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조선시대 불교사의 흐름과 동향 1장조선 전기 승정체제 운영의 실제 _손성필 2장조선 후기 불교 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_이종수 3장조선 후기 불교 문파의 형성과 분기 _김용태
2부조선 불교의 사상과 신앙 4장승가 교육제도와 삼문수행 _이종수 5장선과 교의 병행과 유불의 접점 _김용태 6장불교 의례와 신앙의 다변화 _이종수
3부조선 불교와 사회, 출판 7장조선 왕실의 불교 신앙 _탁효정 8장승도와 사찰의 사회적 존재 양상 _양혜원 9장불교 서적 간행의 추이와 시기별 경향 _손성필 10장불전언해의 역사와 문화적 지형 _김기종
4부불교문화와 예술 11장조선시대 왕실 발원 불상 _유근자 12장조선시대 불교 회화 _이용윤 13장불교 건축과 불탑 _손신영 14장조선시대 불교문학 _김종진
[근대] 1부근현대 불교계의 동향 1장대한제국의 불교 정책과 불교계의 변화 _이승윤 2장 일제의 불교 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_김순석 3장 근대 불교 교단의 형성 _김성연 4장해방 이후 불교계의 동향 _김성연
2부근대 불교의 모색과 굴절 5장일본 불교의 조선 진출과 조선 내 동향 _제점숙 6장근대불교학의 수용과 한계 _송현주 7장근대 불교와 미디어 _조명제 8장근대 불교의 교육 _이경순 9장불교계의 식민지 지배 협력과 동화 _김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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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사 조선·근대 = A history of Korean buddhism the Joseon Dynasty and modern era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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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처음으로 학계의 역량을 집약한 한국 불교사 개설서!
유교와 함께 한국의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불교를 빼놓고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할 수 없다. 불교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다루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불교사는 그 중요성에 비해 여전히 연구자들의 관심 밖에 놓여 있거나 소외된 연구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며 불교사학회 결성과, 시대를 아우르는 개설서 출간을 고민해 온 신라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조명제 교수는 2019년 불교사학회를 결성했다. 불교사학회에서는 고대, 고려, 조선·근대 세 권으로 불교사 개설서를 만드는 데에 뜻을 모으고, 2023년 11월 『한국 불교사: 고려』를 발간했다. 이 책은 그 두 번째 성과물이다.
한국 불교사 3부작 중 두 번째 책!
『한국 불교사: 조선·근대』는 불교사학회에서 기획한 ‘한국 불교사 개설서 3부작’ 중 두 번째 책으로, 조선과 근대 불교를 다룬다. 한국 학계에서 불교사는 여전히 주변적인 연구 분야로 취급되거나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영역이다. 이는 전통적인 중화주의와 서구 근대주의라는 뿌리 깊은 편견과 무관하지 않다. 더욱이 한국 역사학계는 사상사에 대한 관심이 적은 데다가 통념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편견이 여전히 남아 있다. 고대부터 고려 시기까지는 불교 중심 사회이고, 조선 시기는 유교 중심 사회라는 이분법적인 이해에 따라 불교사 연구는 고대·고려 시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 이후의 불교는 국가의 억압을 받아 쇠퇴했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그러나 현존하는 불교문화 유산 대부분이 조선 후기에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의 전통은 조선 시기에 형성되고, 근대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들이 제시한 ‘조선 불교 쇠퇴론’과, ‘침략과 저항’이라는 이항대립에 따른 ‘민족불교론’의 한계에서 벗어나 재조명되고 있는 조선 및 근대 불교의 개념과 성격, 신앙, 의례, 제도, 정책, 교육, 출판, 불상, 회화, 건축,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성과를 소개한다.
권력에서는 밀려났으나 신앙으로서는 탄압받지 않은 조선 불교, 비판적 시각으로 ‘조선 불교 쇠퇴론’을 걷어낸다!
근대 이후 학자들은 조선시대 불교를 숭유억불의 관점에서 기술해 왔다. 조선 전기 권력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불교계가 배제되기 시작해 16세기 중기에 권력에서 완전히 밀려났고, 조선 후기에는 양인 신분으로 전락한 승려들이 승역(僧役)에 시달렸다. 또한 연산군 대부터 시작된 승려 도성 출입 금지가 근대까지 이어졌고 불교계에서는 이를 치욕으로 느꼈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래 유지되어 온 불교 권력을 제도적으로 없애기는 했으나 불교 신앙을 탄압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권력의 관점에서는 숭유억불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신앙의 관점에서 이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성리학에 투철한 사림 세력도 국가체제에서 불교 제도를 제거해 승도와 백성이 저절로 교화되는 정책을 지향했기 때문에 국가의 불교 억압과 유교의 불교 배척이라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이해 틀은 당시 불교계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단이란 것은 원래 유학의 도를 해치지만 유익함을 주는 것도 있다. 불교의 견심(見心)은 방심하는 자의 경계가 되고 불살생은 살생을 좋아하는 자에게 경계가 된다”(이수광, 『지봉유설』).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의 활약은 유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 충효를 강조하는 유학자의 눈으로 보면 부모와 임금을 버리고 출가하는 불교는 무부무군(無父無君)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발발하자 임금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과 싸우는 승려의 모습을 보며 불교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 책 ‘조선 편’에서는 숭유억불이라는 불교 쇠퇴론에 가려져 연구 영역에서 다소 소외되었던 조선 불교를 다양한 주제로 입체화한다.
‘침략과 저항’ 이항대립에 따른 ‘민족불교론’의 한계를 넘어, 불교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조명한다!
근대 불교사 연구는 그 성과가 충분히 축적되지 못한 까닭에 3부로 구성한 『한국 불교사: 고려』나 이 책의 ‘조선’ 편과 달리 2부로 구성했다. 1부 ‘근현대 불교계의 동향’에서는 승군이 머무는 치영이 폐지되고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가 해제된 시기부터 원흥사와 사사관리서 설립, 「국내사찰현행세칙」 발표, 이동인과 탁정식의 개화 활동, 불교연구회 및 명진학교 설립, 원종과 임제종의 대립, 일제의 「사찰령」 시행과 31본산 체제의 성립, 3·1운동과 전시체제에서의 불교계 동향, 해방 이후 불교정화운동이 태동하고 통합종단이 분종에 이르는 과정 등을 다룬다. 2부 ‘근대 불교의 모색과 굴절’에서는 일본 불교의 조선 진출과 이후의 활동 양상, 근대불교학의 의미·성과·한계, 불교 잡지의 등장과 발전, 명진학교에서의 승가 교육, 불교인의 해외 유학과 그 한계, 일제의 불교 동화 정책과 식육대처가 우리 불교사에 남긴 상처 등 ‘민족불교론’의 시각에서 벗어나 폭넓은 주제로 한국 근대 불교사를 톺아본다.
책속에서
[P.33~34]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승정체제가 폐지된 중종 대와 선조 대에도 국가가 승도, 사찰, 불교계를 직접적이고 대대적으로 제재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성리학에 투철한 신료들은 국가체제에서 승정체제를 폐지한 후 승도가 교화되어 저절로 줄어들기를 기다렸을 뿐, 직접적인 제재를 지향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16세기에 승정체제가 폐지된 이후 불교계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가 이루어졌다고 여기거나, 성리학에 투철한 신료가 승도와 사찰에 대한 직접적인 억압을 지향했다고 여기는 막연한 이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1장_「조선 전기 승정체제 운영의 실제」
[P. 55~56] 그런데 정조는 불교에 대해 우호적인 정책을 펼쳤던 임금이다. 승려의 군역과 잡역을 감면하고 해남 대흥사, 안변 석왕사, 묘향산 보현사에 있던 호국 승려의 사당에 사액을 내리기도 했으며, 전국 사찰 편람이라고 할 수 있는 『범우고』를 편찬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의 재궁으로 용주사를 창건했다. …… 그러므로 정조 대의 도성 출입 금지가 불교를 억압하기 위한 정책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해제되기까지 불교계는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를 치욕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1895년 사노 젠레이의 요청으로 도성 출입 금지가 해제되자, 불교계는 일본의 침략 정책을 깨닫지 못하고 “500년 이래의 원통함과 비굴함에서 쾌히 일어서게 하시어”라고 할 정도로 일본 불교를 열렬히 환영했던 것이다. [조선] 2장_「조선 후기 불교 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P. 63~64] 이처럼 불교계는 시대의 변화상에 부응하여 계파와 문파를 형성하고 법통을 통해 서로의 정체성을 공유해 나갈 수 있었다. 문파와 법통의 연결고리는 바로 법맥의 전수였다. 국가에서 선교양종과 승과, 도첩 등의 승정 체계를 관리했던 조선 전기에는 출가 사찰과 소속 종파의 득도사와 수계사가 공식적인 스승으로 인정되었다. 그렇지만 빠르면 16세기 후반, 이어 조선 후기에는 출가나 수계와 관련된 공적 규정이나 현실적 구속력이 사라짐에 따라 개별 사찰 차원에서 이를 자체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오랜 선종의 전통을 반영하여 실제 법을 전수해 준 전법사의 위상이 단연 높아졌다. 계파·문파와 법통의 성립과 함께 이제 법맥 계보가 최우선시되는 ‘전법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조선] 3장_「조선 후기 불교 문파의 형성과 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