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융합에 대한 오해 1. 융합의 과정: 다윈의 사례 2. 보편적 작업으로서의 융합의 본질과 조건 3. 융합 인재 교육은 어불성설이다 4. 융합의 줄기세포 5. ‘융합’과 ‘무전공’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대한민국 6. 생성 인공지능의 도전 7. 인공지능은 몸을 가질 수 없다 8. 인문학은 과학일까? 9. 과학은 인문학일까? 10. 자연어와 수학을 모두 잘 구사한다는 말의 의미는?
2장 공동 뇌 프로젝트 1. 인간다움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2. 생각이란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이다 3. 개인 뇌에서 공동 뇌로 4. 개인 지능이 아닌 공동 지능이다 5. 창의력은 개인의 것인가? 6. 창의적이고 협력적인 인간이라는 종 7. 공동 뇌와 불평등 분배 문제
3장 미래 역량 교육 1. 우리는 왜 공부해야 하는 걸까? 2. 왜 새로운 교육이어야 하는가? 3. 인문학의 재정의: ‘학문 연구’와 ‘교육’을 구분하자 4. 확장된 인문학 교육은 재교육과 융합의 발판이다
나가며: 공동주의와 공동 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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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그동안 융합 인재 교육이 번번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
지식의 양이 방대해진 오늘날에는 개인 지능이 뛰어난 천재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협업을 도모할 수 있는 ‘공동 지능형 인재’가 필요하다
‘융합’, ‘복합’, ‘통섭’, ‘초학제’ 등 표현은 다르지만 이러한 흐름이 유행을 탄 지 꽤 오래되었다. 구분 짓기, 경계 짓기로 점철된 근대적 교육을 극복하고 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뜻은 좋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전설 속 르네상스형 인간을 이상형으로 내세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르네상스 시대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지식의 양이 극도로 방대해지고 전문화가 심화된 오늘날, 한 개인이 두 가지 이상의 전문 지식을 갖춰 융합을 이루어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저자는 ‘공동 뇌’라는 새로운 개념을 소개한다. 융합은 전문가들의 협업을 통해 발생한다. 융합은 개인의 뇌가 아니라 개인 뇌들의 만남의 장소, 즉 공동 뇌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공동 작업의 산물로서 창의성은 역사적으로 누적되고 전승된다. 보존되고 누적되고 전승된 인류 전체의 기억이 바로 공동 뇌인 것이다. 이러한 융합과 창의성을 위한 소통의 도구가 필요한데, 그것은 과거의 자연어 범위를 넘어서는 확장된 언어력, 확장된 인문학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확장된 언어력, 확장된 인문학이야말로 우리가 수행해야 할 공통 핵심 역량 교육이다. 이 책은 ‘공동 뇌’를 중심으로 융합, 창의성, 미래 역량 교육을 위한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융합 인재 교육은 왜 실패했는가?
언제부턴가 교육계는 융합과 창의성을 비전으로 내걸기 시작했다. 문과형 인재와 이과형 인재를 나누는 구시대적 발상은 창의성과 다양성이 요구되는 새로운 시대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인재, 즉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consilience)’이라는 개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 같은 탁월한 천재 말고는 최근 융합과 관련해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융합 인재 교육이 실패했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실패의 원인을 융합의 개념을 오해한 데서 찾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전설 속 르네상스형 인간은 어디까지나 르네상스 시대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지식의 양이 극도로 방대해지고 전문화가 심화된 오늘날, 한 개인이 두 가지 이상의 전문 지식을 갖춰 융합적 결과를 내겠다는 것은 가장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융합의 잘못된 개념 설정에 따른 잘못된 목표 설정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것이다. 오히려 개인은 한 분야의 전문성을 더 길러야 한다. 그러면서 전문성을 갖춘 개인이 다른 전문가와 협업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융합은 전문가 간의 협업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다시 말해 개인의 뇌가 아니라 개인 뇌들의 만남의 장소, 즉 ‘공동 뇌’에서 융합이 이루어진다.
개인 지능보다 공동 뇌가 중요하다
저자는 창의성을 발현하려면 개인의 자질에 의존하지 않고 서로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창의성은 공동 작업의 산물로서 누적되고 전승되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거인들의 어깨를 딛고 분출하며 인류 전체의 기억에 담겨 보존될 때 의미가 있다. 보존되고 누적되고 전승된 인류 전체의 기억이 바로 ‘공동 뇌’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창의적 개인들은 홀로 등장한 적이 없고 특정한 지역과 시대에 집중적으로 동시에 등장했다. 기원전 4세기 전후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14세기 전후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17세기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한 네덜란드, 18세기 에든버러를 중심으로 한 스코틀랜드 등이 대표적인 예다. 다름 아닌 그 시기에 그 지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천재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심리학자이자 교육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성은 개인뿐 아니라, 역사적 유산인 ‘문화’와 동시대 현장 전문가의 ‘사회’가 함께 작동할 때 발현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 논의를 발전시켜 문화, 사회, 개인이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좋을지 뇌과학, 고생물학, 고고학, 인류학, 역사학, 사회학, 철학, 심리학, 교육학의 성과들을 종합해 방안을 제시한다.
미래 융합 교육에는 ‘확장된 인문학’이 답이다
앞서 융합은 전문가 간의 협업에서 성립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는 협업의 기초로 모든 시민이 공통 핵심 역량을 먼저 갖추자고 제안한다. 그 역량은 바로 인간과 세상을 읽고 쓰는 능력이다. 21세기에 오면서 읽고 쓰는 언어는 과거의 자연어 범위를 넘어섰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같은 자연어에 덧붙여 수학, 자연과학, 기술, 예술, 디지털 등의 언어, 즉 ‘확장된 언어’를 읽고 쓰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이러한 능력을 ‘확장된 언어력’이라고 부른다. 확장된 언어력 교육은 ‘확장된 인문학’이 담당해야 한다. 저자는 그 방안으로 우선 고등교육의 일환으로 공통 핵심 역량 교육(확장된 인문학 교육)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문학은 ‘연구 인문학(스투디아 후마니타스)’보다는 ‘교육 인문학(아르테스 리베랄레스)’에 가깝다. 확장된 인문학 교육은 초중등 교육에서 시작해 고등교육에서 마무리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그다음 단계에서는 전문 역량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문 역량 교육은 직업 교육과 학술 연구라는 두 축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일반 시민에게는 직업 교육 과정을, 미래의 학문 세대에게는 학술 연구 과정을 제공한다. 이 교육과정이 운영되면, 머지않아 전문가의 협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전문가로서 훈련하기 전에 공통의 언어, 즉 ‘확장된 언어력’, ‘확장된 인문학’을 습득해 언제라도 소통하고 협업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속에서
[P.16~17] 융합과 관련한 유감스러운 소식은 지속적인 성공 사례가 보고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융합 작업에 성공하는 ‘방안’ 혹은 ‘방법’을 아직 잘 모른다는 징표기도 하다. 결과물이 나온 후에 그것이 융합의 산물이라고 평가하는 일은 왕왕 있었다. 가령, 스티브 잡스의 걸작 ‘아이폰’은 융합의 산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결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 하지만 융합의 결과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성과물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융합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건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융합 작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는 여전히 답이 없어 보인다. 중요한 건 결과물을 낳게 해주는 방법, 즉 ‘어떻게’일 텐데 말이다. 과연 융합의 방법은 있기나 한 걸까? 어떻게 해야 융합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나는 융합의 핵심을 개인의 자질에서 찾기보다 개인들의 협업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P. 22~23] 본디 융합은 ‘협업’이다. 영어로 융합(convergence)이라는 말부터가 벌써 ‘여럿을 하나로 수렴한다(con-verge)’는 뜻이다. 나는 다윈의 사례에서 무엇보다 그의 탁월한 소통 능력에 주목하고 싶다. 소통은 언어 능력을 전제한다. 언어 이해가 소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최소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소통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언어 활용 능력을 ‘문자력(literacy)’이라 불렀다. 문자력은 다름 아니라 읽고 쓰는 능력이다. 이에 더해 오늘날에는 확장된 문자력이 요구된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처럼 일상에서 사용하는 자연어라는 좁은 의미의 언어에 국한하지 않고 확장된 언어, 즉 수학, 자연과학, 기술, 예술, 디지털 등 오늘날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데이터 소통 수단’이 관건이다. 후자는 ‘자연어’와 대비해 ‘인공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자연어와 인공어를 둘 다 다루는 능력을 ‘확장된 언어력’이라 부를 수 있을 테고, 이것이 오늘날 모든 소통의 선결 조건이다.
[P. 92~93] 시인들의 통찰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생각이 인간 ‘내면’에 있지만 또한 인간 ‘사이’에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표현되지 않은 생각은 잠재된 상태로만 있다. 생각은 표현되어야 비로소 실재하게 되는데, 표현은 누구나 공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물질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흔히 예상하는 것과 달리 생각은 늘 외화된 형태로 존재한다. 물질 미디어의 형태로 외화된 생각, 인간 사이에 있는 생각, 인류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객관화된 생각, 개인들로 흘러들고 개인들이 다시 채워 넣는 인류 공동의 소유물, 이것이 바로 인류라는 공동 뇌다. 뇌과학 연구는 생각이 인간 ‘사이’에 있다는 점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친밀함을 오래 유지한 커플은 ‘공유 기억’ 혹은 ‘분산 기억’ 시스템을 발전시킨다. 말하자면 나의 뇌가 두 개가 된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 둘보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생각의 합의가 일어날 때는 뇌의 동기화가 이루어져 ‘단일한 초뇌(超腦)’를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