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이 감도는 파리를 배경으로 전쟁이 만든 인간성 파괴와 외로운 피난민의 희망 없는 삶의 모습을 그려낸 망명 문학의 걸작!
“세상에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라는 위대한 작가가 있다.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의 장인이며, 언어를 자유자재로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인간에 대한 글이든 무생물에 대한 글이든 그의 손길은 섬세하고 단단하며 확실하다.” ―《뉴욕타임스 북 리뷰》
전쟁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망명 문학의 걸작!
“나는 왜 값싼 소리를 하고 있을까. 신문에서나 볼 수 있는 역설이다. 진실이라는 것은 일단 입 밖에 내버리면 이렇게도 초라해지고 마는구나.”
전쟁이 만든 공포와 광기, 불안을 담은 레마르크의 대표작 《개선문》은 《서부전선 이상 없다》 이후 발표한 레마르크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로, 그 이전에 발표한 장편소설 네 편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나치스 독일에 쫓겨 유럽 각국에서 파리로 도망쳐 온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몽마르트르의 값싼 숙소를 배경으로, 피난민 중 한 사람인 외과 의사 라비크의 절망적 일상생활과 행동을 담백하게 묘사한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전야의 불안과 공포에 찬 지식인의 정신 상태를 눈에 보일 듯이 그려내어 최고의 반전 소설이자 망명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선문》만큼 레마르크의 사상을, 여인의 방황하는 관능을, 남녀의 야릇한 심리 갈등을 교묘하게 묘사한 작품도 없다. 작가의 풍부한 시정과 애절한 서정이 여한 없이 묘사되었고, 특히 조앙 마두와 주인공 라비크의 가슴 아프고 애절한, 어딘가 뒤틀린 사랑은 읽는 이의 마음을 저리게 한다.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레마르크의 주제 의식 레마르크는 첫 장편소설인 《서부전선 이상 없다》(1929)를 발표한 뒤 《검은 오벨리스크》(1957)까지 장편은 여덟 편밖에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들은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와 문학적 표현 양식이다. 레마르크는 사적인 개인의 문제를 작품의 주제로 삼지 않는다. 그가 발표한 장편소설 여덟 편은 20세기 세계사를 뒤흔든 사건들인 1차 세계대전, 세계대전 후의 혼란, 히틀러, 게슈타포, 강제수용소, 2차 세계대전 등을 다룬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고뇌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 비참한 운명으로 고통받는 민중, 광포한 세상에 짓눌려 질식해가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커다란 역사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그 비극을 작품 속에 세밀하게 묘사했다. 《개선문》 또한 마찬가지다.
비극의 역사 현장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고뇌 2차 세계대전 직전의 파리, 주인공 라비크는 나치의 강제수용소를 탈출해서 파리에 불법 입국한 40대 외과 의사다. 그는 옛날 베를린의 유명 종합병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명성을 날렸으나 지금은 파리의 무능한 의사들에게 고용되어 마취된 환자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수술을 해주고 사라지며, 고급 유곽의 창녀들을 검진하는 일을 한다. 라비크를 사모하는 부유한 미국 여성 케이트 헤그시트룀가 찾아오고 그녀를 수술하던 라비크는 헤크시트룀의 몸에 도사린 암을 발견한다. 한편 파리의 다리 위에서 우연히 만난 조앙 마두 또한 라비크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라비크와 그녀는 서로를 상처 주면서 비극적인 사랑을 이어간다. 과거 자신을 고문한 게슈타포 하케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던 라비크는 우연히 만난 그를 살해하는 데 정열을 바치지만 막상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허무의 감정만이 남는다. 한편, 조앙은 동거남의 총을 맞고 라비크의 품에서 죽어가며 전쟁이 선포된다. 유럽에서 피난민의 마지막 안식처였던 프랑스가 전쟁의 암운에 휘말리자, 라비크는 기거하던 앵테르나시오날 호텔의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프랑스 경찰의 트럭을 타고 끌려간다. 트럭을 타고 가면서 바라본 에트왈 광장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불빛 하나 없다. 거대한 개선문의 모습마저 보이지 않는다.
책속에서
[P. 33~34] 그는 눈앞에 있는 여인의 목덜미를 보았다. 양쪽 어깨. 무엇인가 숨을 쉬고 있는 것. 낯선 생명의 한 조각. 그러나 생명임에는 틀림이 없다. 따스함이 있는 것이다. 굳어버린 시체는 아니다. 얼마간 따스함을 주는 것 말고 남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이상 무엇이 있단 말인가?
[P. 60] “신앙이란 사람을 곧잘 광신적으로 만들지. 그러기에 모든 종교는 그렇게도 많은 피를 흘린 거야.” 그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관용이란 회의의 딸이야, 외젠. 망각된 불신의 인간인 내가 외젠에 대해서보다, 신앙을 가진 외젠이 나에 대해서 더욱 공격적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