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문학 창작산실) 사업에 선정되어 발간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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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숙희 인간의 밤/ 내가 찢은 테니스공/ 웨하스/ 태엽/ 반 파인트의 기적/ 나의 아름다운 사회주의/ 복서의 사랑/ 수비만 하는 사람들/ 잠/ 눈 이야기/ 사과/ 나무와 밀가루/ 불완전성의 정리/ 애인과 시인과 경찰/ 필요 없는 새와 필요한 개/ 루터/ 시계의 아름다움/ 숙희
선희 인간의 집/ 기적/ 집의 이론/ 영국식 정원/ 헝가리에서/ 잠/ 이별의 눈부심/ 지나갔으나 지나가는/ 나의 아름다운 프랑켄슈타인/ 나의 아름다운 개/ 시인/ 타인과 귤나무/ 단어의 밝음/ 인간의 핵심/ 설경/ 선희
경희 인간의 잠/ 종이 공장/ 해안선/ 속죄/ 생각/ 화양연화/ 순정/ 콜링(Calling)/ 좋은 씨앗/ 가라앉은 시/ 개 이야기/ 미자의 기분 같은 일/ 의미하지 않는 것/ 어둡고 조용히/ 시계의 아름다움/ 브라운/ 찰리 브라운/ 경희
이별의 수비수들 : 여성민 시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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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인류의 구십 퍼센트는 이별한 사람입니다 십 퍼센트는 이별할 사람이구요”
성실한 이별의 조합원이 되세요! ‘이별을 쓰는 밤의 경비병’ 여성민 9년 만의 신작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223번으로 여성민 시인의 두번째 시집 『이별의 수비수들』을 펴낸다.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를 쓰기 시작해 2015년 첫번째 시집 『에로틱한 찰리』(문학동네시인선 68)를 펴낸 지 9년 만이다. 그 오랜 기다림은 “찰리는 죽었다”는 선언 앞에서 “부고에 죽었다는 말 대신 좋아하는 낱말을 넣”(「찰리 브라운」)으며 보낸 시간이었을까. “한 편의 시를 위해 이 세상의 감각과 이별하고 상징과 이별하고 자신의 낡은 언어와 이별하는 사람”(미니 인터뷰)이 시인이라면, 이 시집을 여성민이 좋아하는 낱말로 써내려간 지난 9년의 ‘이별 기록’이라고 불러봐도 좋겠다. 첫 시집에서 “직구와 변화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오은 시인)하는 공격수의 면모를 선보였던 그는 이별의 수비수가 되어 아직 저물지 못하는 밤의 시간을 펼쳐 보인다. “이것이 너의 슬픔이구나”(「불가능한 슬픔」, 『에로틱한 찰리』) 하고 말하던 포즈를 바꾸어 “여기까지 내가 아는 슬픔”(「브라운」)이라고 담담히 고백한다. 이번 시집에서 “사랑으로 약해진” “이별의 수비수들”(「나의 아름다운 사회주의」)은 “밥을 먹고 더 약해져야지 좋은 수비수가 돼야지”(「생각」) 하고 다짐한다. 사랑의 수호자 대신 이별의 수비수가 되기를 자처하는 그들은 힘을 빼는 방식으로 최후의 방어선을 지킨다. 잘 이별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선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별은 “밥처럼 윤이”(「시인」) 나고 “바밤바 같”(「이별의 눈부심」)이 “부드러운 노동”(「나의 아름다운 사회주의」)이 된다. 더 나아가, “사랑은 어두운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복서의 사랑」) 화자에게 이별은 “잠든 얼굴을 찾아 순회하는 선한 목자”(「기적」)가 “물로 포도주를 만”(「반 파인트의 기적」)드는 “종교적”(「루터」)인 행위로 승화한다. 이번 시집은 총 53부의 시를 4부로 나누어 엮었다. 앞선 3부의 제목은 각각 ‘숙희’ ‘선희’ ‘경희’이다. 첫번째 시집 『에로틱한 찰리』에서 각 부마다 ‘보라색 톰’ ‘에로틱한 찰리’ ‘모호한 스티븐’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과 대조적이다. ‘톰’ ‘찰리’ ‘스티븐’이 외국인 남성의 이름이라면, ‘숙희’ ‘선희’ ‘경희’는 한국인 여성의 이름이다. 사랑과 이별은 모든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는 일이란 점에서 보편적이고 통속적인 소재이며, 동시에 한 인간을 관통한다는 점에서 유일하고 개별적인 경험이다. 시인은 살면서 한 번쯤 사랑하거나 이별했을 법한 이름들을 통해 그러한 이별의 순간을 고유한 이름으로 호명한다. 제삼자에게는 비슷비슷한 사랑과 이별일지언정, 오롯이 나에게 속한 환희와 슬픔을, 언어로 규명할 수 없는 그 찰나를 ‘숙희’ ‘선희’ ‘경희’와 같은 이름으로 불러보는 것이다. 가령, 숙희에게 사랑은 두부 속에 있는 느낌이다.
이별한 후에는 뭘 할까 두부를 먹을까 숙희가 말했다
내 방에서 잤고 우리는 많이 사랑했다 신비로움에 대해 말해봐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숙희는 말했다
눈이 내렸을까 모르겠다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는 모른다 두부 속에 눈이 멈춘 풍경이 있다고 두부 한 모에 예배당이 하나라고
사랑하면 두부 속에 있는 느낌이야 집에 두부가 없는 아침에 우리는 이별했다
숙희도 두부를 먹었을까 나는 두부를 먹었다 _「숙희」 부분
두부 속을 걷는 감각은 두부의 맛처럼 희미한 동시에 눈보라 속을 걷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다. 시인은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그 희미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숙희’라고 불러본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육호수는 이 시에서 이별 후의 사랑이 “두부 속에 눈이 멈춘 풍경”이라는 불가능한 이미지 속을 걷는 일이 된다는 점을 가리키며, 사랑과 이별의 실패를 경험한 독자만이 읽어낼 수 있는 기묘한 은유와 더불어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뒤섞는 여성민 시 특유의 재치와 전복을 포착해낸다. “사랑이 신의 속성이”고 “이별은 인간의 영역”(미니 인터뷰)이라면, 시인은 그 경계에 있는 존재이다. 이 시집의 첫번째 수록작 「인간의 밤」에는 “시인의 가죽을 끌어다 덮어” 밤을 맞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이 잠든 시간 동안 시인이 깨어나 밤을 지킨다. 그의 시에서 밤은 “안을 부드럽게 파내고 한 사람을 가득 채우는”(「인간의 집」) 시간, 즉 사랑의 시간이므로 시인은 곧 사랑을 하는 사람인 셈이다. 또 한 편의 시 「단어의 밝음」에서 ‘나’와 당신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애인이 되거나 시인이 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처음 물이 언 세계가 있고 처음으로 얼음을 깎은 사람이 있다면 얼음을 깎으며 얼굴에 튄 불이 인간의 첫 화상이었을 거예요 손으로 만진 첫 마음이어서 우리가 밤에 하늘을 보며 타인을 덜컥 사랑하는 건 매일 밤하늘을 덮는 저 거대하고 밝은 화상 때문입니다 빛나는 알갱이가 가득해 당신은 애인이 되고 나는 시인이 되지만 우리는 같은 사람입니다 집으로 돌아가 다른 컵으로 물 마시겠지요 식도에서 얼음 깎는 소리를 듣는 당신은 얼음 속의 야곱이겠지요 물을 마시며 화상자국처럼 좁은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진달래를 봤다면 팥죽 쑤는 야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이 밝은 사람이에요 연애하는 시인이거나 시 쓰는 애인이에요 _「단어의 밝음」 부분
시인으로 등단하기에 2년 앞서 소설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여성민은 당선 소감에서 “이 소설은 짧은 시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소설이 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그의 일상에서 쓰인 시 또한 그가 꿈꾸는 이야기의 낙원일 테다. 앞서 인용한 「단어의 밝음」에서 “우리는 같이 밝은 사람이에요 연애하는 시인이거나 시 쓰는 애인이에요”라는 마지막 시구에도 드러나는바, 시인과 화자의 구분이 모호한 여성민의 시는 창작과 생활의 영역이 교차한다는 인상을 준다. 「웨하스」에서 “타인이라는 말을 그럴듯하게 써먹어서 시인이” 된 화자는 “「타인과 귤나무」 이런 시도 썼”다고 말한다. 2부에 수록된 「타인과 귤나무」에는 실제로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화자가 등장한다. 한편 「루터」의 첫 행은 “비는 샐러드처럼 와요” 하고 말하는 장면에서 시작하고, 「나의 아름다운 프랑켄슈타인」에는 “비는 샐러드처럼 온다고 쓴 시인”이 나온다. 쉬이 연결 짓기 어려운 비유로 쓰인 메타시들은 현실과 상상을 뒤섞으며 이상하고 엉뚱한 낙원으로 독자를 이끈다. 마지막 4부 ‘선희 경희 숙희’는 ‘나’와 세 명의 수비수가 모두 등장하는 시 「낙원」 한 편만이 수록된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이 시에서 네 사람은 “우리를 둘러싼 희미한 대지”를 걸어다니며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금을 긋”고 언젠가 “낙원에 가서 각자 그은 선을 찾아다니자”고 약속하지만, 그들의 행적은 점점 주어를 특정하기 묘연해진다.
허연의 「장마의 나날」을 장미의 나날로 읽은 것이 나인지 선희인지 모릅니다 경희나 숙희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다시 시작된다고 믿었을까요 (…) 내가 그은 선이 미루나무나 언덕이나 비라고 믿으며 더 많은 선을 그으면 장마의 나날이 올지도 몰라 그 말을 한 사람이 나인지 선희인지 모르지만 들판 여기저기 길고 짧은 선이 늘었습니다 나중에 회색 종이를 구기면 낙원이 생기겠지 사람들은 모르지 언덕을 만들고 급류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외과의사는 자신이 그은 선을 구별한대 언젠가 말이야 낙원에 가서 각자 그은 선을 찾아다니자 그런 말을 하며 걸어가다 돌아오는 나날입니다 _「낙원」 부분
시의 화자는 어떤 시의 제목을 잘못 읽은 것이 “나인지 선희인지 모”르고 “경희나 숙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떤 “말을 한 사람이 나인지 선희인지 모”르며 “언덕을 만들고 급류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시적 순간을 지칭하던 고유명사들이 수비수들을 포괄하는 보통명사가 되고, ‘나’의 경험이 우리의 영역으로 폭넓게 확장하는 대목이다. 혼자만의 슬픔에 한정되어 있던 ‘나’가 타인의 슬픔을 헤아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랑이 시작되어도 사랑이 끝나도 무관한” 낙원은 다만 시 속에 존재할 따름이다. “그는 자신을 가둘 만한 완벽한 시를 원했지만 어떤 시도 그를 가두지 못했”(「시계의 아름다움」)던 것처럼 현실의 낙원은 결코 끝없이 펼쳐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내가 아는 슬픔”(「브라운」)이라고 말하는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디디고 선 자리에 이별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이제 그 자리에서 당신의 슬픔이 자라날 차례이다.
이별은 좋은 씨앗
이 씨앗을 너에게 옮기고 평생
인간으로 남으리 _‘시인의 말’ 전문
■ 여성민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Q1. 『이별의 수비수들』은 2015년 첫 시집 『에로틱한 찰리』를 출간하신 후 9년 만에 펴내는 두번째 시집입니다. 저는 이번 시집이 우리가 이별해온 시간이 담긴 상자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시인은 마치 그 시간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키고 있는 것 같고요. 두 시집 사이에 어떤 시절을 건너오셨는지요?
‘사랑과 이별의 시간’이었어요. 시를 사랑하면 생활과 이별했고, 생활을 사랑하면 시와 이별했어요. 화해 없이 9년이 지났네요. 그사이 한 가지 질문에 매달렸어요. 시인은 직업일까? 국가에 어떤 서류를 접수하려고 주민센터를 방문하면 공무원은 “직업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요. 나는 시인이라고 대답해요. 그러면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직업이 없으세요?’ 하고 되묻습니다. 그런 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내 나라에 시인이라는 직업은 없구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죠. 아마 그런 경험이 “시인이 직업인 나라는 없대”(「콜링(Calling)」)라든지 “생활을 배울까”(「설경」) 같은 문장 속에 숨어들었을 거예요. 일은 하지만 직업은 아닌 시인은 무엇일까요/누구일까요? 시인은 직업일까요? 이 질문에 답변할 수 없어서 나 자신과 이별하며 보낸 9년이었어요. 마치 연애의 감정은 요점 정리가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무슨 관계지?”라고 물을 때 대답에 요점이 없는 사람과는 연애를 계속할 수 없는 아이러니 같은 것. 그것은 또 시와 같아서 시는 요점이 없는데 사람들은 시인에게 자꾸 “이 시의 요점이 뭐죠?”하고 묻거든요. 그러니까 지난 9년은 직업이 없는 시인으로서 요점이 없는 시를 사랑하며 살았던 시절이에요. 직업이 없는 인간 여성민이 요점이 없는 시인 여성민과 이별하며 보낸 시절이에요.
Q2. 시집 제목이 ‘이별의 수비수들’입니다. 수록작 「나의 아름다운 사회주의」에 “사랑으로 약해진 사람들 이별의 수비수들”이라는 시구가 나옵니다. 사랑이 아닌 이별을 지킨다는 점, 그러나 수비수의 역할에 기대되는 바와 달리 약한 존재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제목이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시나요?
시인은 이별하는 사람이에요. 생활과 이별하고 직업과 이별하고 요점과 이별하는 사람. 한 편의 시를 위해 이 세상의 감각과 이별하고 상징과 이별하고 자신의 낡은 언어와 이별하는 사람. 그래서 “시인은 이별을 쓰는 사람입니다”(「애인과 시인과 경찰」)라고 말해본 거예요. 여기까지가 시집 제목에 대한 공격적인 답이었다면 이제 수비적으로 답을 전환해볼게요. 이 시집의 제목은 ‘이별의 수비수들’이고, 저는 중앙수비수이며, 수비수는 훼손되지 않도록 지키는 사람이니까요. 이번 시집에는 연애를 소재로 한 시편들이 많고 다 알듯 연애도 게임이죠. 그 경기장에서 저는 대체로 수비수였어요. 스포츠 경기에서 수비수들은 공격수보다 피지컬이 좋습니다. 곧 죽어도 막아야 하니까요. 연애는 더 그래요. 연인 관계에도 공격수와 수비수가 있고, 수비수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수비만 합니다. 그런데 약해요. 약해져야 해요. 훼손되지 않게 지켜야 하니까 손에 힘을 줄 수 없어요. 그런 마음을 아는 사람, 그런 마음으로 아팠던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었어요. 그런 사람들끼리라도 힘을 모아야죠. 그리하여 『이별의 수비수들』은 수비수가 수비수들에게 제안하는 연대이며 스크럼이고 노동조합 같은 거예요. “이별의 조합원”(「나의 아름다운 프랑켄슈타인」)이 되세요! 한 번이라도 수비수였던 적이 있다면 당신에게는 조합원이 될 자격이 있어요. 이별의 수비수들을 위한 노동조합. 이 시집 제목을 그렇게 읽어주세요.
Q3. 이번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부에 ‘숙희’ ‘선희’ ‘경희’ 그리고 ‘선희 경희 숙희’라는 제목을 붙이셨어요. 한국인 여성 인물로 보이는 이름을 호명하시게 된 까닭이 궁금합니다.
첫 시집 『에로틱한 찰리』에서는 ‘찰리’ ‘톰’ ‘스티븐’ 같은 이름을 사용했어요. 외국어 이름이고 남성 이름이죠. 그 이름들은 ‘내가 모르는 감각을 호명하는 방식’이었어요. 먼 이름이니까, 민수나 경수처럼 흔하게는 부를 수 없는 이름이니까요. 어떤 감정 또는 어떤 시적 순간이 문득 나를 지나갔는데 내가 아는 언어로는 규명할 수가 없었죠. 그런 순간을 ‘찰리’라고 말해본 거예요. 두번째 시집 『이별의 수비수들』에 나오는 ‘숙희’ ‘선희’ ‘경희’는 조금 달라요. 우선 한국어권 이름이면서 여성의 이름이죠. 가까운 이름이죠. 한 번쯤 사랑했음직한 혹은 이별했음직한 이름이죠. 교실이나 술집에서 옆 테이블에 앉아 방어(만)하던 그 사람의 이름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런 이름들을 이별의 수비수로 불러온 거죠. 연애의 현장이든 어디든 수비수는 늘 있으니까요. 그런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면 아무래도 남성의 이름보다는 여성의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남성의 이름이냐 여성의 이름이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따로 있어요. 개별적 이름들, 누군가를 부르는 고유명사인 ‘선희’ ‘경희’ ‘숙희’를 수비수들의 ‘보통명사’처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선희’ ‘경희’ ‘숙희’는 이름이 아니라 포지션이라고 나는 말하는 거예요.
Q4. 1, 2, 3부의 서시는 각각 「인간의 밤」 「인간의 집」 「인간의 잠」입니다. 이외에도 시집에 ‘인간’ ‘사람’이라는 시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사랑과 이별은 모든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는 숙명이기도 할 텐데요. 선생님께는 “인간으로 남”(‘시인의 말’)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여쭈고 싶어요.
“사랑이 시작되어도 사랑이 끝나도 무관한”(「낙원」) 곳에서, 사랑이 출렁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면 아름다울까요? 나는 지겨울 것이라고 생각해요. 은하가 아름다운 이유는 태초의 물질이 충돌하고 에너지가 출렁여서 수많은 별들로 탄생하는 광경을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에요. 여기에 이별이 있어요. 태초의 견고한 상태(사랑)로부터 끝없이 출렁이고 이별한 상태가 지금의 우주니까요. 이별이 없다면 우주 또한 없거나 여전히 한 점으로 존재하고 있겠죠. 아름다울 수 없겠죠. 은하수는 어쩌면 이별의 조합원들인 셈이죠. 사랑이 신의 속성이라면 이별은 인간의 영역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거예요. 사랑을 에너지로 이해한 최초의 존재가 인간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사랑이 물질계에 속한 개념이고 에너지의 파동이라는 걸 발견한 존재라고. 사랑이 끝나도 끝나지 않아도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 사랑이 끝나면 울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이별하는 파동의 존재, 존재의 파동, 그런 존재가 인간이라고요. 정지된 사랑의 낙원에서 살아간다면 인간은 아름다울 수 없을 거예요. 이별이 인간을 아름답게 했을 거예요. 출렁여야 우주가 생기니까요. 지금도 수많은 별이 몸에서 탄생하는 이별의 은하수.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러니 내일도 이별하고, 이별의 씨앗을 옮기고, 평생 인간으로 남으리!
Q5. 수록작 중 유독 마음에 남는 시가 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시인의 말’이 마음에 들어요. 이번 시집에서 내가 쓰고 싶었던 단 하나의 문장이라고 생각했어요. 시집에 엮은 53편의 시는 그 문장에 대한 53개의 주석 같아요. 물론 까부는 말이에요, 사실은, 질문을 읽고 시들을 다시 보니 모든 시가 마음에 들기도 하고 모든 시가 마음에 안 들기도 했어요. 아마 제가 쓴 시여서 그럴 거예요. 그래도 마음에 남는 시를 고르라니 세 편을 뽑을게요. 「인간의 밤」 「인간의 집」 「웨하스」. 「웨하스」는 순수하게 사랑과 이별에 대해 쓴 시예요. 예쁘다고 생각해요. 슬픈데 읽으면 내가 예뻐지는 것 같아요. 「인간의 밤」은 “시를 사랑하면 생활과 이별했고, 생활을 사랑하면 시와 이별했”던 그 시절의 마음이에요. 언어의 기교보다 마음으로 쓴 시예요. 마음이어서 아프군요. 「인간의 집」을 쓰며 동굴의 불빛을 생각했어요. 흙이나 바위를 파서 최초의 집을 만든 사람이 있고, 그 동굴에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낱말을 말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했어요. 그 동굴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생각하며 썼어요. 사람의 마음을 파내고 그곳에 들어가 사는 것이 사랑이잖아요. 우리가 파낸 사랑이라는 말이 창밖에 있어서 창밖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책속에서
시인들아 고등어처럼 죽지는 마라 신의 석쇠 위에서 고등어처럼 구워지지 마라 가죽을 벗어놓고 죽어라 시인의 가죽을 끌어다 덮어 밤이니
소고기 한 번 사 먹지 못한 생이 그렇게 아름다웠지 고등어 가죽만 남은 하늘을 뒤적거려도
이윽고 빛이 없었던 것처럼
내가 죽으면 씻어내지 마라 푸른 가죽 그대로 신이 별 헤는 밤 _「인간의 밤」 부분
애인이 비밀번호를 바꾼 후부터 나는 웨하스를 먹어요
이유를 말할 수 없어야 슬픔이구요
타인이라는 말을 그럴듯하게 써먹어서 시인이 됐죠 「타인과 귤나무」 이런 시도 썼는데요 타인과 타자를 설명할 수는 없어서 연애도 평론도 못하지만
고마워요
나는 과자처럼 예뻐요 _「웨하스」 부분
사랑이 끝난다 퇴근해야지, 저녁은 흘러내린 머리카락
(……)
나의 약한 노동자여 하고 빛이 줄어든 쪽으로 돌아앉은 것이다 잘 자요 빛의 아내여 노동자의 아내에게도 담요를 흘러내린 머리카락 올려주다가 사랑을 쓸어올리는 사람 있을 것이라고 사랑으로 약해진 사람들 이별의 수비수들 언덕에 모여 하늘이 핏빛이라면 빛이 언덕을 빨아올리는 것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