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람들의 일상사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185613
951 -25-50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0003185614
951 -25-50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신선하고 흥미로운 ‘밑으로부터의 역사’ 또 다른 ‘역사하기’를 위한 마중물 9편
역사를 읽는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서민이나 민중은 역사를 ‘갖지’ 못했다. 소수의 권력자와 지식 엘리트들만이 ‘역사’를 남길 수 있었을 따름이다. 게다가 우리는 국가, 위인, 자본 등 거시적 구조로 대부분의 역사를 읽어냈기 때문에 개인과 그 삶에 대해, 그리고 시대별로 주어진 환경에 따라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양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1990년대 한국에 소개된 일상사 연구는, 일상 탐구를 통해 역사학이 처한 현재의 미로를 헤쳐 나가는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민중사’를 포괄 또는 뛰어넘는 방법론 물론 20세기 초반 프랑스와 독일에서 시작된 일상사 연구의 개념이 확립된 것은 아니다. 한국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일치된 의견이 있지는 않다. 그러기에 근대에 의해 파괴되는 일상(르페브르), 자본에 대항하는 일상(하루투니언), 생활세계로서의 일상(하버마스) 등 다양한 연구가 ‘일상사’의 이름으로 이뤄졌고 국내에서도 ‘민중사’, ‘구술사’, ‘생애사’ 등 다양한 명칭과 방법론이 등장했다. 이 책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일상’을 하나의 영역으로 보는 것은 오해라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일상’을 밑으로부터 시각의 하나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작은 사람들이 아래로부터 ‘자기 삶의 조건에 규정되면서도 그 조건을 전유하는 실천’으로서의 ‘일상’을 강조하는 것이다.
일상 속 사건으로 일상 다시 보기 학문사적 의미를 떠나 책에 실린 글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18세기 영월 신씨가 여성의 청원과 소송을 분석한 김경숙은 남편이 부재한 상황에서 도망 노비 추쇄를 위해 소송은 물론 국왕에게 상언‧격쟁도 불사하는 적극적 법 활동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삶은 한 방편으로 이뤄진 불온인물에 대한 투서라는 ‘동조’(정병욱), 1950~60년대 ‘풍기문란’의 내용과 이에 대한 여학생들의 저항(소현숙), 1970년대 전북 임실의 한 마을에 만연했던 폭력의 실태(안승택) 등 ‘역사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흥미로운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이 밖에 정치종교로서의 새마을 운동(이상록), 부산 형제복지원의 불운한 아이들(주윤정), 교토 민족학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타가키 류타) 등도 놓치기 아까운 글들이다.
일상사 연구자들의 성과를 한자리에 이 책에 실린 9편의 글은 2019년 9월부터 2024년 7월까지 고려대와 독일 튀빙겐대학교, 영국의 에딘버러대학교에서 열렸던 다섯 차례의 일상사 워크숍에서 발표된 논문을 골라 엮은 것이다. 이보다 앞서 일상사 연구의 개척자인 독일 알프 뤼트케 교수의 《일상사란 무엇인가》(2002)가 번역, 출간되었고, 젊은 국내 학자들이 중심이 된 《일상사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2006)가 출간되어 한국에서의 일상사 연구를 위한 물꼬를 튼 바 있다. 이 책은 그간의 연구 공백을 메우며 현재 국내 일상사 연구의 성과를 부분적으로나마 한자리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귀한 의미가 있다.
책속에서
[P.20] 1556년 대구의 한 양반가에서 가출 사건이 일어났다. 주인공은 유유로 백씨 성을 가진 아내가 있었으며,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유예원柳禮源 으로 역시 생존해 있었다.…유유에게는 형인 치治 와 아우 연淵이 있었는데 치는 이미 죽어 유유가 사실상의 장남이었다. 이런 집안에서 가출이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P. 41] 16세기 영남 인물인 권응인은 채응규가 대구 근방 경산의 관속으로 유유의 여종과 혼인했다고 기록하였다. 그가 유유의 여종과 혼인한 이력이 있다면 유유의 용모나 집안 사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권응인은 채응규가 다른 지방을 떠돌다가 유유를 만나 함께 지냈으며, 이로 인해 유유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으로 보았다.
[P. 39] 17세기 이후 딸은 차별받고 아들 가운데 장남이 우대받는 방식으로 상속 관행이 바뀌었다. 이때 아들이 없는 집에서는 양자를 들였다. 총부들도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입양에 동의하였다.…이후로 조선 사회는 가계 계승과 재산 상속을 두고 장남과 차남, 형수와 시동생이 갈등하거나 사위가 처가 재산에 관심을 표명하는 일도 사라져갔다. 유연 사건은 16세기 일상 공간에서 벌어진 가족 갈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