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55] 붓 가는 대로 밀밭 언덕이 되고, 풀섶이 되고, 구름 형상이 된다. 감흥에 따라, 본능에 따라 흐른 붓질 감각은 반 고흐가 30대에 무심(無心)의 경지를 이루었음을 보여준다. 유화 물감의 질료 두께가 지닌 물질감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붓질 선묘와 터치 흐름을 유심히 보면 간결한 표현 의도도 또렷하게 읽힌다.
이 같은 반 고흐의 생각과 표현 방식은 동아시아의 회화 정신에 근접한 단순미나 간엄(簡嚴)도 엿보인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인들의 남종 화론인 마음 그림 ‘사의(寫意)’를 떠오르게 한다. 특히 반 고흐는 철저하리만큼 대상을 눈앞에 놓고 그리는 동양화의 ‘형사’ 방식을 취했음에도 ‘사의’에 대해도 생각했다는 대목이 괄목할 만하다.
_동양 예술론과 닮은 반 고흐 창작론
[P. 75] 이러한 조선시대 초상화의 묘사 방식을 눈여겨보면, 약간 우향한 포즈를 그리면서 두 눈과 입술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조선시대 화원 이한철과 유숙이 그린 <흥선대원군 초상>(1869년, 보물 제1499호, 서울역사박물관)의 얼굴 부분을 반 고흐의 자화상과 비교해 보자. 이 초상화의 표현 방식이 거울을 보고 그린 반 고흐의 자화상과 몹시 닮아 흥미롭다. 반 고흐의 자화상은 왼쪽이나 오른쪽을 보는 얼굴로, 코와 귀는 측면상인데 눈과 입술은 정면상에 가깝다. 이는 머리를 살짝 돌렸음에도 상대를 제압할 정도로 강렬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듯한 효과를 준다. 정면을 보는 두 눈을 담기 위해 반 고흐는 이마를 살짝 넓혀 과장했다.
_초상화, 외모를 빼닮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