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앞에 괸 시 맨 앞에 괸 시 수레국화 향기밖에 없다 설산 눈 덮인 흰 산 데칼코마니 나는 기계다 아화 개안기 재현 화관 새소리 흉내 꿈 미꾸라지 1과 2의 노래 얼굴 왜? 뭐? 내다보던 창 하나 산으로 솟다 느리게 걸어가듯, 보다 조금 빠른 모래 한쪽 눈은 노랑 한쪽 눈은 파랑 블랙박스 못과 끈 정처 없는 길 그렇게 너는…… 반대편 사면에 요동치는 기우는 빛 눈꽃 다시 돌아오고 있다 돌들로 말하지 모두 품에 안는다 다랑쉬오름
더 작은 시작 더 작은 시작 반짝이는 이미 죽은 것들이 자기 입에 대고 말한다 돌과 죽음과 먼지 그들의 움직임은 각자가 아닌 서로의 힘 속에 있다 고장 나 덜컹거리며 현재는 찢어진다 그것이 되어야 한다 까마귀와 노란 자두와 사람의 연대 손을 벗어 선반 위에 올려놓고 검은 머리 소켓 절벽 앞 허공 폭풍 순서 없는 고통의 형식 그녀, 너, 우리가 촉감하는 것 빗속에 집이 서성인다 그의 얼굴을 그의 등에 묻고 전체는 부분들보다 작다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병뚜껑이 열린 나무 어른거린다 희미하게 유령으로
네번 접은 풍경 앞에 괸 시 풍경의 알고리듬 네번 접은 풍경 Arcus+Spheroid
해설|김나영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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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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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170687
811.15 -25-406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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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너는 내 몸 안에서 나보다 오래 살겠지.
머리에 고가철도를 쓰고 기차가 지날 때마다 기억하겠지.”
신체를 이루고 바꾸고 벗어나는 언어 흩어지고 부서지며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로서의 시
감각적이고 독특한 물질적 상상력을 통해 ‘몸’과 ‘언어’에 천착하며 ‘몸의 시인’으로 불리어온 채호기 시인의 신작 시집 『머리에 고가철도를 쓰고』가 창비시선 513번으로 출간되었다. 올해로 시력 38년에 이르는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신체의 일부이자 독립적인 물질로서의 언어를 깊이 탐구하는 동시에 인간과 비인간, 존재와 비존재의 데칼코마니를 펼쳐 보이며 그 대칭의 중심부를 끈질기게 들여다본다. 삶과 죽음,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형이상학적 사유가 돌올한 시편들은 언어가 지니고 있던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고 그 외부와 내부를 뒤집어 보기도 하며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킨다. 시인이 “비인간 객체와의 공생의 집”이라 명명한 이 “시의 집”은 ‘맨 앞에 괸 시’ ‘연습곡’ ‘더 작은 시작’ ‘네번 접은 풍경’이라는 “네개의 현관”, 즉 네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현관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집의 구조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시인의 말). 특히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과 화가 서정임의 그림(「느리게 걸어가듯, 보다 조금 빠른」), 기타리스트 이성우가 되살려낸 작곡가 페르난도 소르의 연습곡(「Etude」 연작)과 화가 이상남의 그림(「풍경의 알고리듬」 「네번 접은 풍경」 「Arcus+Spheroid」) 등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은 언어 바깥에 자리한 예술을 시적 언어로 새로이 감상하게끔 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언어의 또다른 가능성을 만끽해볼 수 있다. “인간이 비인간을 괴물로 보듯 비인간은 인간을 괴물로 본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많은 시편이 “사물의 관점에서 기록한 사물의 경험”(김인환, 추천사)을 들려주는 데서 알 수 있듯 채호기의 시는 “리버시블 인간관”(김나영, 해설)이라 할 만한 독특한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우리 몸과 정신의 대부분이 ‘비인간’ 객체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시인은 ‘비인간’이라는 표현에서 엿보이는 인간 중심적 관점을 의심하고, 정신과 물질, 인간과 비인간, 존재와 비존재라는 구분을 허물어뜨리면서 “머뭇대고 비비적대는 삶”(「반짝이는」)의 내면과 “복잡한 거짓말이 반짝이는/생의 미로”(「네번 접은 풍경」)를 탐색한다. 또한 시각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통해 세계의 현상을 구체적으로 포착해온 시인은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음”(「개안기」)을 역설하면서 ‘예감’이라는 육감을 동원하여 가시화할 수 없는 것까지 가시화하고자 한다. “시는 언어의 도살장. 불끈 언어의 사건의 지평선에서 조각난 파편으로 웅크린다.”
그런가 하면 시인은 “죽음과 삶은 딱 잘라지지 않는다”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는 흐릿하다”(「반짝이는」), “살아 있는 것은 죽은 것보다 조금 더 살아 있고 죽은 것은 살아 있는 것보다 조금 더 죽어 있을 뿐 산 것과 죽은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가 아니다”(「이미 죽은 것들이」)와 같은 날카로운 아포리즘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시집 곳곳에 심어놓기도 한다. 삶은 “그저 시간의 아름다움에 기대”어 “늘 한 개체의 망실을 견디는” 것이기에, 시인은 “죽음 속에서도 삶이 거듭되는”(「네번 접은 풍경」) 풍경을 바라보며 죽음이 단지 생명의 소멸이 아니라 “시간에서 시간을 떼어내는 일”(「화관」), “정지의 중지”이자 “갈망의 중지”(「돌과 죽음과 먼지」)임을 확인한다. 나아가 ‘사건의 지평선’과 ‘호킹 복사’ 같은 물리학 개념을 차용하여 시쓰기에 대한 시인의 인식을 드러내는 시편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시인은 시란 단순히 언어를 구조적, 형식적으로 배열한 것이 아니라 “언어와 언어 사이에 호킹 복사에 견줄 만한”(해설) “수평의 거대한 사건”(「앞에 괸 시」)이 일어남에 따라 생겨난 무엇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그토록 거대하고 능동적인 탄생은 시인에게 있어 “매번 죽지 않을 만큼 소량의 죽음을 복용하는 것”(「Arcus+Spheroid」)일 수밖에 없다. “노래는 그렇게 새롭게 시작한다.”
노래가 “죽음을 딛고” “새롭게 시작”하듯, 채호기는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그 무엇을 찾아”(「느리게 걸어가듯, 보다 조금 빠른」) “망가진 감각”과 “망가진 언어”(「새소리 흉내」)를 추스르고 가다듬으며 다시 한번 길을 나선다. 그 “정처 없는 길”(「정처 없는 길」) 위에서 시인이 끊임없이 변주하는 ‘연습곡’은 또다른 ‘작은 시작’과 ‘더 작은 시작’으로서 새로운 시를 길어올릴 것이다. 시인의 시는 지금도 시작되고 있다.
책속에서
그것은 너의 몸속에 그것을 묻을 그것의 흰 종이다. 그것은 너와 네 꿈으로 합산한 몸을 둥글게 말고 공처럼 벽에 던져졌다.
너는 그것의 머리를 묶은 바다를 풀어낸다. 그것은 작은 입술이 되어 너의 젖가슴 사이로 파고든다. 불을 끈다. 불꽃을 위해 종이에 담은 네 심장을 돌려주마. ―「맨 앞에 괸 시」 부분
서쪽에서 부는 바람이 투명한 천을 펼친다. 목서초의 입안에 조용히 손을 집어넣는 죽은 사람. 침묵이 겁먹은 채 떠 있고 해안선에 고인 바다가 실명한다.
날개는 공기의 푸르른 일렁임에 가 닿고 향기밖에 없다. 광채밖에 없다. 어두운 세월밖에 없다. ―「향기밖에 없다」 부분
풍경을 반으로 접어 찍어낸 듯 대지에 서 있는 것들이 물 위에 누웠다. 넓게 퍼지며 평평해지는 물은 침묵이지만 수면 위에 선명하게 인쇄된 지상의 목소리들. ―「데칼코마니」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