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하고 싶지 않았어.”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지?
남자는 당황하는 내게서 시선을 떨구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눈과 함께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의 몸에 닿으면 좋은 일이 생겼던 적이 없어. 그러니까 구하지 말아야 했는데.”
말뜻을 알 수 없었다.
이상한 사람한테 도움을 받은 걸까…. 괜히 뒤따라온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너무나 큰 고뇌가 담겨 있었다.
“저기….”
말을 건 순간, 그는 놀란 듯 뒷걸음쳤다.
“날 건드리지 마.”
눈동자가 겁먹은 듯 좌우로 흔들렸다.
“어… 혹시 다치신 건가요?”
나를 구할 때 부상을 입어서 살짝만 건드려도 아픈 건지도 몰랐다.
“이 근처에 병원은 있나요? 전 이 동네는 잘 몰라서…. 앗.”
검색하려고 스마트폰을 꺼냈더니 마침 후코쨩의 몇 번째인지 모를 전화가 오고 있었다. 지금은 전화 받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죄송해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아, 아무것도 아닌 건 전화 얘기―.”
당황하는 나를 보며 그는 냉정함을 되찾았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다친 데는 없고 네가 더 심각한 상황처럼 보여.”
그는 육교 위에 놓인 캐리어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됐어. 일단 올해는 살아남은 거니까.”
그는 육교 난간에 몸을 기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발은 아까보다 약해져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육교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지상 위로 자동차 불빛이 유성처럼 흘러갔다.
이제 그만 가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아까 남자가 했던 말이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일단’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 ‘올해는’이라고 했던 것도 이상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분명 믿기 힘들 거야. 하지만 이미 봐 버렸으니까 말해 줄게.”
설마 오늘 처음 만난 사람한테 고백받는 걸까…?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숨을 멈췄다. 하지만 그런 상상은 남자의 표정을 보자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에 깊은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의 몸에 닿으면 그 사람의 운명이 보였어. 그래서 사람들과 엮이려고 하지 않았어.”
“운명….”
완전히 엉뚱한 얘기였지만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말했다.
“4년 뒤 겨울, 넌 죽게 될 거야.”
“안녕하세요.”
미소로 인사하자 아츠키 씨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 번의 겨울을 보낼 동안 두 번이나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본가에서 돌아오는 길이에요. 아츠키 씨는 외출하시나요?”
“비슷해.”
쌀쌀맞은 태도도 이젠 익숙했다.
“지난번에도 육교 위에서 만났잖아요. 이것도 아츠키 씨가 말하는 운명 때문인가요?”
“그럴 테지.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워.”
아츠키 씨는 나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4년 뒤 겨울에 죽을 거라고 예언했다. 그때는 목숨을 구해 준 것이 고마워서 진지하게 들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나도 믿진 않아요. 도쿄에 온 뒤로 힘든 일도 있었지만, 굳이 따진다면 운이 좋아졌다고 느끼거든요.”
사에키 씨를 떠올리며 말했지만 아츠키는 뚱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히마리 씨는 몇 살이야?”
“얼마 전에 23번째 생일을 맞았어요.”
“나도 비슷해. 그것보단 조금 위지만.”
아츠키 씨는 그렇게 말한 다음 팔짱을 끼었다.
“그래서, 운이 좋아졌다는 건 무슨 뜻이야?”
“뭐, 여러 가지 면에서요. 회사 일도 익숙해졌고, 어느 상황에서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나는 목걸이에 손을 댔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거든요.”
본가에서 화가 났던 것도 사에키 씨 생각만 하면 괜찮아졌다. 아니, 괜찮아지는 수준이 아니라 더 행복해진다.
“안됐지만―.”
아츠키 씨의 목소리가 내 공상을 싹둑 잘랐다.
“운명은 확실히 너에게 죽음을 가져오고 있어. 힘든 일이 겹쳐서 그날을 맞이할 수도 있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찾아올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