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들, 그 청춘의 초상 1. 고종의 통역도 맡았던 ‘신여성’, 조선의 앞길에 등불을 켜다 - 미국의 웨슬리안대학에 입학한 28살 김란사 2. 자신에게 엄격했던 반듯한 청년, 미국 최초의 한인촌을 세우다 - 미국에서 공립협회를 창립한 27살 안창호 3. 조선인 1호 볼셰비키 혁명가, 아무르강에 혁명의 꽃으로 지다 - 33살에 처형당한 사회주의자 김알렉산드라 4. 샌프란시스코에서 울린 3발의 총성, 일본의 앞잡이를 처단하다 -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를 저격한 32살 장인환 5. 세 발의 “탕, 탕, 탕!”, 세 번의 “코레아 우라!” - 하얼빈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30살 안중근 6. 이토가 처단되었으니, 을사오적을 처단하리라 - 매국노 이완용을 비수로 찔러 치명상을 입힌 22살 이재명 7. 감시 대상 ‘12310’번 의열단원의 찬란하고 슬픈 독립투쟁 -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한 26살 김익상 8. ‘영웅도 신도 공주도 아니었던’ 10대 독립운동가의 ‘불멸의 순수’ - 독립 만세운동을 하다 옥사한 18살 유관순 9. ‘동대문 철물점 홍길동’, 수백 일경과 벌인 전설의 총격전 -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34살 김상옥 10. 황해도를 뒤흔든 투사, ‘수탈의 첨병’을 응징하다 -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한 34살 나석주 11. ‘대한독립’과 결혼한, 조선이 낳은 ‘혁명 여걸’ - 고문당한 몸을 추슬러 미국으로 유학간 35살 김마리아 12. 일제의 압제와도 싸우고, 참혹한 궁핍과도 싸우다 -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독립운동을 하던 33살 박자혜 13. ‘신일본인’에서 ‘독립투사’로, 짧고 강렬한 반전의 삶 -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진 32살 이봉창 14. ‘‘중국 백만 대군이 못한 것’을 해낸 스물넷 청년의 ‘의거’ - 훙커우 공원 폭탄 의거를 수행한 24살 윤봉길 15. 함정수사에 걸려든 미완의 거사, 상하이 ‘육삼정 의거’ - 주중 일본 공사 암살을 시도했던 37살 백정기 16. 마지막 여름방학, 그리고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 일본 유학 중에 고향에서 여름을 보낸 25살 윤동주
2부. 돌아온 독립운동가들, 그 청춘의 초상 17. 영특한 소년,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주도한 정치가가 되다 -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15살 김규식 18. 26년간 임시정부 이끈 민족주의자의 조국 광복을 위한 풍찬노숙의 역사 -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친 30살 김구 19. 미주 한인사회의 통합을 앞당긴 ‘샌프란시스코’의 총성 - 일본의 앞잡이인 미국인 처단을 시도한 24살 전명운 20. 여성 해방은 경제적 자립에서 시작된다 - 경성에서 여성 직업 교육에 매진한 30대 중반의 차미리사 21. 20대 의열단장, ‘현상금 100만 원’의 사나이가 되다 - 의열단을 조직하고 의열단장이 된 21살 김원봉 22. 단발머리의 ‘모던 걸’, 또는 ‘코레예바’의 사랑과 혁명 - 모스크바에서 대학에 다니던 28살 주세죽 23. ‘파수꾼’으로 임정과 함께한 부부, 분단 조국에서 ‘이산’의 비극까지 - ‘동지 결혼’하여 항저우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20대 연미당과 30대 엄항섭 24. 창공을 날아올라 ‘일왕의 궁궐’ 폭격을 꿈꾸다 - 중국 공군에서 선전 비행을 준비하던 34살 권기옥 25. 권문세가의 담대한 셋째딸, 임정의 밀사로 압록강을 여섯 번 건너다 - 난징에서 임시정부 안살림을 도맡은 35살 정정화 26. 그해 여름, ‘돌베개’를 베겠노라 다짐하다 - 삼천리를 걸어 임정에 합류하고 광복군이 된 27살 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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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청춘의 초상 : 조국의 독립에 바친 뜨거운 젊음, 한 장의 사진이 증언하는 찬란한 그 순간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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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대한독립에 바친 뜨겁고 푸른 생의 한가운데!
유관순 18살, 이재명 22살, 윤봉길 24살, 안중근 30살, 이봉창 34살…
독립운동의 빛나는 순간들, 그 시간 속의 독립운동가들은 2030 청춘이었다!
100년 전에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은 ‘청춘의 초상’이 들려주는 뜨겁고 강렬한 대한의 독립운동 이야기. 우리에게는 반백의 노구와 주름진 얼굴의 낡은 흑백사진 속 얼굴로만 기억되고 있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조국의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아름답고 푸른 청춘의 시절이 있었다. 10대의 똘망똘망한 소년 김규식, 학교를 세우고 학동들을 가르치던 30살의 ‘선생님’ 김구, 이완용을 처단하려 시도한 22살의 이재명, 상하이 의거를 성공시킨 24살의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들의 2030 시절의 한때를 포착한 단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읽는 색다른 근현대사 책.
단 한 번의 시간, 청춘의 시절을 기억하며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산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비로소 ‘그땐 참 젊었었구나’ 하고 느끼는 법이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인생에 한 번은 빛나는 청춘의 시절이 주어진다. 대한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반백의 노구와 주름진 얼굴의 낡은 흑백사진 속 얼굴로만 기억되고 있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조국의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아름답고 푸른 2030의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기억하는 독립운동의 빛나는 순간들, 우리의 심장을 무겁게 강타하는 순간들을 만들어낸 수많은 주역들이 있다.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유관순 열사 같은 유명한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의거나 순국을 했을 때, 몇 살이었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을까? 홍커우 공원 도시락 폭탄 의거를 감행했을 때 윤봉길 의사는 24살이었다. 일왕의 면전에 폭탄을 던졌을 때 이봉창 의사는 32살이었다. 천안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체포 548일 만에 숨졌을 때 유관순 열사는 18살이었다. 매국노 이완용을 습격하여 치명상을 입혔을 때 이재명 의사는 22살이었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을 때 안중근 의사는 30살이었다. 일본군에 징집되었으나 탈출하여 1,178킬로미터를 걸어 광복군에 합류했을 때 장준하 선생은 27살이었다. 일본 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한 것이 부끄러워 시 ‘참회록’을 써내려갔을 때 시인 윤동주는 25살이었다. 『독립운동가, 청춘의 초상』은 이런 이들의 2030 시절, ‘젊은 날의 초상’을 중심으로 다시 읽는 독립운동사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이들이 찍힌 연대순으로 구성되었으며, ‘광복’을 기준으로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광복 전에 순국한 독립운동가들로,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16명을 다루고 있다. 2부는 살아서 광복을 맞이한 독립운동가들로, 해방과 분단과 한국전쟁까지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겪은 10명의 삶을 다루고 있다.
고종의 통역을 맡았던 ‘1세대 신여성’, 학동들을 가르치던 ‘선생님’ 김구
이야기는 ‘김란사’라는 이름도 생소한 여성의 삶의 궤적과 청춘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1900년에 미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간 당찬 엘리트이자 ‘1세대 신여성’으로, 영어가 유창하여 고종의 통역까지 맡았던 김란사가 남긴 사진은 단 한 장, 무려 125년 전인 1900년에 미국 대학에 당당히 입학하던 28살 시절의 흑백사진이다.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사진과 더불어 ‘조선의 앞날에 등불을 켜겠다’고 분투하다 안타깝게 스러진 삶을 스케치한다. 뒤를 잇는 사람은 도산 안창호이다. 교육학을 공부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24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불과 3년 뒤인 27살에 공립협회를 만들고, 최초의 미주 한인촌을 건설하던 열정 가득한 시절의 얼굴을 만나게 된다. 그 밖에도 ‘한국인 볼셰비키 1호’이자 33살에 세상을 떠난 김알렉산드리아의 스무 살 결혼사진, 일본의 앞잡이 미국인을 처단한 장인환의 의거 1년 전 모습, 이완용을 습격한 이재명의 세련된 하이칼라 슈트 차림의 모습, 그리고 감시 대상 ‘12310’번 의열단원의 감시 대상 카드를 통해 날카로운 눈매가 돋보이는 김익상의 옆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2부에서는 해방을 맞이한 독립운동가들의 젊은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임정 부주석을 지냈으나 ‘이승만의 정적’으로 오랫동안 잊혔던 김규식의 영특한 양갓집 도령 같은 똘망똘망한 소년 시절의 모습, 임정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주석 김구가 ‘선생님’으로 학동들을 가르치던 30살 시절, 여성 직업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차미리사의 화려한 양장 차림의 30대 시절 모습 등은, 독립운동가이기에 앞서 치열하게 부대끼며 근대를 살아간 젊은이들의 다채로운 초상으로 다가온다. ‘깊게 팬 주름살과 반백’이 되기 20년 전, 30년 전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그들의 고단하고 뜨거웠던 삶의 여정을 알고 있고, 그들이 한 번뿐인 청춘을 바친 대가로 간절히 꿈꾸었던 ‘미래’를 누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 사진으로 되묻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독립운동가, 청춘의 초상』에 등장하는 독립운동가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던 독립투사들도, 일제에 빌붙어 오욕의 삶을 살던 친일파 1세대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제 와서 100년 전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서 다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 H. 카의 명언을 생각한다. 부끄러운 역사를 직시하고, 그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우리 세대의 책무이고, 우리에게 ‘현재’를 선물한 지난 세대의 고단하고 찬란한 역사를 기억하는 것 또한 우리 세대의 책무다. 『독립운동가, 청춘의 초상』은 100년 전 독립투사들의 ‘젊은 날의 초상’을 통해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날카롭게 되묻는 역사책이다.
책속에서
[P.50] 일제는 두 사람이 법정 최고형을 받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아일랜드계 미국인 변호사 세 사람의 적극적인 변호에 힘입어 전명운은 1908년 6월 27일 증거 불충분으로 가석방되었다. 장인환은 그해 12월 23일 사형을 면하고 ‘애국적 환상에 의한 2급 살인죄(Insane Delusion)’로 25년 금고형을 받아 샌 쿠엔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배심원들도 이 거사가 애국적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걸 조금이나마 참작한 듯하다. 먹고 살기 위해 이국땅으로 이민 온 무명의 젊은이는 조국을 위한 의거의 결과 11년 동안 징역을 살아야 했다.
[P. 71] 인력거를 탄 이완용이 그의 앞을 지나갈 때 이재명은 비수를 들고 이완용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공격은 주효하여 인력거 주변은 피가 흥건하게 흘렀다. 목적을 이루었다고 여긴 이재명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순사의 군도에 왼쪽 넓적다리를 찔려 중상을 입고 잡혔다. 이때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유유자적하게 운집한 구경꾼들에게 담배를 얻어 태웠다고 한다. 그를 가로막은 인력거꾼은 절명했으며, 이완용은 갈비뼈 사이로 폐를 찔리는 등 치명상을 입었으나 대한의원(현 서울대학교병원의 전신)으로 후송돼 일본인 의사들의 외과 수술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
[P. 129] 1921년 4월, 김마리아는 사가(私家)에서 요양하려 한다며 성북동의 농가에 월세방을 얻었다. 6월 20일에 징역 3년 형이 확정되었고, 아흐레 뒤에 김마리아는 농가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퇴원하여 인력거에 오른 그는 다음 날 새벽 인천으로 갔고 7월 초에 상하이 망명자들의 가족과 함께 밀항선에 올라 7월 21일에야 산둥반도 웨이하이(威海) 항에 닿을 수 있었다. 일제의 눈을 피해 극비리에 진행된 이 망명은 4,000원의 거금을 망명과 정착 비용으로 지원한 선교사 맥큔(G.S. McCune)과 임시정부 요원 윤응념의 도움으로 성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