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나는 여시였다 : 권영임 장편소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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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183483
811.33 -25-473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0003183484
811.33 -25-473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환생과 인연을 잇는 감동의 서사 ― 이런 인연이라면 억만금을 주고라도 사고 싶다!
권영임 작가의 신작 『전생에 나는 여시였다』가 《도서출판 바람꽃》에서 출간되어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삶과 죽음, 전생과 현생을 넘나드는 이야기이며, 환생과 인연을 엮어 가는 감동적인 서사를 그린 작품이다. 인연이 운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작가는 개인적인 경험과 철학을 담아 한층 더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작가는 여우, 고양이,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통해 인연과 운명의 의미를 조명한다. 동물과 인간이 교감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깊은 연대감을 섬세한 문체로 풀어내어 독자들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소설의 주요 장면에서는 여우 호가 법정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주인공 소녀인 아리와의 관계를 통해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또한, 인간과 동물이 얽힌 인연 속에서 각자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전생에 나는 여시였다』는 단순한 환생 이야기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는 운명적인 연결 고리이며, 이는 삶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환생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삶과 인연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독자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주변의 모든 이들이 어떤 인연으로 자신에게 와있는지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 우리가 맺는 관계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될 게 자명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자 한다.
책을 펼친 순간부터 독자는 이미 이야기에 함께 엮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윤회론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감동적 서사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관계와 사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은유적 화법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는 독자에게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사유할 거리를 제공하며, 삶과 인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1. 여우의 시선으로 본 인간 세계
주인공인 여우 ‘호(狐)’는 헛간에 몸을 숨기던 중, 건넛방에서 티격태격하는 자매의 대화를 듣게 된다. 특히 동생인 ‘백여시’와 ‘송여시’라는 이름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인간들의 대화 속에서 자신이 여우로 불리는 것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호의 모습은 장차 얘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2. 여우 호와 소녀 아리의 특별한 만남
여우 호는 우연히 인간 소녀 아리를 만나게 된다. 겁도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아리를 경계하지만, 그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긴장을 푼다. “어디 아프니?”라는 걱정 어린 질문을 받은 호는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리는 호를 처음으로 쓰다듬으며 교감을 나누고, 호는 인간의 손길을 처음으로 받아들인다. 여우와 인간 사이의 정서적 교감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장면이다.
3. 운명을 넘어선 성장과 깨달음
이야기 후반부에서는 인간 청년이 출가하여 ‘법정’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자신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과 돌려줄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여우 호에게도 이름을 묻지만, 호는 인간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장면은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깨달음을 얻는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감성적인 문체와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은 남녀노소 누구나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며, 권영임 작가가 전하는 깊은 공감과 여운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에서
[P. 29] 소녀는 겁도 없이 가만히 서서 나를 응시했다. 나도 뒷다리 사이로 꼬리를 말고 엉덩이를 최대한 뒤로 뺀 채 그 애의 눈을 잔뜩 노려보았다. 여차하면 물어뜯을 계획이었다. 일고여덟 살이나 됐을까? 세로로 길게 찢어진 내 동공과 아이의 동그란 눈동자 사이로 희붐한 새벽 기운이 서렸다. “어디 아프니?” 순간, 그 애의 진지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 사이가 아주 싱거워지고 말았다. 아프냐고? 어디 다친 데라도 있어서 자기 집 헛간으로 몸을 숨긴 줄 알았던 모양이다. 간밤에 멀리, 개마고원 쪽으로 돌아가셨을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아픈 곳은 없어도 나는 아프다. “알았어. 아프지 않으면 됐어.”
[P. 41~42] 우리 동물들이나 저 인간들이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좋아하고 탐닉하는 것들 때문에 끝내 병을 얻고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들이 자신을 해치는 경우는 아주 드문 법이다. 곰만 해도 그렇다. 곰 아저씨는 꿀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 그래서 인가까지 거침없이 내려가 꿀을 훔치다가 죽임을 당하고 만다. 우리 옆 동네 곰 아저씨가 작년에 당한 일이어서 잘 안다. 꿀에 목숨을 걸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모든 집착의 뿌리는 과욕이고, 과욕은 죽음의 자양분이다. 이건 내가 엄마에게 들었던 진리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