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기의 본명은 "임양묵"임 표제관련정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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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은폐된 서술자 -소설이 영혼이 되는 소설
2부 소설이 영혼이 되는 소설 -어떻게, 死地에서 소설이 숨을 쉬는가?
3부 “동학으로 끝냈어요.”라는 한 말씀 -소설 『토지』에 관한 짧은 추억
[跋文] 안삼환 한국문학사에 새로이 등장한 ‘이 땅의 자주적’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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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이 땅의 자주적 비평”을 통해 읽다
『유역문예론』, 『문학과 예술의 다시 개벽』 등을 통해 “이 땅의 자주적 비평”을 이어온 임우기 평론가의 신간『은폐된 서술자』가 출간되었다. 오랫동안 우리 한국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독창적 문예비평을 선보여온 저자는 ‘창조적 유기체론’을 특징으로 하는 ‘유역문예론’을 발표하며 기존의 한국 문예이론이 짚어내지 못한 서술 속 숨겨진 화자 ‘은폐된 서술자’ 개념을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문예비평의 저변을 넓힌 유례없는 창조적 시도는 2023년 김준오시학상 수상이라는 성과를 거두며 그 가능성을 확립하기도 했다. 신간 『은폐된 서술자』는 한국문학사상 역사적 사건인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있어,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등 한강 소설을 ‘시적 문체’나 역사에 기반한 소설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는 기존 비평을 탈피한, ‘창조적 유기체’로서 ‘화생하는’ ‘생령체’로서의 소설이라 이야기한다. 이렇듯 서구적 서술이론으로 해석할 수 없는 한강 소설의 “근원적 기운”을 감지한 저자는 한강 소설 속 유역문예론이 중시하는 ‘진실(誠實, 至誠, 修心正氣)’의 관점을 발견하며 그의 소설은 “‘이 땅의 산 혼(生魂, 地靈)’을 지극정성을 다하여 체득”한 탁월한 작품이라 말한다. 더불어 또 하나의 한국문학사상 기념비적 소설인 대하소설 『토지』의 완간 30주년을 맞아 당시 책임편집인 및 발간인으로서의 소회를 밝히며 “우리 겨레가 자부하고 자랑하는 대하소설”이 지닌 ‘이 땅의 혼’의 정수와 문학적 위대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렇듯, 한국문학에 있어 기념비적인 소설들을 저자는 “한국문학사의 절묘한 시점에” 고유한 “이 땅의 자주적 비평”을 선보인다.
“소설이 영혼이 되는 소설” 소설 속 화생化生하는 ‘은폐된 서술자’에 대하여
저자는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문장 혹은 문장부호 어느 하나라도 그냥 간과할 수 없이 작가의 섬세한 감성과 이성의 한계 너머를 고뇌하는 철저한 정신을 접”한다고 말한다. 이는 비단 한강의 소설이 지닌 ‘시적 문체’나 산문적 표현에 국한한 해석이 아닌, 행간과 문장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오묘한 기운과 작중 드러나지 않은 화자인 ‘은폐된 서술자’의 존재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이성의 한계를 넘은 “‘알 수 없음[不然]’의 영역이 소설 작품 바탕에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이는 지금껏 유역문예론을 통해 이야기해온 주요 개념으로, 저자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 등의 소설에서 이를 포착해낸다. 저자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장 「결정結晶」의 서술자가 ‘작가 한강’ 스스로인 것에 집중하는데, 「결정結晶」 속 서술자 ‘나’는 “실존 인물인 일반인 한강과도 서로 다른 ‘작품 안의 서술자인 작가 한강’”이라 말하며 소설 속 ‘작가 한강’이 서술하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해석하며 “소설의 맨 앞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중인 ‘소설 밖의 작가 한강’이 깨친 ‘바로 지금’이라는 조화(無爲而化)의 시간이 소설 안 서사의 시간과 서로 통한다”라는 것을 밝힌다. 이렇듯 저자는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소설 속 화자 ‘경하’가 아닌, 드러나지 않은 은미한 기운의 ‘은폐된 서술자’의 존재를 한강의 소설에서 중요한 지점으로 짚어낸다.
“동학으로 끝냈어요.”라는 한 말씀 대하소설 『토지』에 서린 웅숭깊은 “이 땅의 혼”
대하소설 『토지』의 완간 30주년에 더불어 저자는 당시 책임편집인이자 발간인으로서 소회를 밝히며 해설을 시작한다. 그중 박경리 작가가 모든 집필을 마친 뒤 답한 짧은 소감을 이야기하는데, “동학으로 끝냈어요.”라는 짧은 문장이다. 이는 『토지』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점인 ‘겨레의 혼’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서구 문화와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와 한국문학이 향해야 할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토지』는 그 서장인 「序」부터 ‘굿놀이’를 즐기는 마을 사람들의 풍경을 그리는데, 그러던 중 슬며시 불어온 ‘바람’이 “자연과 마을, 고샅과 주민들이 어울려 엮여내는 인간 삶의 죽음과 기억들을 일깨”운다고 말하며 “‘바람’이 서술자 성격과 그 마음속을 대신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때 ‘바람’은 단순히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덧없음, 무상함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저자는 그러한 단순한 해석을 넘어 ‘바람’이 “『토지』를 밑받침하는 주제의식 또는 세계관의 한 극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토지』가 천지자연의 조화造化의 이치와 그 기운의 운행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문학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유역문예론의 중요 지점인 ‘유기체적 소설 형식’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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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성실한 작가 한강이 쓴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2021)를 읽은 때가 2024년 1월 초순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다읽고 나니 경이로운 감동, 숙연하고 해맑은 기운이 한동안 전해오던 기억이 난다. 다소 객쩍은 말이지만, 이 작품을 읽고 곧바로 주위 지인들한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예견하고 확언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작가 한강은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졸저 『문학과 예술의 다시 개벽』(2024.5.) 에서 다룬 바는 있지만, 비평문집 전체가 기왕의 『유역문예론流域 文藝論』(2022)의 개요와 시론試論을 기본으로 요결要訣 형식을 취하느라 한강의 이 걸작을 본격적으로 비평하기는 지면이 적절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마침 전라남도 장흥에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2014)에 대해 문학강연 청탁이 왔고(2024. 11. 29. 장흥 천도교포교당), 첫 강연을 마치자 연말경 재차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강연 요청이 이어졌다. 존경하는 안삼환 선생님과 벗님들께서 한강의 예의 두 장편에 대한 나의 비평을 권유하던 터라, 이 두번째 강연문(2025. 2. 11. 장흥 청소년수련관)을 겸하여 유역문예론 (‘다시 개벽’의 문예론)의 시각에서 작품 비평을 쓰게 되었다. 『문학과 예술의 다시 개벽』의 부제가 ‘진실한 문예 작품은 무엇을 말함인가’인 만큼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는 유역문예론이 중시하는 진실(誠實, 至誠, 修心正氣)의 관점에서 단연코 문학적 전범典範이라 할 수 있다. ‘참나[眞我] 찾기’와 더불어 고난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민심과 ‘이 땅의 산 혼(生魂, 地靈)’을 지극정성(至誠)을 다하여 체득하며 자기 고유의 문기文氣 속에서 실로 탁월하게 보여준 작품들. 이 진실한 작가 혼 앞에서 어찌 숙연하고 크게 감동하지 않으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지닌 문학적, 문학사적 위업은 앞으로 그 진가가 조금씩 드러나리라고 본다. 그중에서도, 이 나라 문학예술계의 오랜 고질인 사대성事大性을 자성自省하고 ‘자기 혼’, ‘이 땅의 혼’의 문예 창작을 찾아가는 귀한 계기가 된 점이 고맙고 높이 평가된다. ‘은폐된 서술자’는 ‘참나’와 이 땅의 어머님들께서 올리는 치성(致誠, 至誠) 속에 비친 귀신鬼神의 존재, 그리고 수심정기修心正氣 가 저 스스로 화생化生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 땅에서 민심과 친숙한 귀신의 존재처럼 천변만화(多)하고도 근원적(一)인 ‘은 폐된 서술자’의 존재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을 통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길 바란다. —저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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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가 임우기 선생의 이 책은 우선 저자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반기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에 의하면, “‘이 땅의 혼’이 서린 한강의 문학 작품에 노벨문학상이 수여된 것”은 “서 구주의에 맹목이던 이 땅의 현대문학이 서구문학과의 종속관계에서 벗어나 마침내 주체적 대등 관계로 전환될 수 있는 계기로서 한국문학사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임우기 선생은 “이 땅의 문인 지식인 일반이 빠져 있는 고질적인 사대의식과 식민지적 근대 문학 교육 수준을 못 벗어나는 외향적 제도권 교육”의 악영향을 지적하면서, ‘이 땅의 혼’을 중시하는 자신의 개벽적 비평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 ‘이 땅의 혼’을 소중히 여기는 비평가” 임우기 선생은 르네 웰렉이나 루카치나 벤야민 등을 ’받아쓰기‘하는 것보다는 우리 문학이 ‘이 땅의 혼’, 특히,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 무巫’와 ‘동학’에 관심을 지닐 것을 촉구하고 있다. (……) 내 생각에, 임우기 선생의 ‘유역문예론’의 한 개념인 ‘은폐된 서술자’는 서구적 ‘서술이론’의 한 개념으로 대체될 수 없는, 우리의 전통 무巫와 천부경, 화랑도와 풍류도, 원효의 일심一心 사상과 수운 및 해월의 동학을 아우르는 ‘이 땅의 혼’을 품은 지심(至心 또는 誠心)의 작가 자신, 또는 ‘작품 안팎을 두루 통하는 서술자’인 듯하다. 이런 ‘은폐된 서술자’는 절차탁마 속에서 나타나는 ‘근원적(造化의) 기운과 능히 통하는 서술자’라고도 이해된다. 이런 개념이 하필 지금 이 시대에 뒤늦게 등장한 이유는 우리나라가 조선 순조조 이래, 즉 1800년 이래 서구 문명의 수용을 거부하다가 결국 국체와 고유문화를 탈취당했기 때문에, 문학도 서구 문학이론에 자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종속되어 오늘에까지 이른 탓이라 하겠다. 만약, 그런 비극을 겪지 않고 우리가 서구문학을 자주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더라면, 임우기 선생의 이 이론 비슷한 것이 이미 100년 전에, 늦어도 50년 전쯤에는 나왔을지도 모른다. 위에서 나는 임우기 비평가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에서 자신의 이론을 가장 이상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최선의 작품을 만난 것 같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작가 한강이야말로 자신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가장 잘 분석·해석할 수 있는 비평가를 때마침 잘 만났다고 해야 옳을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임우기 선생 아닌 다른 어느 비평가가 그녀의 이 작품을 ‘시적 산문’이라고 한다든가, 무슨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해석한다면, 온 심혼을 바쳐, 정말 지심至心을 다하여 폭력의 희생자들과 함께 괴로워하며 슬피 울다가, 아니, 이 작품 위에 엎어져 거의 죽었다가 간신히 되살아난 작가 한강은 자신의 이 작품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극심한 아쉬움에 시달릴 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결국 나는 비평가 임우기 선생과 작가 한강이 때마침—한국문학사의 절묘한 시점에—필연적으로 만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이 책에서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임우기 선생의 분석과 해석에서 기쁜 감동을 받았다. 왜냐하면, 여기서 비로소 나는 ‘이 땅의 혼’이 깃든 작품과 그 작품을 분석하는 ‘이 땅의 자주적’ 비평을 함께 만났기 때문이다. 임우기 선생의 지금까지의 문학비평가로서의 모색에 경의를 표하며, 한국문학계가 부디 이 새 이론에 대해 올바른 평가, 우정 있는 반향, 또는 적절한 보정補正을 내어놓기를 바란다. —안삼환(작가·서울대 독문과 명예교수), 跋文 「한국문학사에 새로이 등장한 ‘이 땅의 자주적’ 비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