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범죄소설의 역사는 뉴게이트 소설의 탄생과 추리소설로의 전환,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등장으로 요약된다. 이 책 영미 범죄소설의 형성과 전개는 장르적 안착에 성공하고 장르적 변용과 장르 내 분화를 이루기 위해 영미 범죄소설이 시도한 계급, 인종/민족, 젠더 이데올로기와의 충돌과 타협, 경합과 협상을 다룬다. 뉴게이트 소설의 전개 과정은 범죄소설의 장르 내 변용과 분화가 언제나 진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뉴게이트 소설은 계급적 야만성과 사법적 잔인성을 고발하던 저항문학에서 대중성의 정점에 선 문화상품으로 전이 혹은 퇴행했다. 추리소설 내에서는 장르적 변용이 활발하게 발생했는데, 특히 젠더적 변용이 빈번하게 목격되었다. 여성 탐정 추리소설은 여성 탐정에 대한 비하적 재현과 결혼과 가정으로의 재배치를 통해 장르적 승인을 추구했다. 그러나 여성에게 탐정의 지위가 부여되기 위해서는 여성 탐정 추리소설에서의 젠더적 타협과 순응을 넘어서는 몇 겹의 장치가 더 필요했다. 노처녀탐정 추리소설은 새롭게 더해진 협상 항목―나이 든 비혼여성이 드러내는 무성성과 그녀가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전통적인 젠더 규범에 대한 지지와 옹호―을 통해 ‘안전한’ 추리소설로 승인되었다. 영미 범죄소설에서 발생한 것은 장르적 변용만은 아니었다. 장르적 탈주와 위반을 통한 탈장르나 반장르의 시도와 장르적 계승과 거부도 함께 존재했다. 콘래드는 장르적 승인을 위한 범죄소설의 협상과 타협에 대한 혐오를 비밀요원을 통해 표출했고, 비밀요원은 장르적 이탈과 해제의 열망으로 가득하고 추리소설 문법에 대한 악의적 훼손으로 점철된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영미 범죄소설 중에서 장르적 자존감이 가장 낮았고, 낮은 자존감은 저열한 방식의 협상과 타협으로 이어졌다. 선정적이고 부도덕한 범죄소설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여성 혐오를 동원했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자본가, 언론, 공권력을 범죄성의 근원으로 규정함에도 불구하고, 처벌은 이들을 벗어나 팜므 파탈을 향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