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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이렇게 모여, 우리는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낭독회 여는 글: ○번째 낭독회를 시작하며

낭독 작품
그날 이후 | 진은영
잘 가라, 아니 잘 가지 말라 | 황현산
손, 전화기 | 김나영
슬픔을 시작할 수가 없다 | 이영주
김이 나는 라면을 끓여 먹는 순간 | 김성규
뒤집어쓴 얼굴 | 이여경
어떻게들, 지내십니까 | 황정은
팽목항에서 | 임선기
일년 | 김사인
수인囚人-죽은 시간 속에서 | 이민하
가라앉은 방 | 박연준
안산 순례길에 부쳐 | 심보선
들리세요? 제 목소리! | 신미나
꽃이 해마다 피어나듯이 | 권여선
오늘의 편지 | 서윤후
이상한 계절 | 김선재
새벽 | 박시하
죄 없는 사람들의 도시 | 김이정
우리가 아이를 잃는다면-경빈 엄마에게 | 김경인
비의 나라 | 황인찬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 | 진은영
깜빡임 | 이장욱
슬픔 주체로 살아가기 | 은유
가려진 시간 속 열여덟 살 친구들과 함께 쓴 이야기 | 유현아
기억의 한 방법 /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뭘 하고 있었는가 | 은희경
구두 속에 새가 잠들어 있다 | 주민현
우리의 눈이 마주친다면 | 윤해서
등대로 | 김이강
여름을 밀어내고 봄이 바다가 되었습니다 | 김혼비
나의 거인 | 박소란
사월 | 문동만
호명 | 강지혜
4월의 해변 | 이영주
잘 지내니? | 하명희
졸업식 | 이종민
짝꿍의 이름 | 박은지
그런 일이 있었다 | 유희경
또 비가 와, 너는 안 오고 | 김서령
다리 아래 | 신미나
너를 보내는 숲 | 안희연
사월에서 사월로-검으나 이 땅에 한 이름을 지녀 | 허은실
슬픔을 부르는 저녁 | 문신
청계천의 고독 | 신해욱
게니우스 로키(Genius Loci) | 박세미
소요 | 박소란
낭독회 | 조해주
안젤름 키퍼와 걷는 밤 | 주민현
거울 | 강성은
안 뒤푸르망텔의 『온화의 힘』을 읽다 | 윤경희
나는 너를 찾는다 | 정다연
안녕하세요 | 최지혜
2015년 10월 19일의 일기 | 김경은
면목 심기 | 이선진
나는 나라서 | 최지은
한국식 낮잠 | 임승유
노란 리본을 단 사람을 보면 | 황인찬
유령환각 | 한연희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 김은지
가장 건강한 삶의 한 조각 | 윤유나
Love me tender-304개의 이름에게 | 이훤
깊은 일 | 안현미
우리는 정말 실패했을까요 | 유현아
매일 아침 견과 | 조용우
오래달리기 | 한여진
마음 1 | 이영광
팽목항에 가보자 | 낭
4월의 도서관 | 정고요
피에타 | 김해자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 나희덕
사월의 넋두리 | 문동만
이름 | 양경언
사람에게도 ‘떨켜’가 있다면 | 이소연
한 사람에 대한 나뭇잎 | 김현
그대로 있는 자리 | 최지혜
4월의 이름들, 10월의 이름들 | 신해욱
선릉과 정릉 | 전욱진
사건 이후의 세계 | 백온유
제자리 두기 | 손유미

낭독회 닫는 글: 함께 읽는 글

대담: 읽고 쓰기에 담긴 힘을 믿는다는 것 | 김현·양경언·황정은
후기: 나는 그것을 믿는 당신을 믿기로 했다
304낭독회 회차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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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 304낭독회 2014~2023 선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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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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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심연 속에서 길어 올린
우리 내면의 목소리, 304낭독회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는 한국의 작가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지난 10년간 치러온 ‘304낭독회’의 작품선집이다(304낭독회의 이름에서 ‘304’는 세월호참사의 희생자 304명을 뜻한다). 낭독회 일꾼들은 2014년 9월부터 총 304회의 낭독회를 치러보자고 결심하고 매월 한 차례씩 행사를 열어왔다(304회를 채우려면 총 25년이 걸린다). 이 낭독회에서 그동안 연인원 총 1,196명이 1,223편의 작품(노래‧연주 및 공연 53회 포함)을 낭독, 발표했다. 이 책에는 그중 68명의 작가가 낭독한 작품 78편을 담았다.

“304명의 이름을 잘 부르는 일”

세월호참사 이후 사회 전체가 여전히 충격과 고통 속에 빠져 있던 2014년 8월 27일, 스물다섯 명의 작가가 세월호 관련 ‘긴급행동’을 벌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팽목항이든 광화문이든 안산이든 어느 현장에서든 작가들은 자신의 글을 통해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힘을 보태자고 뜻을 모았다. 그로부터 20여 일쯤 지난 2014년 9월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긴급행동―첫 번째 304낭독회’가 열렸다. 아직 끝나지 않은, 2024년 3월 현재까지 연인원 1,196명이 1,223편의 작품을 낭독하고 발표해온 ‘304낭독회’의 시작이었다. (304낭독회의 시작에 대해서는 김현·양경언·황정은의 「대담」을 참고.)
첫 낭독회에서는 작가들과 작가의 친구들이 옹기종기 둥그렇게 모여 서서 문장 306개를 읽었다. 광화문 거리를 걷던 시민들이 그 옆 빈자리를 채우며 그 원은 조금 더 촘촘해지고 더욱 커졌다. 그 당시의 경험은 무척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자연스레 몇몇 작가들들이 ‘일꾼’을 자처하고 나섰다. 대략 20~30명의 작가들이 단체 SNS 창에서 다음 회 낭독회에 대해 논했고 행사 당일 4시 16분이 되면 그중 사회자 역할을 맡은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했다. “약속한 4시 16분이 되었습니다. 304낭독회 시작하겠습니다. 여는 글로 문을 열겠습니다. ‘오늘은, 4월 16일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모인 오늘은…’”
만약 우리에게 달마다 얼마만큼의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나와 이웃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우리 각각은 어떤 말을 털어놓을까. 그 말에는 선의가 담겨 있을까, 그 어투는 단정히 정돈되어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그 자리에 앉아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꽤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 반향을 느끼며 내 목소리뿐 아니라 “서로의 목소리가 공명하여 더 크고 넓게 울려 퍼질”(15면) 것을 알았으리라. 즉 문학이 활자매체에서 일어서서 우리의 일상에서 각자의 목소리로서 서로 부딪히며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초기의 낭독회에서는 참사의 고통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낭독하는 이도, 그 말을 듣는 이도 마음이 무거웠다. 문학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그러했다. “이 언어의 무능함과 마음의 무능함이 대낮에 두 눈을 뜨고 그 수많은 생명들을 잃어버린 한 나라의 무능함과 같다. 잘 가라, 아니 잘 가지 말라. 이렇게 쓰는 만사(輓詞)가 참으로 무능하다. 잘 가라, 아니 잘 가지 말라.”(24면)
낭독회가 작가들만 고요한 안뜰이 아니라 시민들이 다 같이 참여하는 열린 마당이라는 점은, 하나의 고정된 장소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투쟁현장을 비롯하여 다양한 장소를 오가며 열린다는 점은 낭독회에 크고 작은 활기를 가져다주었다. 묵직한 이야기들 속에서도 약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랄까. 참사 초기에는 낭독회 참가자들이 참사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때로는 이 사회의 무감함에 절망하며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모아주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낭독자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그 톤을 달리한다. 단순히 세월호참사를 추모하는 일을 넘어 우리의 생활을 고백하는 말들이 낭독회의 토대를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 젠트리피케이션, 산업 재해, 미투 운동, 기후위기 문제 등을 깨우치는 목소리도 빠짐없이 담겼다. 우리 사회의 풍경을 천천히 읊으며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면 그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304낭독회는, 아니 한국사회는 어떻게 변모했을까, 아니 바뀌지 않았을까. 우리는 “여전히 기쁘고 또 슬프”며(246면) “슬픔이 견딜 수 있는 것이라는 게 이상하다”(252면)라고 느낀다. 그리고 우리의 애도가 차츰 바뀌어가고, 또 바뀌어가지 않는 것을 느낀다. 소설가 황정은의 다음과 같은 말처럼. “나는 애도라는 것이 늘 처음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알맞은 과정을 거치면 애도는 다른 것이 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혹은 기도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삶 ‘속에’ 애도가 있다. 애도가 삶보다 크면 어떻게 되겠나. 그런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남은 사람들은 애도를 끝낼 수 없다. 국가와 사회가 애도를 끝낼 기회를 주지 않는데 어떻게 애도를 끝내나. 삶이 애도가 되어버린다. 책임 있는 모든 사람이 당사자들에게 저지르는 가해다. 나는 이게 세월호참사와 10.29 참사의 생존자들, 유가족들에게 한국 사회가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한다.”(297면)

“희망은 지난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만들어진다”

재난참사 이후 다양한 연대 활동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했다. 하지만 304낭독회처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월 꾸준히 자리를 마련하는 활동은 찾기 어렵다. 낭독회 일꾼들은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이분들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낭독회도 계속된다.”(298면)
낭독회의 작가들이 10년이 지나서도 힘을 잃지 않는 데에는 또 어떤 이유가 있을까. 그에 대해 낭독회 일꾼들은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고, 절망은 언제나 이른 판단일 뿐이라는 것 (…) 희망은 지난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만들어진다”(304면)고 이야기해준다.
낭독회 일꾼인 시인 김현, 평론가 양경언이 소설가 황정은과 함께 이야기 나눈 대담, 「읽고 쓰기에 담긴 힘을 믿는다는 것」은 이 책의 별미다. 책을 일별하면서 낭독의 일정한 리듬과 호흡에 익숙해졌을 독자들이라면 김현, 양경언, 황정은의 대담에서 한편으론 발랄하고 다른 한편 묵직한 목소리를 통해 작가들의 생생한 생각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전히 고립과 망각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있기에, 이 낭독회는 304회째를 지나서도 계속될 것 같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오래전 6.9작가선언이 304낭독회의 토대가 되었듯이, 4.16 세월호참사의 시간이 10.29 이태원참사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듯이, 작가들은 먼 미래의 사회적 고통과 어깨를 겯고 일어설 것이다.
304낭독회의 「여는 글」은 낭독회에 참여하는 이들에 의해 조금씩 고쳐지고, 덧붙여진다. 이 같은 ‘공동의 집필’이 꾸준히 이어진다는 점은 304낭독회의 생명력의 주된 원천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여는 글」은 ‘112회째 낭독회의 여는 글’로서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앞으로도 사회적 참사를 생각하는 서로의 목소리가 공명하여 더 크고 넓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지금 서 있는 시간으로부터, 슬픔과 분노로 멈춘 우리의 시계가 다시 움직일 때까지, 계속 읽고, 쓰고, 행동하겠습니다.”
서문에서 시인 하재연이 말하듯 304낭독회에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보내는 희망의 편지이며, 우리가 달고 있는 노란 리본에 담겨 있는 빛의 의미”이다. “이 목소리에 부디 귀 기울여주기를, 당신의 목소리를 덧붙여주기를 (…) 언젠가는 함께 낭독회 후에 읽어 내려가는 다음의 문장들을 같이 읽을 수 있기를”(8면) 바란다.

이렇게 모여, 우리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꿈을 꿉니다.
목숨이 삶으로, 무덤이 세상으로, 침묵이 진실로 돌아가는 꿈을 꿉니다.
이렇게 모여, 우리는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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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기억의 한 방법 /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뭘 하고 있었는가

은희경

(…) 노란 깃발들이 나부끼는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무섭도록 넓고 검고 무심하게 움직이는 바다와 슬픈 사람들의 무리를 보았을 뿐이었다. 천막들 안에는 가족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기진해 있었 다. 유족들이 있는 실내체육관으로 갔지만 거기에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문 앞에서 머뭇대다가 누군가 문을 열었을 때 얼핏 체육관 안을 보게 되었다. 바닥에 침구와 짐들이 흐트러져 있는 그 임시거처는 너무나 넓었다. 너무나 거대한 일이 일어나버린 것이었다. 어쩐지 틈입해서는 안 될 신성한 슬픔의 자리 같아서 나는 그 문 앞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접수처에 가서 며칠이나마 봉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고령’에다 생활에 관해 무능하고 제대로 된 쓰레기 분류법마저 얼른 숙지하지 못하는 나는 여러 면에서 미달이었다. 나의 생활 무능은 그뿐이 아니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범주 안에서 스무 군데 가까운 여관에 전화를 걸어 봤지만 숙소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세월호와 관련돼 외지 사람이 몰려들었으니 예상을 해야 했는데 내게 그런 용의주도함이 있을 리 없다. 바가지요금으로 가까스로 낡은 여관방이나마 얻은 것도 다행이었다.
이제 그날 그 여관방에서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사실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는 이 자리의 발언권을 얻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그냥 나라는 개인이 겪은 세월호 이야기라면 그 꿈은 분명 작가로서의 내가 꾼 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나는 어떤 낯선 숙소의 마당에 들어서는 참이었다. 누군가 손님이 찾아왔다고 전해주었다. 손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방문 앞에 섰는데 순간 공포로 몸이 덜덜 떨렸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습기가 훅 끼쳐 왔다. 너무나도 무서웠다. 아마 나는 그 손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맹렬히 도망 치고 싶었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알 수없는 거대한 어둠이 나를 덮쳐 오는 듯한 극심한 두려움 속에 문고리를 잡는 순간 잠이 깼다. 아직 깨어 있던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그가 굳은 목소리로 ‘그 애들이 왔던 걸까’라고 말했다.
그들이 왔었던 걸까. 모르겠다. 그런 얘기가 아니다. 다만 너무나 두렵지만, 그 문을 열고 그곳에 있는 존재와 맞닥뜨려야 한다는 생각이, 그래서 내가 그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언젠가 나는 내가 문맹률 70% 인 나라의 작가라고 해도 앞장서서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일 만한 용기는 없을 테니 겨우 삶의 조건이 제한된 어둠 속의 사람들 이야기를 소설로 쓸 거라고 말한 적 있다. 또 언젠가의 나는 소설 속에서 질문만 던질 뿐 어떤 답을 제시할 수 없다고 말했 다. 그 두 가지 생각 모두 변함이 없다. 여전히 나는 사회문제에 직접 발언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현재의 시점에서 찾아낸 임시 답안을 진실이라고 공고히 할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날 밤 그들의 방문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작가로서 내가 어떻게 변할지 혹은 변하지 않을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세월호 이전의 그 작가와 똑같지는 않다.
이 글을 쓰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연년생 아이들을 재운 뒤 밤늦게 집 안 정리를 마치고 식탁 위에 아르바이트로 하던 교정지를 펼쳐놓고 앉았다가 그대로 엎드려 잠들어버렸던 시기가 있었다. 고단하고 외롭고 스스로가 하찮게 여겨졌던 그 시절에 그나마 나의 존엄을 지켜준 건, 책이었던 것 같다. 박몽구의 『끝내 물러서지 않고』를 읽고 내 밥그릇을 위해 싸워주는 작가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내 지성이었고,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에서 나의 초라함의 맥락을 이해받는 것이 내 윤리다. 그 기억이 왜 떠올랐는지는 모르 겠다. 혹시라도 내 책을 읽을지 모를, 그때의 나처럼 고단하고 외로운 누군가가 오답에 적응하려고 애쓰거나 거짓 위안에 길들지 않도록 막아주고 싶다는 생각만은 강하게 든다. 내가 읽어온 작가들이 나에게 해주었듯이 말이다.
잊는 것이 완전한 애도라는 서양 속담을 읽은 적이 있다. 잊혀지는 데에는 조건이 있다. 밝혀지지 않은 일을 어떻게 잊을수 있는가. 오해받는 채로 잊혀지는 건 새로운 죽음이다. 완전한 애도를 위해서는 사건이 진실에 입각해 완결되어야 한다.
그 전까지는 우리 모두 잊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가진 하나 씩의 세계, 304개의 세계를.
2014년 9월의 첫 낭독회에서 우리는 광화문 광장에 둥글게 모여 섰습니다. 다른 이가 쓴 문장들을 자연스레 합류한 또 다른 이가 읽으며 곁에 선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건네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용기였습니다. 깨어지고 훼손되어 침몰한 듯이 보이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깁고 연결하여 복원하려는 가느다란 용기.
304낭독회는 이 끊이지 않는 가느다란 용기에 의해 매달 열려왔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어린이 대공원에서, 독립책방들에서, 홍대 두리반에서, 전태일 기념관에서, 옥바라지 골목에서, 작은 도서관들에서, 안산에서, 제주에서, 파리에서, 광주에서……. 10년간 4시 16분에 모여들어 시를, 편지를, 소설을, 이야기를 낭독해왔습니다. 슬픔을 나누는 일은 우리의 용기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으며, 용기 없음을 고백하는 일은 그럼에도 지금의 현실과 비참을 이대로 수락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유가족들의 슬픔이 존엄한 저항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함께 목도했으며, 그 싸움이 다만 그분들만의 것일 수 없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