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숙의 소설을 특징짓는 기초는 ‘인간에 대한 관심’인데, 세밀한 자연 묘사로 황폐해진 사회상을 보완하고, ‘시대의 의미’와 더불어 ‘가족의 의미’를 중시하며, ‘역사소설’과 ‘예인(藝人)소설’의 영역까지 아우른다. 이 부류들 중 가장 오래 읽힐 수 있는 작품은 아마도 예도(藝道)의 고된 수련 과정과 예인의 드높은 자긍심을 다룬 ‘예인소설’일 것이다. 이 부류의 작품들을 통해 일차적으로 인간적인 삶과 예술의 창조 사이에 놓여 있는 예술가적 고뇌와,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과 국가의 문제까지 포괄하는 시대 인식을 드러내려 했다. 〈전황당인보기〉, 〈금당벽화〉, 〈백자도공 최술〉, 〈거문고 산조〉 등의 ‘예인소설’을 통해 인간적 애정, 민족적 현실, 종교적 가치까지 중첩시키며 세속적 가치와 예술적 승화 사이의 갈등을 형상화하고, 전통을 뛰어넘어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는 예술적 열정을 숭상하며, 산업화 시대의 경박한 물질적 가치관을 질책한다. 그리고 〈고가〉로 대표되는 ‘민족사의 비극과 세대 간 갈등’ 유형을 통해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전통적 가족 체계의 문제를 해방 후 이데올로기 대립과 결부시켜 민족사의 비극과 세대 간 갈등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형상화한다. 또한 〈묘안묘심〉으로 대표되는 ‘현대인의 방황과 분열된 의식’ 유형을 통해 도착적인 애정 심리를 묘파해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 의식을 파헤치고, 〈예성강곡〉, 〈쌍화점〉 등의 ‘고전의 현대적 변용, 혹은 우의적 소설’ 유형을 통해 인간의 맹목적 욕망과 인생의 비극적 부조리를 극적으로 노출시키며 풍자한다. 이처럼 다양한 소재와 문체와 유형을 넘나들며 인간과 역사와 사회의 겉과 속을 입체적으로 묘파하는 정한숙 소설의 근저에 놓인 공통분모를 ‘인간에 대한 관심’과 ‘예술적 승화’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책속에서
[P.51] 헤푸지 말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다시는 자기의 의식의 세계에서 그런 생각을 버리려는 생각에서였다.
벽면엔 저녁노을이 물들기 시작한다.
[P. 250~251] 하늘의 섭리를 지배하는 것은 푸른 하늘이 아니라 흰 구름이다. 구름이 개이면 해가 비쳤고 구름이 몰려들면 비를 뿌린다. 풍운(風雲)의 조화(造化)야말로 전의 조화요 조물 옹의 의지인 것이다. 이 속에 나서 이 속에 살아 이 속에 죽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듯 조화 무쌍한 흰 구름, 그렇듯 아름다운 흰 구름…, 최술은 그런 빛의 자기를 구워내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