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 항생제에 면역이 생겨 어떤 약에도 반응하지 않는 몸이 되는 것보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과, 그에 맞는 책이 있다면 오늘 하루는 덜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고통은 무적이 아니다. 병이 생긴 원인을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하루하루 여유를 챙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당신의 고통은 버틸 만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진통제를 잠시 놓아두고, 소설을 읽어보자. 당신의 질병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보자. 여기에 당신이 그동안 오래 찾아 헤맨 처방전이 있을지 모른다.
책속에서
우리는 건강과 생활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돌보기 위해 좌충우돌하고 있다. 우리가 진행했던 팟캐스트의 이름이 〈인문약방, 호모큐라스를 위한 처방전〉이다. 호모큐라스는 ‘스스로 치유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이다. 병원과 약국에 가지 말고 자가 치료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병원과 약국에 가더라도 치료의 ‘자기주도권’을 놓치지 말자는 의미가 더 크다. 그러려면 내 질병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질병이 생기게 된 생활습관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프롤로그> 중
워킹맘 수연의 만성피로도 ‘불량 교사’, ‘불량 주부’라는 캐릭터가 살아 있는 코믹 장르로 풀어보면 어떨까? 학생들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 주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고민 상담을 일삼는 교사로. 엄마라기보다는 룸메이트에 가까운 가족의 일원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새로 설정하고 세계관을 구축하면 이제까지와 다른 ‘수연월드’가 만들어 지리라. 요즘 유행하는 미스터리 장르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도대체 수연의 정체가 무엇인지 양파 껍질처럼 파헤쳐 가는 스토리도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올 수 있다. 물론 쉽지 않다. 그래도 이런 헛소리에 어이없어하며 실소를 터뜨린다면 좋겠다. <만성피로에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처방합니다> 중
그녀의 육아휴직은 올해로 2년차에 접어들었다. 올해 아기는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했고 그녀도 자기 시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쯤, 그녀의 남편은 몇 번의 실패 후 이직에 성공해 교육 기간에 접어들었다. 교육은 재택근무로 진행되니 남편이 아기 어린이집 등하원을 맡고 그녀는 치질 시술을 받기로 했다. 이십 대에도 시술을 받았던 유경험자답게 그녀는 모든 것을 낙관했다. 시술은 간단하고 회복은 빠를 것이다. 물론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기는 자주 감기에 걸렸고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칭얼대는 아기를 어르고 달래려니 그녀의 몸은 회복이 더뎠다. 이 와중에 남편은 줌으로 진행되는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원칙대로 책상 앞을 떠나지 않았다. 잠시 카메라 위치를 옮겨놓고 아기를 봐줘도 될 텐데 그러지 않았다. 이건 융통성이 없는 건가, 인정머리가 없는 건가? <산후우울증에 박상영의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을 처방합니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