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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_7

그렇게 전사는 뻐꾸기를 구하고ㆍ서계수_17
대결ㆍ박희종_43
상태창!ㆍ김산하_65
하늘색 바다색 그리고 청록색ㆍ남세오_95
우주항로표지관리원의 어느 날 30분ㆍ해도연_111
그리고 노래하기 시작했다ㆍ아밀_129
처음에는 프린세스가 될 예정이었다ㆍ김인정_141
여름의 섬ㆍ구한나리_169
델릭타 그라위오라ㆍ빗물_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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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프린세스가 될 예정이었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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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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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5~6년 전, 생물학을 전공한 동료로부터 휴일에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SF 같은 것 좋아하셨지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도착한 URL과 페이지 화면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던 것도 같지만, ‘환상문학웹진 거울’이었다. 그 동료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이 좋아하는 곽재식 작가의 신작을 매달 한 편씩 볼 수 있는 곳이라며, 그 외에도 좋은 작품이 많으니 읽어보라는 추천을 덧붙였다. 나는 웹진 거울에서 필명을 쓰고 있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글을 올리지는 않고 독자 단편 심사만 맡고 있던 때였으므로, 아마도 동료는 내 글을 거울에서 읽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내가 조금 놀라서 머뭇거린 탓인지, 동료는 이어서 덧붙였다. “매달 1일에 소설이 올라오는데요, 매달 올라오는 편수가 같진 않고요. SF도 있고, 판타지도 있고, ‘그냥 일반 소설’도 있어요. 옛날 글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그 뒤로 내 근무지가 바뀌면서 동료와도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게 되었지만, 동료의 메시지창은 오랫동안 내 대화방 리스트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웹진 거울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나는 동료의 말을 이용하곤 한다. “매달 1일에 소설이, 15일에 소설 외의 글이 올라와요. 소설은 SF도, 판타지도, 호러도, 미스터리도 있고요. 15일에는 도서 추천글, 환상문학에 대한 비평, 번역, 소설과 비소설의 리뷰가 올라옵니다. 벌써 20년 동안 글이 쌓여 있어서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실 거예요.”
환상문학웹진 거울 홈페이지에서 단편란을 검색하면 단편소설을 올렸던 작가의 명단이 뜨는데, 한 화면에 다 뜨지 않을 정도로 많다. 거울 홈페이지에 오게 된다면 한번 명단을 쭉 훑어보시면 좋겠다. 이 사람이 여기 있냐고 놀랄 사람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거울은 원고료가 없는, 필진들이 보수 없이 글을 올리는 공간이다. 이 글을 쓰는 2024년 11월 말 기준, 64번째 필진이 들어왔다. 필진이 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기성 작가가 자신의 이력과 함께 필진이 되고자 하는 의사를 표현하고, 기존 필진의 동의 절차를 거쳐 필진에 합류하는 방법, 그리고 독자 우수 단편의 연간 최우수작이 되거나 2회 이상 분기 우수작이 되는 방법이다. 긴 시간 동안 새롭게 필진이 된 사람 상당수가 두 번째 방법을 통해 필진이 되었다. 독자 단편에 글을 올린 뒤에 출판으로 이어져서 첫 번째 방법으로 필진이 되기도 한다.
지난 호 단편선에 작품을 수록한 작가 12명 중 9명, 이번 단편선에서는 9명 중 서계수, 김산하, 남세오, 빗물 등 4명의 작가가 독자 우수 단편란에서 처음 거울과 만났다. 거울이 20년을 넘는 기간 동안, 세기가 바뀌는 동안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환상문학’이라는, 무척이나 포괄적인 이 넓은 범주 안에 모인 작가들은, 판타지, SF, 추리, 미스터리, 호러, 혹은 두 개 이상의 장르로 묶을 수 있는 다양한 환상성을 거울에서 펼쳐왔다. 거울은 마치 고향 마을 입구의 커다란 느티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 그러나 늘 같지는 않은 모습으로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매년 필진들의 단편이 쌓이고, 글쓴이가 작품 중에 하나씩을 골라 매년 거울단편선을 만들어왔다. 올해 아홉 작품 역시, 한 해 거울에 올라온 글들 중에 고르고 고른 작품들이다.



첫 글 서계수 작가의 〈그렇게 전사는 뻐꾸기를 구하고〉는 입양아인 언니를 제정신(?)으로 돌려놓기 위해 미래에서 온 전사와 협력하는 이야기다. 10대 특유의 복잡한 자매애를 다룬다. 서계수 작가의 호러는 곱씹을수록 두려움이 커지는 재미가 있는데, 이번 단편선에서는 호러가 아닌 판타지 청소년물을 실었다. 필자의 최애작이기도 하다. 너무 잘나서 자꾸만 나와 비교되는 언니라면 입양아든 아니든 질투와 동경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을 가지게 되겠지만, 거창한 훼방 놓기도 사춘기 히스테리도 없이 일기장에 소심하게 불만을 적는 동생의 모습은 10대다운 귀여움으로 가득하다. 자매가, 동성 형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느껴봤을 감정을 경쾌하게 다룬 즐거운 글이다.

박희종 작가의 〈대결〉은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에서 인간의 패배가 당연한 시대에 점쟁이와 미래 예측 프로그램의 대결을 그린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더라도 인간은 정교한 예측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미래 대신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에게 기대고 싶어지는 것일까. 인물 사이의 갈등이 선명하고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극적인 단편이다. 마치 단편 드라마 한 편을 본 것 같은 깔끔한 전개의 끝에는 따뜻한 마음이 남을 것이다.

김산하 작가의 〈상태창!〉은 어느 날 모든 사람의 앞에 자신에 대한 상태창이 떠오른 상황을 그린다. 모든 사람의 스탯이 전 세계 인구에서의 비율로 나타나며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할 때, 나는 대학교 때의 룸메이트인 ‘도’와 ‘호’를 만난다. 외양에 신경을 쓰며 다른 사람을 무시했던 호는 물려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성공했으면서 사람들에게 성공담을 파는 일을 하고, 운동선수 출신의 대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해도 성과가 적었던 도는 보수 적은 일을 묵묵히 해 나가기만 한다. 두 인물의 상반된 미래를 통해 화자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며 읽다 보면 현실의 상황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상태창이 없어도 우리는 서로의 스탯을 짐작하고, 쉽게도 누군가를 판단하곤 한다. 정상에서 벗어난, 남들보다 느린 이들에 대한 잔인함과 타고난 것을 노력한 덕분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의 오만을 생각하게 되는 글이다.

남세오(노말시티) 작가의 〈하늘색 바다색 그리고 청록색〉은 세 가지 원추세포 RGB 외에 시안색을 볼 수 있는 C 원추세포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이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를 그려낸다. 기존의 원색에다 시안색을 포함하는 선명한 원색이 존재하는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흰색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서로 다른 두 색이라는, 그래서 흰색 잉크로 흰색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이 그들만의 암호가 된다는 설정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인간의, 기득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를 비판하는 작가 특유의 선명한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글이다. ‘보게 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경전 속 글처럼, 계시문처럼 반복되는 글이 깊은 울림을 준다.

해도연 작가의 〈우주항로표지관리원의 어느 날 30분〉은 태양계 모든 행성 주변에 사람들이 살게 된 미래의 우주 등대지기, ‘우주항로표지관리원’의 이야기다. 감마선 폭발이라는 재난 상황에서 인간이 선택하는 숭고함을 그렸다. 정교하게 쌓아놓은 설정으로 구축된 미래의 모습은 우리가 언젠가 맞이할 미래의 모습으로 상상하기에 충분하고, 잘 만들어진 배경 속에 그려지는 인물들의 감정선은 또렷하고 아름답다. 하드 SF의 탄탄한 외피 안에 들어간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는 해도연 작가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이고, 이번 작품 역시 그렇다.

아밀 작가의 〈그리고 노래하기 시작했다〉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어리석은 왕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포악한 첫째 대신 왕위를 물려받은 어리석은 둘째는 형을 두려워한 나머지 어리석은 결정만 끝없이 내린다. 백성을 어리석다고 보고, 형을 피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왕의 모습은 수많은 폭군, 어리석은 독재자의 우화가 된다. 〈라비〉에서, 〈로드킬〉에서 보여줬던 이야기꾼의 면모를 잘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표제작인 김인정(미로냥) 작가의 〈처음에는 프린세스가 될 예정이었다〉는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2’의 세계를 바탕으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프린세스를 목표로 자라온 소녀가 아니라 마계에서 온 집사 큐브의 시점으로 그려내는 이야기다. 왜 용사는 소녀를 키워야 했는가에 대한 작가의, 큐브의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은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뭉클하게 만든다. 김인정 작가의 동화는 언제나 옳다. 작가의 동양 판타지가, 소녀물이 언제나 옳은 것처럼.

내가 쓴 〈여름의 섬〉은 기후 위기 이후에 여전히 이기심을 버리지 못한 세계를 그린다. 이런 미래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쓴 글이지만 처음 이 글을 쓰고 난 뒤 지금까지 세계는 조금 더 나쁜 쪽으로 향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 불안할 따름이다.

마지막 작품인 빗물 작가의 〈델릭타 그라위오라〉는 외딴곳에서 범을 기르며 영혼을 만나는 기묘한 존재 자경, 니노와 수녀 세라피나를 둘러싼 죽음에 대한 호러물이다. 눈으로 외부와 단절된, 전화선조차 끊어진 수도원을 배경으로 발생한 연이은 죽음은 고딕호러를 연상시키고, 거기에 넋의 단발마적인 호소가 섞이고 등장인물들의 과거사가 얽히며 점점 긴장이 고조된다. 피해자가 같은 피해자를 원망하게 만들 만큼, 피해자들이 모든 걸 포기하고 가해자를 두둔하는 쪽을 택할 정도로 가해자의 권력이 견고한데도, 온 힘을 다해 살아가기를 택하고 가해자에 맞서기를, 같은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선택하는 저항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사람을 사랑하는 호러의 힘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의 아홉 편을 다 읽고 나면, 거울에 들어와보시면 좋겠다. ‘환상문학웹진 거울’로 검색해도 되고, ‘웹진 거울’도 가능하다. 매달 1일에 어떤 새 글이 올라왔는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새 글을 올렸는지 궁금해하며 들어와도 좋다. 15일쯤에 새로운 리뷰가 올라왔는지, 작가진의 새 인터뷰가 있는지, 필진들의 이번 달 추천 도서는 무엇인지 보러 와도 좋다. 문득 생각이 났을 때, 어느 날에든 들어와서 64명 필진의 이름으로 올라온 그간의 단편을 주욱 훑어봐도 좋다. 그중 어떤 작품은 책으로 묶여 나왔다는 안내가 있을 테지만, 공개된 단편을 통해 자신의 최애 작가를 새로 찾게 될지도 모른다. 조용한 게시판에 감상을 남겨도 좋고, 문득 글이 써보고 싶어졌다면 독자 단편란에 글을 올려보는 것도 좋다.
참 조용한 공간이라 사람들이 얼마나 오가는지는 알기 쉽지 않겠지만, 매달 독자 단편란에는 꾸준히 글이 올라오고, 필진들은 매달 자신이 읽었던 좋았던 책을 소개하며,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거울이라는 지붕 아래에서 자신의 환상을 풀어놓는다. 그러니 들어오시라. 고향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동안 쌓여 있는 거울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즐겨보시길.

─ 구한나리, 환상문학웹진 ‘거울’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