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수필을 창작한 작가로 지목되는 청천 김진섭은 수필이론가로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1929년 동아일보에 ‘수필의 문학적 영역’을 발표하여, 이 글에서 그는 수필의 문학적 영역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가 쓴 수필은 서정적이다. 그러나 환상을 배게하고 사색적이며, 논리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그가 발표한 200여 편의 수필은 현대적인 문학 장르와 일상의 삶과 철학적 사유를 일상생활을 통해 그 가치를 추구하려는 사색의 산물이기도 하다. 한편 김진섭 수필의 특색인 만연체 문장의 유려하고 장중한 표현 역시. 이러한 사유의 영역이자 숙고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서로는 1947년 첫 수필집 「인생예찬」을 출간하고, 이어 1948년에 「생활인의 철학」을 발간하였다. 1958년 40여 편의 유고를 모아 「청천 수필 평론집」이 발간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1950년 8월 청운동 자택에서 6·25동란 당시 납북된 이후 오늘날까지 그 생사를 알 수 없다.
재출간에 즈음하여 다음이 사항을 일러둔다. * 2006년 4월에 첫 출간한 「인생예찬」을 재출간한다. * 외래어 표기와 맞춤법은 현재 사용하는 표기법으로 수정하였다. *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단어나 어절 옆 위쪽에 작은 글자로 주석을 달았다.
이하윤은 김진섭에 대해 평소 ‘과묵과 신중으로 일관’했으며, ‘원고의 필치’까지도 ‘알뜰하고 품위’ 있었다고 술회한다. 작가에 대한 인상, 단정과 품위는 그의 글에서도 확인되는데, 문장은 물론 인식 태도와 서술 방식에 드러나는 품격은 김진섭 수필의 본질적 속성이다. 온후와 과욕寡慾의 성격, 시속의 변화에 거리를 두는 문사 기질은 김진섭의 글쓰기를 형성하는 근본적인 태도였다. 한학자였던 아버지에게서 받은 한학은 고전주의적 성향의 밑바탕을 이루었고, 일본 유학 시절에 접한 외국 문학은 김진섭 수필의 또 다른 토양이 되었다. ‘해외문학파’로 명명되는 손우성, 이하윤, 정인섭 등 외국 문학 연구자들과의 유대는 김진섭 수필의 문학적 자산이자 배경이 되었다. 김진섭 수필에 들어있는 도시적 감수성과 섬세한 취향은 외국 문학 탐구 중에 체득한 감각과 연구자로서의 자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특히 독일 문학과 서구의 에세이는 새로운 글쓰기 형식과 방법의 모델로 삼기도 하였을 것이다. 1920년대 중반부터 발표한 2백여 편의 수필과 평론은 수필을 현대적인 문학 장르로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게 했다. 일상의 삶과 철학적 사유를 아우르는 그의 글쓰기는 수필이 독자적인 장르로 자리 잡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김기림은 수필을 ‘조반 전에 잠깐 두어 줄 쓰는 글’로 치부하는 생각이 김진섭에 이르러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김진섭의 수필에서 ‘소설의 뒤에 올’ 새로운 ‘문학적 형식’의 가능성을 읽어내고, 김진섭은 수필이 신변잡기나 경험을 나열하는 글이 아님을 글을 통해 여실히 보여 준다고 평했다. 한편 박종화는 김진섭의 수필은 ‘생활’에서 출발해 ‘사념’으로 발전한다는 평가처럼 그의 수필은 현실의 구체적인 생활에서 근원적 가치를 추출하려는 사색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