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라는 말들 : 김육수 시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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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김육수의 첫 시집 『저녁이라는 말들』을 어느 규격에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시편들이 전개되면서, 공통적인 건 단순소박미와 낭만적인 방랑자의 면모를 향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소박한 심상들은 낭만적인 정조와 밤하늘의 별을 사랑하는 방랑자의 여정이 쓸쓸하지만, 자신을 찾아가는 시인의 길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탐험은 소소하게 펼쳐지는 부분도 있으나 ‘소박한 것은 위대하다’라는 것을 증명한 시인 프랑시스 잠을 생각하면 미소가 나온다. 김육수는 외롭고 쓸쓸한 발걸음의 방랑자로서 혼자만의 아득한 공간에 주목한다. 그 공간에서 대상들을 호출함으로써 그가 부르는 노래와 함께, 공간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그리하여 노래는 진경眞境에 도달하여 무정물과 유정물이 상호교감하면서 전통적인 서정시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김육수의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지는 않는 중용적인 시적 태도를 견인함으로써, 서정의 심상으로 쓸쓸함과 고독에서, 오히려 시의 감흥은 점층적으로 고조된다. 더 많은 시편들을 얘기하고 싶지만, 나머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마땅하다. 일취월장日就月將할 김육수의 시를 생각하며, 또 다른 방랑자로 만날 그를 생각하며, 다음 시집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경(眞境)에 들어서다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필)
김육수는 외롭고 쓸쓸한 발걸음을 가진 방랑자이면서,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아득한 공간에 주목한다. 그 공간에서 대상들의 존재나 추억을 소환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공간은 다시 태어나 작동한다. 그러니까 생명을 가진 그 공간은 진경(眞境)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 노래들과 진경(眞境)들은 무정물과 유정물이 상호교감하면서 전통적인 서정시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 부분은 실재계의 잔영 위에 단순하게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융합을 통해 재구성됨으로써 언어들은 새생명을 얻어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을 터이다. 김육수가 구현하는 뭇 생명들은 전통적인 서정의 심상으로 쓸쓸함과 고독에서, 오히려 시의 감흥을 점층적으로 고조하고야만다. 이는 공자(孔子)가 주장했던 “관저의 시는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지는 않는다(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논어·팔일(八佾)』; 『시경』의 「관저(關雎)」 편에 대해 붙인 논평)라는 말과 연대하고 있다.
숲속에 걸친 빛들은 물러가고 어둠이 채워지는 산길로 저녁이라는 말들이 길게 드리운다
산모퉁이에 자그마한 집 굴뚝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환했던 낮과 저녁 사이에 태어난 말들, 그 수련한 말들은 허공의 빈 의자를 찾아간다
산 그림자가 지워진 저녁 하늘 풀벌레 울음소리가 오두막에 쉬고 있는 한낮의 말들을 지우고 저녁이라는 말들이 울고 있다
어깨를 다독이는 달빛을 품고 소로 小路로 가는 상처 난 영혼들 걷는 발걸음 소리조차 부담스러워 바람길 따라 침묵 속에 간다
아직은 밤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물렁물렁한 저녁의 말들이 허공의 빈 의자를 채우고 있다
-「저녁이라는 말들」 전문
시 「저녁이라는 말들」은 동양시론에서 언급하는 시화일률詩畵一律을 소환한다. 이 시를 보면, 저녁의 정취와 심상을 노래하고 있는데,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소리 없는 시가 되는 걸 경험한다. “숲속에 걸친 빛들은 물러가고”라는 평이한 진술을 통해 해가 저물며 어둠이 깔리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그린다. 이때 “저녁이라는 말들이 길게 드리운다”라는 표현은 저녁이라는 실체의 기의를 넘어서, ‘저녁이라는 말’ 자체의 기표를 만나면서, 길게 드리운다는 말이, 그러한 말들이 저녁의 감정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각적인 형상화를 통해, 하루의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길이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연에서는 산모퉁이에 있는 작은 집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저녁이라는 말들’에 관한 화답의 형태를 띠고 있다. 즉, 낮과 저녁 사이의 과도기적 순간을 상징하지만, “환했던 낮과 저녁 사이에 태어난 말들”은 기의와 기표의 간극에서 발현하는, 저녁이라는 말들의 감정과 심상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그리하여 정제된 언어들의 수련한 말들이 “허공의 빈 의자를 찾아간다”라는 진술은 낮이라는 현실적인 공간에서 저녁이라는 환상성으로 이동하면서, 완전한 저녁으로의 자리를 잡는 태도이다. 현실에서 벗어나 환상의 공간으로 진입한 말들은 어디론가 사라질 듯한, 불안감을 빈 의자를 찾아가는 행위로 말미암아 허공에서 충분히 머물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그러므로 정제된 수련한 말들은 초월적 존재로서, 저녁이 주는 시간들의 고요함과 무의미의 의미를 찾아가는 탈속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세 번째 연에서는 저녁 하늘과 자연의 소리가 어울리며, 인간이 활동하는 낮이라는 개념을 희석시킨다. “산 그림자가 지워진 저녁 하늘”은 새롭게 태어나는 저녁 하늘을 산 그림자를 대체하여 저녁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풀벌레 울음소리”는 인간의 소리를 지우고 저녁다운 자연의 소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소리는 오두막에 잔류하고 있는 “한낮의 말들을 지”움으로써, 인간은 저녁에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잘 수 있을 터이다. 인간이 잠자고 자연의 소리만 존재하는 저녁에 “저녁의 말들이 울고 있”는 풍경은 시적인 중의와 재미를 더한다. 한편 저녁을 표상하는 말들이 울고 있다,라는 건 일견 고요함과 쓸쓸함을 배경으로 깔고 있지만, ‘저녁이라는 말들이 운다’라고 할 때, 말들〔馬〕이 우는 모습과 울음 섞인 말들〔言語〕이 비처럼 내리는 장면을 연출한다. 한편으로는 저녁이라는 말들이 밤을 향하여 달리는 말처럼 고요한 역동성을 표방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저녁을 관통하여 깊고 깊은 밤의 정점을 향한 덧없는 시간들의 흐름이, 저녁이라는 말들이, 언어의 기표로서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무차별한 흐름을, 저녁 하늘과 오두막이라는 공간에서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다.
네 번째 연은 저녁의 달빛으로 위로받은 화자는 다시, 상처 난 영혼들에게 은근하게 위로함으로써, 자기 겸손과 위로의 선순환이 작동하고 있다. “어깨를 다독이는 달빛을 품고”라는 진술에서는 화자와 상처 난 영혼들이 동일시되지만, 일차적으로 달빛이 영혼들을 위로하듯 감싸는 모습을 드러낸다. “소로小路로 가는 상처 난 영혼들”은 다사다난한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저녁을 맞이하여, 작은 길을 따라가는 상처 입은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들이 안식처를 향하여 가는 여정에 화자는 “걷는 발걸음 소리조차 부담스러워”하며 타자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다. 이어서 “바람길 따라 침묵 속에 간다”라는 진술로 미루어 볼 때, 상처 난 영혼들과 화자는 소로를 행진하는 그 대열 속에 함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침묵 속에서 낮 동안 뜨거웠던 일상의 소용돌이가 정제되면서, 조용히 길을 따라가며, 고요한 밤의 사원으로 귀환할 채비를 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화자는 저녁으로 귀환을 앞두면서 중간계에 머물고 있다. “아직은 밤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진술하는 걸 보면, 저녁이지만 아직 완전한 밤이 아닌 과도기적인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물렁물렁한 저녁의 말들”은 저녁의 부드럽고 애매한 감정을 상징하는데, “허공의 빈 의자를 채우고 있다”라는 진술에서 확연하게 오는 건 황홀감이다. 화자는 이 애매하고 물렁물렁한 심상으로 고요한 밤의 사원으로 귀환을 미루면서, 저녁의 말들이 허공의 빈 의자를 찾아가는 진경을 목도하는 황홀경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저녁의 말들은 탈속한 휘발성을 획득하며, 아주 가벼운 상승의 기운으로 자유롭게 비상하는 시인의 시어일 수도 있고, 미지의 태어나지 않은 그 무엇, 그러니까 언어 넘어 언어의 지위를 얻으면서 황홀경에 도달한다.
시 「저녁이라는 말들」은 저녁이라는 시간대를 공간성(굴뚝, 오두막, 빈 의자)과 상호교환하면서, 허공이라는 또 다른 공간을 창출한다. 그 공간들은 자연의 변화와 화자의 심상을 통하여, 언어의 황홀경에 도달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낮 동안의 생산된 익명의 말들을 정제하는 과정을 감성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저녁으로 자연스럽게 진입한다. 김육수는 저녁이 주는 고요함과 쓸쓸함, 그리고 하루의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심상들을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공간을 건축한다. 허공에 떠 있는 셀 수 없는 빈 의자들의 미지의 언어들을 목도하며, 황홀경에 도달하는 진경을 도출한다. 궁극엔 화자가 도달할 종착점은 밤의 사원일 것이다. 이 사원은 죽음과도 유사한 가사상태假死狀態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가사라는 자연섭리의 죽음을 통해서 다시 아침을 맞이하여, 되살아나는 게 인간의 삶일 터이다. 인간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순리일 터이지만, 화자는 중간계에 머물면서 유보적인 상태에서 진경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이 쓸쓸하고 외로울지라도, 저녁의 말들은 허공의 빈 의자를 채우며, 황홀한 진경을 연출하고 있다.
책속에서
나를 찾아서
왕산골행 941번 첫차가 오면, 옷 위에 올라앉은 어둠과 오른다 차창에 새겨진 무표정한 얼굴 낯설어 보이지만 어젯밤 죽었던 내 얼굴
고개 숙인 논길을 지나 조팝나무 안내 따라 한적한 왕산골에 배송되는, 밤새 강한 척하다 죽었던 나는 어둠 뚫고 먼저 온 햇살을 포옹한다
대나무 샛길로 가다가 숲사이로 잠기는 늪 그 늪에 빠져 지난날 죽었던 내가 수많은 나를 바라본다
햇살을 포옹하며 묻혀 있다가 어둠의 단추를 풀고 다시, 다가올 나를 찾아가는 시간들
새벽길
제각각 사연을 안은 첫차가 오기 전 밤이슬에 입술 촉촉이 적신 거리 안개가 몸을 맡긴다
밤새 설친 잠 털고 하루의 틀 벗기는 풀무질이 시작된다
떠나는 어둠의 소리 가로등은 등을 돌리고 등짐에 눌린 두부 장수의 목소리 짙은 바람이 흩뿌리고 간다
시끄러운 시간 아직 둥지 틀기 전 새벽별은 긴 뜨락 지나고 있다
상처의 길
곧게 뻗은 길이 있다 오늘따라 가고 싶지 않다 간밤 폭풍우로 널브러진 길 구겨진 팔을 부축하고 있는 가로수
아우성에 찌든 그림자를 밟고 소리 없이 가야 한다면 뒤집어쓴 상처를 추스르며 가로막아 허리 꺾인 것들을 보듬어 언제나 길이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그 길 깊숙한 이야기를 읽으며 간밤에 잃은 이웃을 달래는 주름에 되살아난 온기가 가슴 깊이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