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은 시인의 28번째 시집. 전국 각지의 문학상 당선작을 위주로 엄선한 100편의 시를 담았다.
박덕은 시인은 경력이 다채롭다. 그중에서도 28권의 시집을 펴낼 정도로 시 사랑은 각별하다. 사진작가이며 화가이기도 한 박덕은 시인은 문학 장르 전반적인 분야를 망라하면서 총 저서 125권을 발간한 작가이다. 이번 시집은 전국 각지의 문학제에서 수상한 시를 위주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100편의 시를 모아 보았다.
책속에서
[동백꽃] - 한국 문예 문학상 대상 수상작 고래가 숨을 곳 찾다가 붉게 뛰어든다 저녁이 덮치기 전에 전설의 경계를 밟고서
서러운 작살에 울부짖음 번지면 포경꾼들은 뼈와 살이 눈물처럼 흩어지는 바다의 어린 기억을 잡아 낚아챈다
동백의 개화로 죽은 숨결이 다시 열린다는 설만 수평선에 걸쳐 둔 채
고래는 섬의 목탁 소리 물고 엉켜 있는 천리 길 풀면서 주먹이 판치는 폭풍 속으로 내던져질 때마다 찢긴 지느러미와 뿌연 연기의 벽만 높인다
바닥에 엎질러진 울음에도 단단한 저항의 힘으로 일어서며 치솟는 향기, 이제는 절 앞마당에서 고요히 가부좌 틀고 있다
제 숨 밀어 넣어 아린 무늬 키우는 고래, 열병 앓듯 온몸 펄펄 끓다가 쏘아붙인 상흔들 가라앉히며 화엄으로 피어난다.
[행운목] -한국 문예 문학상 대상 수상작 아버지는 일 년 계약직 접시 물에서 일한다
얄팍한 물빛에 악착같이 뿌리내려 보지만 새소리 하나 깃들지 못한다
토막 토막 잘려나가 초록 영업 실적의 성실한 잎을 내면 잘릴 때가 다가온다
정 붙일 만하면 쫓겨나는 것이 인생이고 잘려야 다음 접시로 넘어가 일할 수 있다
그나마 살아 있어 취업하는 것이 행운이다
칠 년을 기다리면 핀다는 내 집 마련 같은 꽃 그 약속을 실행하기* 위해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서 혼자 야근한다.
*약속을 실행한다:행운목 꽃말
[푸드코트*] - 김해일보 시민문예 남명문학상 수상작 육질이 살아 있는 옷감으로 친환경 코트를 만든다
원단이 싱싱해 색상과 무늬가 추위 막기에는 제격이다 마름질하기 위해 가위는 장바구니 가득한 고기류와 채소를 씻어 자른다
두툼한 안감의 팔딱이는 생선 비린내는 밑실로 감아 숨기고 하얀색 바탕에 붉은 꽃 새긴 꽃등심으로 깃 세운 그 끝에 버섯을 이어 붙여 가늘게 채 썬 양파로 매운 향 솔기 만들 때까지 노루발*은 수없이 어루만지고 핥으며 밤 지샌다
패션계에도 웰빙 바람이 불어와 건강 지키는 유기농 의류가 대세
디자인이 유행에 뒤처지면 과감히 벗어 식탁 위에 올려놓고 젓가락이 닿자마자 코트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며 보풀 일어난 매운탕이 된다
잘라낸 매듭 한입 가득 뜨는 사람들 박음질 맛이 매콤하다며 땀을 흘린다.
*푸드코트: 건물 내에 여러 종류의 식당이 모여 있는 곳 *노루발: 재봉틀의 부속품, 옷감을 밀리지 않게 눌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