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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스위스행 종이비행기 : 한명희 시집 / 지은이: 한명희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여우난골, 2024
청구기호
811.15 -24-879
자료실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도서위치안내(서울관)
형태사항
148 p. ; 20 cm
총서사항
시인수첩 시인선 ; 086
표준번호/부호
ISBN: 9791192651262
제어번호
MONO12024000029610

목차보기더보기

시인의 말

[1부]
대유목 시대·13
거미줄 연구가·15
메모리얼 파크·18
죽고 나서야 그의 이름이 밝혀졌다·20
이 지, easy, 理智·22
나의 첫 남자들·24
단둘이 복숭아 꽃잎을 본다·26
꽃시절·28
빨간 구두 아가씨·30
빨강·32
변검을 배우고 왔다·34
빠른 일곱 살·36
우산이 없는 계절·38
다문 손·40
꽃 중의 꽃·42
저 빛나는 몸에서·43
이십 대·44
스펀지·46
어쨌든 집을 향해·48
이유의 이유·50
삼십 대의 가로수 길·52

[2부]
1704호의 유령·57
연극배우·58
요양원에 면회 가기·60
토우들의 방·62
푸르스름한 그것·64
삼인사각·66
식구·68
새벽 비·70
당신은 호박이 꼭 필요하다고 했지·72
비둘기, 비둘기들·74
여기, 독사가 있다-블랙 위도·76
마른 잎이 있는 풍경·78
틈·80
이주민·82
7과 12분의 7·84
울다가 가자·85
마지막 조문객·86
절정·88

[3부]
결혼식과 시상식·91
귀 없는 새·94
투명·96
누구의 누구·98
과거 여행자·99
스위스행 종이비행기·100
다단계 행성·102
이런 사랑·105
이제·106
완벽한 타인·108
너도밤나무와 나도밤나무에서·110
오리오리 꽥꽥·112
다음에·113
매혹·114
저녁 산책·116
밤의 놀이터·118
도시락을 볼 때면·120
사방에서 냄새가 났다·122
조조 영화가 참 좋았다·123
바다 고양이·124
어렴풋한 생각·126
벵골고무나무 아가씨·128

해설 | 황정산(시인ㆍ문학평론가)
“아나키스트의 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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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099527 811.15 -24-879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3099528 811.15 -24-879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매혹적이면서도 매우 위험한 ‘시집’

    등단 30년이 넘는 한명희 시인의 시집 『스위스행 종이비행기』가 시인수첩 시인선 86번째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지금까지 그가 생산한 문장과 우리를 향해 쏟아낸 사유의 지평을 ‘아나키스트’의 위험하고 매혹적인 지평까지 정교하게 파내려감으로써, 자신의 미학을 더욱 확대하고 공고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연하지만, 바로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시인의 결코 에두르지 않는 문장의 묵직하고 매운맛을 느끼게 된다.
    한명희의 시를 읽으면 어떤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는 황정산 시인(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그러한 강도는 시인이 추구했던 내적, 외적 자유로움에서 오는 것이다. 시인은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많은 것들에 딴지를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미신과 헛된 편견으로부터 온 것인지 우리에게 까발려 준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신념도 가치도, 우리가 의지하고 살고 있는 가족이나 제도나 인간관계까지도 모두 벗어난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시인의 시를 읽는 순간 우리는 모두 시인을 따라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버리고 때로 내게 주어진 생명까지도 버리고 가볍고 투명한 존재가 되고 싶어진다. “부모가 깔아놓은 길과 / 스승이 알려준 길의 교차점 / 그 어디쯤 / 거기서 그는 길을 잃었다 // (중략) // 투명해져야겠다는 생각이 / 온몸 가득 차올랐을 때 / 그는 거기서 뛰어내렸다 // 아무에게 묻지 않고도 / 스스로 길을 찾아내었다”(「투명」)는 이 불가항력적인 역린이, 저항과 되새김이 그 실체가 아닐까.
    황정산 시인은 다시 강조한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이라고. 부모도 스승도 신앙도 규범도 가르쳐 주지 않은,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을 거부하는 길을 가는 것이다. 그것은 자유로운 길이기도 하지만 투명하게 자신의 존재까지도 지워야 할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한명희 시인은 이 시집의 시들을 통해 이 위험한 길로 갈 것을 담담한 어조로 설득하고 있다.
    이 같은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작품의 전개는 ‘여성’이기 때문에 부여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욕망과 금기를 단숨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념과 의지로도 표출된다. 물론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도약은 아나키스트-되기의 한 계보를 이룬다.
    이를테면, “저주는 풀렸어도 / 구두를 벗지는 않을 거야 / 큐빅이 박힌 빨간 구두를 신고 / 계속 춤을 출 거야 // 악사여 연주를 계속해요 / 더 크게 더 빠르게 // 발가락에서 피가 솟고 / 구두에 핏물이 고여도 / 춤을 멈추지 않겠어요 // 잘린 발목으로 / 계속 원을 그리겠어요 / 더 크게 더 빠르게 // 저주의 주문은 짧고 / 춤추는 밤은 길었지요 / 덕분에 나는 / 모든 스텝을 익혔어요 // 슬로우 슬로우 퀵 퀵 / 슬로우 슬로우 퀵 퀵 // 악사여 연주를 계속해요 / 저주의 날들을 / 계속 기억하겠어요 / 빨간 구두를 신고 / 크게 크게 원을 그리면서”(「빨간 구두 아가씨」)에 은밀하게 나타나고 있듯, 시인은 자신에게 부여된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젠더를 주시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교차하며, ‘아나키스트’로서 백지화하려고 한다. 어쩌면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시집에 잠재된 매혹과 위험을 동시에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시인은 가부장이라는 악습을 필사적으로 밀어내려는 시도도 지속한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 저는 요즘 마천루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 높은 빌딩일수록 / 첨단공법이 많이 들어가니까요 / 하중을 분산시키는 방법을 / 찾아내고야 말겠어요 아버지 // 우리 아버지 / 요즘은 무엇을 연구하실까 / 무엇이든 아버지 / 제 걱정은 마세요 / 저는 아버지와 다르니까요”(「거미줄 연구가」)와 같은 작품에서 나타나듯, 시인은 가부장을 대체할 이념 찾기에 골몰하기도 한다.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아버지와는 다르다’는, 평범하면서도 구체적인 진리 때문이다. 다름으로써 파생되는 차이는, 그것이 보편적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충분히 아름답고 건강하다.



    ◨ 다음은 시집에 관하여 시인과 나눈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Q] 주제와 이야기의 방향은?
    [A] 내 시에 일관된 주제나 방향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의식적 차원에서의 분석이라면 분명 내 시집 속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의식적으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써야겠다고 해 본 적은 없다. 네루다를 알기 훨씬 이전부터도 나는 ‘시는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에게로 시가 오게 만드는 어떤 ‘주술’ 같은 것은 있다. 그러나 그것까지 밝힐 수는 없다. 그것은 분명 부끄러운 것이므로.

    [Q] 이번 시집의 특징은?
    [A] ‘나’가 나 혼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타인’들 속에도 내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나를 타인처럼 들여다보고, 타인들을 나처럼 들여다보아야 했다. 내 속에 너무 많은 타인들의 목소리와 타인들 속에서 발견되는 나의 모습에 주목했다. 이 모든 ‘나’는 희극보다는 비극에, 양지보다는 음지에, 낮보다는 밤에 조금씩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경쾌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비극을 맑고 밝은 톤으로 노래했다.

    [Q]나는 어떤 시인인가?
    [A] 나는 규정되기 싫어하는 시인이다. 너는 이렇다고 누군가 정의하는 순간,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준비를 한다. 아니다. 더 정확히는 그것만이 내가 아니라고 주장하게 된다. 남들이 아는 나와 내가 나는 나의 불일치. 그 속에서 내 시가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나는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꿈틀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 보려는 시인이다.
    ― 「저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 해설 들여다보기

    “아나키스트의 시 쓰기”


    시인은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종교적 교의를 설파하고 규범과 도덕을 지키자는 글을 쓰는 것은 시인의 역할이 아니다. 시인은 그것들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자이고 그것의 가능성을 알리는 자이다. 그는 지켜서 얻는 안주와 평안보다는 벗어나서 겪게 되는 불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래서 찾게 될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어쩔 수 없는 아나키스트이다.한명희 시인의 이번 시집의 시들은 이런 벗어나기가 무엇인지 잘 말해준다. 시인은 아나키스트로 자신을 이렇게 규정한다.

    나의 땅이 아니니
    집을 짓지 않습니다

    나의 대통령이 아니니
    투표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주관한다지만
    나의 신이 아니기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국경 근처가 의외로
    경비가 허술합니다

    사원이 있는 동네에서는
    오래 머무르지 않습니다

    방향을 제일 잘 아는 건 역시
    유목민이고요

    그들을 따라
    핸드폰과 노트북을 챙깁니다

    어디까지든 가볼 참입니다
    - 「대유목 시대」 전문

    이 시에서 제목인 “대유목 시대”는 ‘디지털 노마드’를 지칭하고 있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사이버 세계에서는 국가가 지배하는 영토도 없고 신을 모셔야 할 사원도 없다.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넘어 자유로운 세계를 항해한다. 시인이 “투표하지 않”고 “사원이 있는 동네에서는/오래 머무르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은 바로 이 노마드의 세계에 아나키스트로 주유하고자 하는 소망을 표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핸드폰과 노트북”이라는 쓰기의 도구가 필요하다. 시인은 이 쓰는 행위를 통해 “어디까지든 가볼” 무모한 모험을 감행하는 자이다. “국경 근처가 의외로/경비가 허술합니다”라는 구절이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다. 우리는 경계에서 항상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넘어설 때의 처벌을 두려워한다. 그 경계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고 넘고자 하는 자에게 아무런 두려움이 되지 못함을 지적하며 그곳을 넘자고 우리를 유혹한다. 경계는 사실 우리의 관념을 지배하는 가상의 억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사실 우리는 모두 이주민이다. 우리가 사는 삶의 조건 자체가 우리에게 끝없이 지금 여기를 벗어나 다른 것이 되고, 다른 존재의 삶으로 살기를 강요한다. 우리의 삶은 관계 속에 얽혀 든든하게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든 뿌리 뽑히고 쫓기고 밀려나 살 수밖에 없는 이주민의 운명을 모두 가지고 있다. 특히 다변하고 복잡한 현대 사회의 삶은 이런 삶의 양식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이주가 끝나자
    가장 먼저 나무가 베어졌다
    큰 나무일수록 먼저 베어졌다
    쓰러져서도 나무는 4층짜리 아파트보다 컸다

    나무가 섰던 자리마다 구멍이 생겼다
    구멍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많았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구멍이 보이기도 했다

    …(중략)…

    그다음에도
    많은 일들이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주민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나무의 일도 구멍의 일도
    이주민이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벽 뒤에서 움직이는 저것이 무엇인지
    이주민은 알아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나무가 뽑힌 자리
    다시 나무가 들어설 수는 없다는 것만이 확실했다
    - 「이주민」 부분

    우리는 내 나라 내 땅에서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뿌리가 과연 확실한가 시인은 묻고 있다. 언제든 뽑혀 나갈 수 있고 언제든 이주자가 되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한다. 사람들은 이 허망한 뿌리를 자신의 근원이라 여기며 지키고 보존하며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이주민이었다. 어디선가 떠밀려 여기까지 와 살고 있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사회 현실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것이 만든 울타리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시인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확실한 것은 “다시 나무가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해 세상에 영원한 안주와 뿌리내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나키스트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영토에 대한 미신을 버리고 이 불안한 이주와 방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로서의 시인은 편안한 정주를 버리고 끝없는 이 유랑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 시는 벗어나야 할 곳으로서의 집의 존재를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집이 두 채라면 모두들
    부러워하지
    한 채는 적도 부근에
    또 한 채는 북극 부근에 있다고 하면
    다들 놀라워하지

    지금 어디에 있니
    어디쯤이니
    대체 어디니
    지구 곳곳에서 전화가 걸려오고

    나는 늘 말하지
    집으로 가는 중이야
    집에 가고 있어

    나는 정말 집으로 가고 있지
    안나푸르나를 걸어서
    북극해를 헤엄쳐서
    때로는 칼라하리를 기어서라도

    어느 집이니
    어디로 가고 있니
    얼마나 남았니
    의문은 많아도

    그것은 언제나 모르고 모를 뿐
    그래도 열심히 열심히 가고 있어
    집을 향해 가고 있어
    어쨌든 집을 향해
    - 「어쨌든 집을 향해」 전문

    시인은 집으로부터 멀어져 전혀 다른 곳을 가면서 집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제목처럼 돌고 돌아 “어쨌든 집을 향해” 가는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을 벗어난 곳에 자신이 가야 할 집이 있다고 시인이 생각하고 있기에 그렇기도 하다. “적도 부근”이나 “북극 부근”처럼 집을 지을 수 없는 곳에 집이 있다고 말하는 능청이 이를 우회적으로 말해준다. 집을 향해 가는 것이 집을 벗어나는 것이라는 이 아이러니한 행보에 시인의 길이 있음을 한명희 시인은 우리에게 넌지시 일깨워주고 있다. 그런데 그 집으로 가는 길이 쉬운 것은 아니다. “안나푸르나를 걸어서/북극해를 헤엄쳐서/때로는 칼라하리를 기어서” 가야 하는 고행의 길이다. 집을 벗어나, 안주해야 할 영토를 벗어나 아나키스트로서 노마드의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시인은 이리 표현한 것이리라.
    다음 시에서처럼 아나키스트로서 자유로운 주체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생명의 문제까지도 근본적인 시선으로 다시 성찰해야 할 깊은 사유를 필요로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스위스행 비행기는 오지를 않고
    그는 끝내 스위스에 가지 못할 테지

    알프스며 몽블랑이 눈에 선해도
    그의 관심은 오직 베른뿐

    베른의 의사들은 실력 있고 친절하지만
    그를 오래 기다리지는 못할 테지

    스위스행 비행기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도
    이번만은 누구도 탓할 수 없고

    그도 문득 알게 되겠지
    베른의 날씨가 나빠서거나 공항에 사정이 있어서는 아니라는 걸

    그러다 차차 지켜볼 테지
    오랫동안 묵은 고통이 자신의 몸을 떠나가는 걸

    베른의 의사를 보지 않고도 그는 마침내 안락을 찾게 되겠지
    대성당의 종소리 같은 위로가 겹겹이 그를 에워싸겠지
    - 「스위스행 종이비행기」 전문

    인간에게 가장 큰 자유는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선택하는 일일 것이다. 아무리 큰 자유를 찾더라도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는 생명에 관한 일은 신이나 자연의 역할이지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은 죽음마저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로 감행하는 일이다. 스위스행 비행기를 탄다는 말은 바로 그 안락사를 선택해 그것을 허용하고 있는 스위스로 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것이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가상의 비행기인 종이비행기를 타는 상상을 한다. “오랫동안 묵은 고통이 자신의 몸을 떠나가는 걸” 바라보는 최고의 자유를 시인은 상상으로나마 경험하고 있다. 시인은 시를 써 비행기를 띄우고 마지막 경험할 자유를 추체험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이 가상의 종이비행기 접기는 시 쓰기의 은유이다.
    ― 황정산 시인ㆍ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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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이주가 끝나자
    가장 먼저 나무가 베어졌다
    큰 나무일수록 먼저 베어졌다
    쓰러져서도 나무는 4층짜리 아파트보다 컸다

    나무가 섰던 자리마다 구멍이 생겼다
    구멍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많았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구멍이 보이기도 했다

    레미콘이 드나들었을 뿐인데
    나무들은 잎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길고양이들이 뛰어들 틈도 없이
    구멍은 메워졌다

    구멍마다 철근이 박히고 있었다
    예상대로 가벽이 세워질 차례였다

    빌딩을 이어 붙인 것처럼
    가벽은 굳건하고 우뚝했다

    그다음에도
    많은 일들이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주민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나무의 일도 구멍의 일도
    이주민이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벽 뒤에서 움직이는 저것이 무엇인지
    이주민은 알아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나무가 뽑힌 자리
    다시 나무가 들어설 수는 없다는 것만이 확실했다
    - 「이주민」 전문
    그것은 길 건너의 소문에 불과한 것

    아무리 끔찍한 고통이라도
    남의 것이라면

    어제는 꽃이 하나 꺾이었고
    오늘은 별모퉁이가 하나 부서졌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거리의 소문에 불과한 것
    꽃에게도 꽃은, 별에게도 별은 풍문일 뿐

    속을 다 태운 채 말라비틀어진 선인장은
    사막의 소문에 불과할 뿐

    소문이므로 우리는 기억하지 않고
    풍문이므로 우리는 추념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끔찍한 고통이라도
    그것이 남의 것이라면
    - 「완벽한 타인」 전문
    어제는 너도밤나무에서
    오늘은 나도밤나무에서
    새가 떨어졌다

    떨어진 새는
    바닥에 닿기도 전에 부서졌다
    어떤 새는
    품 안에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새들은 왜
    날개를 펴지 않았을까?
    한 번도 써본 적 없었다는 듯
    있는 줄도 몰랐다는 듯

    그런데 새들은 왜
    울지도 않았던 걸까?
    울어도 아무도 듣지 못한다는 듯
    들어도 아무 소용없다는 듯

    떨어진 새들을
    쓸어 모으는 동안
    너도밤나무와 너도밤나무 사이에서
    나도밤나무와 나도밤나무 사이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뭇잎 같기도 하고 밤나무 열매 같기도 했다.

    어디선가 또 새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더 크고 더 선명한 소리였다
    - 「너도밤나무와 나도밤나무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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