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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역사와 나

1부
여자 일에 질문을 던진 여성들

숨어 살아야 했던 사람, 옥호 부인
현모양처 말고 뛰어난 예술가, 신사임당
혼인으로 피우지 못한 글재주, 허난설헌
조선 시대 뛰어난 예술인, 기생 황진이와 석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평양 기생 계월향
서로 애정하며 나눈 글, 미암 유희춘과 시인 송덕봉
용감하게 지켜 낸 삶의 기록, 남평 조씨
잘 벌어서 잘 쓴 제주 여성, 김만덕
조선 시대 여행가, 김금원
마음껏 책 읽고 공부한 조선 여성, 이빙허각
조선 시대 여성 유학자들, 윤지당과 정일당
조선 시대 이혼소송, 유정기와 아내 신태영
묘지명에 남겨진 짧은 삶, 김운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글, 묘지명과 제문

2부
옛글로 알아보는 여성의 삶

여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방법, 효녀
효도는 청이가 하고 복은 아비가 받고 《심청전》
조선 시대에 여자만 얻을 수 있는 명예, 열녀 《춘향전》
열녀의 죽음, 절개일까 저항일까 〈향랑전〉
가엾은 기생 팔자 《용재총화》 《어우야담》
조선 시대 성폭력 사건 〈재상가 서녀 진복의 일생〉
김은애 살인 사건, 진짜 살인자는 누구? 〈은애전〉
이씨 부인의 극한 생존 시집살이 〈복선화음가〉
비틀어 보는 영웅 소설 《박씨부인전》
진정한 영웅 다모 김조이 〈다모전〉
하늘을 날던 여자들 《용재총화》 《삽교만록》
거침없고 대범한 귀신 《아랑전설》 《장화홍련전》
되풀이되는 평강공주들 《청구야담》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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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여자 일이 무엇이관데? : 비틀어 보는 조선 시대 여성의 삶과 이야기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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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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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라는 땅에 여자로 태어나 일평생을 살아간 사람들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로 이름을 남기던 조선 시대 여성 가운데, 묘지명에 자기 이름을 남긴 이가 있다. 바로 조선 시대 문장가 김창협의 딸 ‘김운’이다. 김운의 생전 소망은 ‘만약 남자로 태어날 수 있다면,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수백 권의 책을 쌓아 둔 채 그 속에서 조용히 늙어 가고 싶다’고 했다. 김운은 열한 살 나이에 아버지와 경전을 읽으며 토론을 할 만큼 총명함이 있었지만, 혼인한 뒤로는 그 총명함과 지식욕을 감추고 ‘여자로서 해야 할 일’만 충실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 김운은 남편에게 종종 ‘자신이 여자여서 세상에 드러낼 공덕이 없으니 차라리 일찍 죽어 무덤에 아버지의 글을 남기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그 바람대로 김운은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허씨오문장’이라고 불렸던 허난설헌은, 이 다섯 명 가운데 시재가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허난설헌보다 열두 살 위인 둘째 오라버니 허봉은 누이 난설헌에게 두보의 시집을 선물하며 동생의 재능이 두보를 이을 만하다 칭찬했다. 이런 허난설헌은 평생 세 가지를 한으로 생각했다. ‘조선이라는 좁은 땅’에 ‘여자로 태어나’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라 한다.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허난설헌은 죽기 전에 평생 쓴 시를 다 태워 버리라는 유언을 남겼고, 유언에 따라 그의 시는 모두 불태워졌다.
《도대체 여자 일이 무엇이관데?》는 조선이라는 땅에 여자로 태어나 일평생을 살아간 여성들의 삶에 주목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황진이처럼 모두가 다 아는 여성들은 물론, 조선 시대 여성 유학자 윤지당과 정일당, 임진왜란에 일본군의 첩이 되어 나라를 구했던 기생 계월향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 여성의 삶과 이야기를 책 한 권에 담았다.

조선 시대 여성의 삶과 옛글을 새롭게 재조명하며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여자 일’에 질문을 던진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던 글쓴이 신혜경은 천한 사람과 귀한 사람이 나뉘어 있던 시절, 귀한 사람의 역사가 아닌 약하고 이름 없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더 주목했다. 억압받고 차별당하던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고 싸우던 이야기가 저자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이름난 이들의 역사만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지만,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도 모두 이 땅에서 살았다. 이 땅에 살았다는 흔적을 뚜렷하게 남기지 못했더라도 그 사람들이 만든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역사에서 조명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할 것이다.
1부 ‘여자 일에 질문을 던진 여성들’에서는 기생부터 양반집 부인까지, 후대에 이름을 널리 알린 인물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까지, 모두 열다섯 명의 삶을 자세히 살펴본다. 2부 ‘옛글로 알아보는 조선 시대 여성의 삶’에서는 전래동화나 옛이야기로 전해져 온 이야기 속 여성 주인공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읽어 본다. 야담과 전설은 누가 어떤 의도로 이야기를 만들고 전했을까? 이야기를 만든 이들이 꼭 전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야기를 쓰고 전하는 사람의 시각이 아닌,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청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이야기의 속살을 비틀어 본다. 저자 신혜경은 담백하면서도 진솔한 문장으로, 어떠한 이념도 규율도 가로막지 못했던, 살아 숨쉬는 조선 여성의 모습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 준다.
유교와 예법으로 조선이라는 시대는 여성을 여성의 일에만 묶어 두려 했지만, 그 시대에도 ‘사람의 일’을 꿈꾸고 욕망하며 살아간 여성들이 있다. 이름 높은 여성들도, 우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 없는 여성들도 저마다 자기만의 삶을 살았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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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나는 별 재주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며 위안을 얻고, 배우고 싶으면 배울 수 있고, 어찌어찌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은 가지고 살아왔다. 그 마음으로 그 시절을 버텼다. 그러면서 그럴 수 없는, 없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옛날 사람들은 어땠을까.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조건에 평생 얽매여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답답함을 느꼈을까.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였을까. 그러면서 사백 년쯤 전에 살았던 시인 허난설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잘 모르는 사람이다. _ 허난설헌
[P. 68~69] 금원은 《호동서락기》 첫머리에 여행을 떠나기 전 상황과 함께 자기에 대해서 짧게 썼다. ‘나는 관동 봉래산 사람으로 스스로 호를 금원이라 칭하였다’고 썼다. 금원의 고향은 원주인데, 봉래산 즉 금강산 사람이라고 한 것부터 평범하지가 않다. ‘금원’이라는 이름도 스스로 지은 것이다. 식구들과 집안에 대한 설명은 아주 짧다. ‘어려서 잔병이 많아 부모님께서 나를 어여삐 여겨 여자 일에 힘쓰게 하지 않고 문자를 가르쳐 주셨다’고 한다. 금원은 총명하여 글을 배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서삼경과 역사서를 두루 읽었고 시를 즐겨 지었다고 한다. 금원은 짐승이 아니라 사람으로, 그 가운데서도 ‘문명국’인 조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자신의 복이라고 하면서도 남자가 아닌 여자로, 부귀한 집이 아닌 한미한 집에서 태어난 것은 불행이라고 했다. _ 김금원
[P. 80~81] 유교는 사람의 도리, 사람이 가야 할 길, 사람이 이루어야 할 일들을 가르친다. 그렇다면 유교에서 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소학》의 가르침을 듣고 다시 질문한다. ‘나는 사람이 맞을까? 내 행위와 윤리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유학을 공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게 될 것 같지 않다. 이런 철학과 사상이 있었더라는 기초 지식밖에 없다. 내가 《소학》을 읽는다 해도 내 윤리의 지침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기분 나쁜 소리만 잔뜩 있구먼, 그땐 다들 이렇게 생각을 했나보군, 하고 치워 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유교의 가르침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음식이나 장만하고 제사나 정성껏 모시면 된다는 데도 ‘굳이’ 학문을 하고자 했던 어떤 여자들을 대신해서 하는 질문이다. 그들이 학문을 하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의미를 찾았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과연 나와 같은 의문을 가졌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묻고 싶다. 스스로 판단하지도 생각하지도 말고 오직 순종하라는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여 내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그들은 그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했는지. _ 윤지당과 정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