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기억의 한 방법 /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뭘 하고 있었는가
은희경
(…) 노란 깃발들이 나부끼는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무섭도록 넓고 검고 무심하게 움직이는 바다와 슬픈 사람들의 무리를 보았을 뿐이었다. 천막들 안에는 가족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기진해 있었 다. 유족들이 있는 실내체육관으로 갔지만 거기에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문 앞에서 머뭇대다가 누군가 문을 열었을 때 얼핏 체육관 안을 보게 되었다. 바닥에 침구와 짐들이 흐트러져 있는 그 임시거처는 너무나 넓었다. 너무나 거대한 일이 일어나버린 것이었다. 어쩐지 틈입해서는 안 될 신성한 슬픔의 자리 같아서 나는 그 문 앞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접수처에 가서 며칠이나마 봉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고령’에다 생활에 관해 무능하고 제대로 된 쓰레기 분류법마저 얼른 숙지하지 못하는 나는 여러 면에서 미달이었다. 나의 생활 무능은 그뿐이 아니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범주 안에서 스무 군데 가까운 여관에 전화를 걸어 봤지만 숙소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세월호와 관련돼 외지 사람이 몰려들었으니 예상을 해야 했는데 내게 그런 용의주도함이 있을 리 없다. 바가지요금으로 가까스로 낡은 여관방이나마 얻은 것도 다행이었다.
이제 그날 그 여관방에서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사실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는 이 자리의 발언권을 얻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그냥 나라는 개인이 겪은 세월호 이야기라면 그 꿈은 분명 작가로서의 내가 꾼 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나는 어떤 낯선 숙소의 마당에 들어서는 참이었다. 누군가 손님이 찾아왔다고 전해주었다. 손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방문 앞에 섰는데 순간 공포로 몸이 덜덜 떨렸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습기가 훅 끼쳐 왔다. 너무나도 무서웠다. 아마 나는 그 손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맹렬히 도망 치고 싶었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알 수없는 거대한 어둠이 나를 덮쳐 오는 듯한 극심한 두려움 속에 문고리를 잡는 순간 잠이 깼다. 아직 깨어 있던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그가 굳은 목소리로 ‘그 애들이 왔던 걸까’라고 말했다.
그들이 왔었던 걸까. 모르겠다. 그런 얘기가 아니다. 다만 너무나 두렵지만, 그 문을 열고 그곳에 있는 존재와 맞닥뜨려야 한다는 생각이, 그래서 내가 그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언젠가 나는 내가 문맹률 70% 인 나라의 작가라고 해도 앞장서서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일 만한 용기는 없을 테니 겨우 삶의 조건이 제한된 어둠 속의 사람들 이야기를 소설로 쓸 거라고 말한 적 있다. 또 언젠가의 나는 소설 속에서 질문만 던질 뿐 어떤 답을 제시할 수 없다고 말했 다. 그 두 가지 생각 모두 변함이 없다. 여전히 나는 사회문제에 직접 발언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현재의 시점에서 찾아낸 임시 답안을 진실이라고 공고히 할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날 밤 그들의 방문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작가로서 내가 어떻게 변할지 혹은 변하지 않을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세월호 이전의 그 작가와 똑같지는 않다.
이 글을 쓰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연년생 아이들을 재운 뒤 밤늦게 집 안 정리를 마치고 식탁 위에 아르바이트로 하던 교정지를 펼쳐놓고 앉았다가 그대로 엎드려 잠들어버렸던 시기가 있었다. 고단하고 외롭고 스스로가 하찮게 여겨졌던 그 시절에 그나마 나의 존엄을 지켜준 건, 책이었던 것 같다. 박몽구의 『끝내 물러서지 않고』를 읽고 내 밥그릇을 위해 싸워주는 작가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내 지성이었고,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에서 나의 초라함의 맥락을 이해받는 것이 내 윤리다. 그 기억이 왜 떠올랐는지는 모르 겠다. 혹시라도 내 책을 읽을지 모를, 그때의 나처럼 고단하고 외로운 누군가가 오답에 적응하려고 애쓰거나 거짓 위안에 길들지 않도록 막아주고 싶다는 생각만은 강하게 든다. 내가 읽어온 작가들이 나에게 해주었듯이 말이다.
잊는 것이 완전한 애도라는 서양 속담을 읽은 적이 있다. 잊혀지는 데에는 조건이 있다. 밝혀지지 않은 일을 어떻게 잊을수 있는가. 오해받는 채로 잊혀지는 건 새로운 죽음이다. 완전한 애도를 위해서는 사건이 진실에 입각해 완결되어야 한다.
그 전까지는 우리 모두 잊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가진 하나 씩의 세계, 304개의 세계를.
2014년 9월의 첫 낭독회에서 우리는 광화문 광장에 둥글게 모여 섰습니다. 다른 이가 쓴 문장들을 자연스레 합류한 또 다른 이가 읽으며 곁에 선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건네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용기였습니다. 깨어지고 훼손되어 침몰한 듯이 보이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깁고 연결하여 복원하려는 가느다란 용기.
304낭독회는 이 끊이지 않는 가느다란 용기에 의해 매달 열려왔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어린이 대공원에서, 독립책방들에서, 홍대 두리반에서, 전태일 기념관에서, 옥바라지 골목에서, 작은 도서관들에서, 안산에서, 제주에서, 파리에서, 광주에서……. 10년간 4시 16분에 모여들어 시를, 편지를, 소설을, 이야기를 낭독해왔습니다. 슬픔을 나누는 일은 우리의 용기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으며, 용기 없음을 고백하는 일은 그럼에도 지금의 현실과 비참을 이대로 수락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유가족들의 슬픔이 존엄한 저항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함께 목도했으며, 그 싸움이 다만 그분들만의 것일 수 없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