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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1777년 판본
1812년 판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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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없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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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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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비방 드농은 외교관이자 행정가이면서 박물관학과 미술사의 선구자로서 루브르박물관 초대 관장으로 널리 알려진, 명실상부 르네상스맨이다. 이 짧은 소설은 드농이 남긴 유일한 문학 작품임에도 프랑스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작품은 ‘리베르티나주’ 문학으로서 18세기 당시 자유분방했던 프랑스의 시대상을 잘 드러낸다. 디드로의 《백과전서》(1751∼1772)에 따르면 ‘리베르티나주’란 “감각의 즐거움으로 이끌어 가는 본능에 굴복하는 습관”으로서, “좋은 품행을 존중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풍습에 맞서려 하지는 않으면서”, “관능과 방탕 사이의 중간 지대”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리베르티나주’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6∼17세기로, 이때는 무신앙을 표방하는 자유사상가들의 입장과 태도를 가리켰다. 그랬던 것이 18세기에 이르러 당시 프랑스 섭정기의 문란한 품행이 덧입혀지면서 그 의미가 상당히 달라졌다. 《내일은 없다》 역시 당대 사회 상류층 일부의 사교 양상, 특히 방탕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남녀 관계의 면모를 여과 없이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이 작품의 주인공 다몽은 이제 막 사교계에 입문한 20대 초반의 청년이다. 당시 상류사회라는 ‘미궁’에 신참으로 발을 들인 젊은이는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부인들’의 지도와 안내를 받게 마련이었다. 다몽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몽은 자신을 이끌고 남편의 집으로 찾아온 T××× 부인과 온갖 ‘굼뜬 의례와 절차’를 생략해 버린 채 하룻밤 관계에 심취해 들어간다. 이들의 쾌락 추구는 그저 태평한 딜레탕트의 탐미주의적 바람기로 비칠 수 있으나, 가벼움, 그것은 철학의 세기라 불리는 18세기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였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서 도덕적 교훈을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당대 가장 뛰어난 심미안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비방 드농의 심미주의의 절정을 이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첫 발표 당시 드농이 아닌, 이 소설을 발견해 잡지에 실은 당대 문인 클로드조제프 도라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다. 이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드농의 작품임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다가 수년 후에야 잘못이 바로잡혔다. 이번 책에는 당대 유명 인사였던 드농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낱낱이 밝히고 도라가 저자로 잘못 알려진 연유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힌 1876년 판본의 편집자 오귀스트 풀레말라시의 글을 함께 실었다. 또한 초판인 1777년과 프랑스대혁명 이후 새로 발표된 1812년 판본을 함께 실어 독자들이 두 글을 비교하여 읽으며 시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했다.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1.
입맞춤도 속내 이야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입맞춤이 입맞춤을 부르고,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서로 달아오르게 하지요. 실제로 첫 번째 입맞춤이 주어지자마자 두 번째가 이어지고, 또 그다음이 이어지고, 서두르게 되고, 대화를 끊고, 입맞춤이 대화를 대신했습니다. 마침내 가까스로 숨을 내쉬게 되었지요. 침묵이 찾아왔고, 침묵의 소리가 들렸고(왜냐하면 때로는 침묵도 들리니까), 침묵이 겁에 질리게 했습니다.
2.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부르르 떨었습니다. ‘성소(聖所)’, 그것도 ‘사랑의 성소’였으니까요! 사랑의 신이 우리를 압도하여 무릎이 꿇어졌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 신이 주는 힘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힘없는 팔들은 서로 얽어졌고, 계획이라고는 전혀 없이 우리는 그 신전의 한쪽을 점유하던 카나페에 쓰러질 참이었습니다. 달은 기울어 가고, 곧이어 마지막 빛줄기가 거추장스러워진 수줍음의 베일을 걷어 가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