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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161631 839.822 -25-1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0003161632 839.822 -25-1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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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연극사와 사상사에 〈인형의 집〉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친 희곡은 드물다. 발표 즉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세계적 반향을 동반하며 입센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입센의 대표작이라는 데 이견이 없으며, 페미니즘 문학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인형의 집〉이 초연된 1879년, 작품의 배경이 되는 노르웨이를 비롯해 전 세계 여성의 가정 내 지위는 종속적이었다. 결혼 전엔 아버지, 결혼 후엔 남편에게 삶 전체가 맡겨져 있었다. 어머니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가정에서 여성이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노라’는 누구보다도 가부장제 관습을 잘 체화한 평범한 딸, 어머니, 아내였다. 남편에게 사랑받는 ‘종달새’, ‘다람쥐’였던 노라가 어떻게 페미니즘 운동의 선봉에서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전 세계 여성의 등불이 되었을까?
변호사였던 토르발 헬메르는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중요 인사로 부상한다. 형편도 크게 나아져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트리를 장식하는 헬메르의 아내 노라는 마음껏 행복감에 빠져든다. 사실 노라를 기쁘게 한 것은 따로 있다. 생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로부터 가족을 구한 것이 다름 아닌 노라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기지를 발휘해 큰돈을 융통했지만 여성의 경제권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를 비밀로 간직해야 했던 노라는 이제 곧 채무를 상환하고 비밀에서 자유로워진 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온전히 가정에 충실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들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손님의 방문으로 노라의 기대는 산산히 부서진다. 채권자 크로그스타가 노라에게 비밀을 폭로하겠다며 협박을 시작한 것. 그날부터 노라는 남편에게 비밀이 탄로 날까 봐 불안에 떨며 어떻게든 크로그스타의 폭로를 막고자 고군분투한다.
이때까지도 노라는 남편의 신의와 사랑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가련한 ‘종달새’였다. 반전은 노라의 비밀이 밝혀졌음에도 남편 헬메르가 “당신을 용서했다”며 다시 그녀를 “비둘기”라 부른 순간에 일어난다. 헬메르는 크로그스타의 협박이 무용지물이 되기 전까지 노라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그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헬메르의 태세 전환으로 노라는 깨닫는다. 딸일 때도 아내일 때도 자신은 그저 ‘인형’에 불과했다는 것을.

“당신 자신이 맞닥뜨릴지도 모를 일에 대한 두려움과 위험이 모두 사라지자마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돼 버렸네요. 난 다시 예전처럼 당신의 작은 종달새, 당신의 인형이 됐군요. 이제 당신은 두 배로 조심스럽게 다루시겠죠, 부서지기 쉽고 너무나 연약했으니까.”

노라가 헬메르의 간청을 뿌리치고 짐가방을 싸서 홀로 집을 떠나는 극의 결말은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다. 노라가 떠나지 않는 결말로 꾸민 각색 버전이 공연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오히려 작품의 메시지를 강화했다. 곧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할 전 세계 여성이 ‘노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노라는 연극사뿐 아니라 사회문화사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긴 채 성공적으로 ‘인형의 집’을 떠났다.
2001년 유네스코는 〈인형의 집〉 초판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초고의 메모에는 입센의 문제의식이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인형의 집〉을 쓴 직후 입센은 노르웨이의 여성 권리 운동에 지지를 표명하고 그로부터 몇 년 뒤인 1898년 5월 26일 현재의 오슬로에서 개최된 여성 권리 연맹 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여성 권리 운동을 위해 의식적으로 일했다는 영광은 포기하겠습니다. 저는 이 여성 권리 운동이 실제로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제겐 그것이 인류 전체의 문제로 보였거든요. 제 작품을 주의 깊게 읽어 보신다면 이 점을 이해하실 겁니다. 물론 여성 문제를 다른 모든 문제와 함께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어요. 제 과제는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묘사가 상당히 사실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독자는 시인의 작품에서 자신의 감정과 감상을 읽어 낼 겁니다.”

한국 초연은 1925년 9월 조선배우학교에서 현철 연출로 이루어졌다. 복혜숙이 주인공 노라를 연기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흘렀다. 그사이 여러 번 번역되었지만 군데군데 오류와 왜곡이 쌓여만 갔다. 원전에 충실하게 우리말로 옮기며 굳어진 번역에서 달라진 부분에 주석을 달았다. 무대화를 위한 최신 연구 자료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100년 만에 〈인형의 집〉을 “바로” 읽을 수 있게 됐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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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8~159] 노라 : 내가 아빠 집에 있었을 때, 아빤 당신 생각을 죄다 내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럼 나도 똑같이 생각을 했죠. 생각이 다를 땐 숨겼어요, 아빠가 안 좋아하실까 봐. 아빤 날 인형 아이라 부르면서, 나랑 놀아 줬어요, 내가 인형을 갖고 놀듯. 그러다 난 당신 집에 오게 됐죠…
헬메르 : 우리 결혼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고?
노라 : (개의치 않으며) 내 말은, 난 그렇게 아빠 손에서 당신 손으로 넘어갔다는 거예요. 당신은 모든 걸 당신 취향대로 꾸몄고, 난 당신과 같은 취향을 갖게 됐죠. 아니면 그런 척한 것이거나.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둘 다였던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