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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

제1부  국내외의 왜구 인식 … 1

영문판(英文版) 일본역사서 속의 한국사 및 한일관계사 관련 서술 조사 연구-왜구 문제를 중심으로- 3
1. 서론 3
2. 관련 문헌 및 문제의 소재 4
3. 영문판 일본 역사서에 보이는 〈왜구=고려(조선)인 실체〉설의 원점(原點) 19
4. 결론 24

국사편찬위원회 간행 「한국사」 및 「신편 한국사」의 고려 말 왜구 서술 고찰 27
1. 서론 27
2. 장절(章節) 구성의 문제 28
3. 일본의 왜구 연구에 대한 의존 34
4. 내용상의 문제 41
5. 결론 57

무라이 쇼스케의 경계인설에 관한 비판적 고찰-「왜구는 누구인가(倭寇とはだれか)」를 중심으로- 59
1. 서론 59
2. 경계의 정의 문제 63
3. 사료 해석의 문제 69
4. 왜(삼도)와 일본 75
5. 결론 80

무라이 쇼스케의 〈왜구=비영주・주민〉설 고찰 83
1. 서론 83
2. 〈비 영주(非領主)・주민(住民)〉설의 검토 85
3. 〈비 영주 계층・주민 계층〉설의 근거 ‘이주위가(以舟爲家)’의 검토 94
4. 〈비 영주 계층・주민 계층〉설과 〈병량미 확보를 위한 침구〉설 102
5. 결론 117


제2부 왜구의 소년 대장 아지발도의 정체 … 119

고려 말 왜구와 남조(南朝)-경신년(1380)의 왜구를 중심으로- 121
1. 서론 121
2. 선행 연구의 검토 122
3. 사료의 검토 127
4. 다카기(高来)・아마쿠사(天草)의 지정학적 위치 135
5. 경신년(1380)을 전후한 규슈 정세 139
6. 〈경신년 왜구〉의 실상 148
7. 결론 162

경신년(1380) 왜구=기쿠치씨(菊池氏)설 고찰-무력의 특징을 중심으로- 165
1. 서론 165
2. 경신년 왜구의 실체에 관한 선행 연구 166
3. 경신년 왜구의 특징 174
4. 기쿠치 씨 무력의 특징 187
5. 결론 204

남북조 내란기 일본 무사와 왜구의 전술-기쿠치씨와 왜구의 전술 비교를 중심으로- 207
1. 서론 207
2. 기쿠치씨의 센본야리(千本槍)와 왜구의 집단창술 211
3. 오와타리(大渡) 전투의 교량파괴 전술과 왜구 218
4. 시라하타성(白旗城) 전투에서의 ‘조운(鳥雲)의 진(陣)’ 전술과 왜구 222
5. 결론 229

남북조 내란기 다카기(高来)・아마쿠사(天草) 지역 수군에 대한 선승(禪僧) 다이치(大智)와 아지발도(阿只拔都)의 리더십 비교 231
1. 서론 231
2. 남북조 내란기 다카기・아마쿠사 지역과 기쿠치씨 234
3. 다카기・아마쿠사의 수군과 선승 다이치(大智) 240
4. 다이치 사후, 다카기・아마쿠사의 수군 통제와 아지발도 251
5. 결론 258

아지발도의 정체와 이쿠라노미야-신화・제례・사료의 문화인류학적 해석을 통한 고찰- 261
1. 서론 261
2. 이쿠라노미야(伊倉宮)의 정체에 관한 선행연구 264
3. 이쿠라의 지리적 특징 269
4. 이쿠라노미야의 출생과 정서부의 자립화 275
5. 이쿠라의 전승 신화와 왜구의 고려 여아 희생 행위의 문화인류학적 해석 282
6. 결론 293

아지발도(阿只拔都)=이쿠라노미야(伊倉宮)설 재검토-군사학 및 역사지리학적 고찰을 중심으로- 297
1. 서론 297
2. 아지발도의 전술적 행동과 「육도삼략(六韜三略)」 301
3. 기쿠치씨의 ‘도호(陶壺)의 진’과 와이후죠(隈府城) 308
4. 황산 전투 현장에서의 아지발도의 전술과 도호의 진 316
5. 결론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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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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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 왜구!’ 21세기 현대 한국 사회의 언론이나 정치 논쟁 등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익숙한 단어다. 한국에서 ‘왜구’라는 단어는 ‘일본인으로 이루어진 해적 집단’이라고 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지만 일본에서는 이 왜구의 의미가 한국과 전혀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왜구의 구성원에는 일본인은 물론, 중국인과 고려(조선)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본 학계의 영향으로 서구 지식 사회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삼도(対馬・壱岐・松浦)의 해민(海民)설.
다민족(多民族) 복합적(複合的) 해적설.
경계인(境界人) 설.
이 3가지 설은 일본인들이 제기해 온 주요한 왜구론으로 왜구 합리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일본인들에 의해 제기된 다양한 왜구론과 그 시대적 배경을 되짚어보며 또 최근에 새롭게 제기된 <경계인>설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왜구의 중심에는 당시 일본사회의 지배층이 있었고, 실제로 이들이 왜구의 지배층을 이루고 있었음을 사료와 사실을 중심으로 규명하였다. 우왕 6(경신・1380)년의 왜구의 실체와 당시 최고 사령관이었던 소년 대장 아지발도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당시 경신년 왜구의 실체가 규슈 남조의 핵심적 무력집단인 기쿠치씨였으며, 그 대장 아지발도는 정서부의 최고 사령관인 가네요시 왕자의 아들인 이쿠라노미야였다.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서 살인과 약탈, 방화, 강간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른 집단인 왜구의 실체가, 남북조 내란기 천황을 위해 무조건적인 충성을 다했던 규슈 남조(정서부)의 핵심 무장 집단인 기쿠치씨 휘하 수군이었으며, 또 소년 대장이 ‘이쿠라노미야’라는 ‘황족(皇族)’이었다는 필자의 주장은 일본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 왜구 연구자들이 주장해온 수많은 선행 학설은 한중일 삼국의 신진 연구자들로 하여금 왜구 연구에 입문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역기능을 했다. 저자는 이러한 선행 연구를 철저하게 비판하고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