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42] 그림이라는 것, 창작이라는 건 우리가 흔히 말하듯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일입니다. 그런데 막상 어떤 장소에 가서 낯설게 보려고 해도 그렇게 잘 되지가 않아요. 어떻게 하면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을까? 안 돼요.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그리는 거죠. 단, 뭘 그릴 것인가가 아니라 뭘 빼고 뭘 덜어내야 하는지 생각을 많이 하면서 그립니다. 최대한 단순하게 말이죠. 지나치게 복잡하고 꼼꼼하게 그리기보다는 많이 덜어내고 핵심만 잡아 오자, 이런 마음으로 가도 사실은 잘 안되거든요. (생략) 저는 풍경을 스케 치해오면 항상 구석에 툭 던져놔요. 그러다가 6개월이고 1년이고 시 간이 지난 뒤에 어느 날 문득 스케치북을 넘기다 보면 갑자기 탁 오는게 있거든요. 뭔가 이야기가 만들어져요. 그때, 바로 그때 작업을 하면 좋은 그림이 나오는 거예요
[P. 46] 통찰하고 관조하고 사색하면서 직관적으로 온 걸 지속시킬 수 있 는 시간,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림을 그린다는 건 해 석한다는 거거든요. 정말 멋진 풍경을 보러 가면 와! 멋있다! 누구든 다 느끼죠. 그런데 일상적이고 소소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무엇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뽑아내려면 오랫동안 들여다봐야 하고 그걸 향한 애정, 집착 같은 게 있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