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6] 평범한 간호사였던 저는 치매 어르신들을 만나며 삶의 소명을 발견했습니다. 어르신들과 함께한 10년이라는 시간은 제게 진정한 돌봄의 의미를 가르쳐주었고, 저는 그분들의 삶과 기억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짧게 느껴질지도 모를 10년이지만, 저에겐 추억과 감사로 가득하여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삶을 치매 어르신들과 함께하겠다는 다짐은 제 삶의 이유이자, 제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입니다. 제 이름 서은경은 은혜 은恩, 공경할 경敬 자를 씁니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했던 제가 지금 치매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이름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블로그에서 제 이름으로 삼행시를 만들며 제 자신에게 다짐하는 문장을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P. 38] 원장님이 치매 어르신을 대하는 이런 방식들 덕분에, 오히려 나는 치매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정부에서 진행하는 많은 곳의 다양한 치매 전문교육에 참여했다. 내가 교육을 듣고 공부하면 할수록 어르신 케어에 관한 원장님과의 마찰이 계속되었다. 요양원에서 어르신들 생신 파티가 진행되던 날이었다. 모두 흥이 오른 채 요양보호사님들과 어르신들의 노래가 이어지고, 마지막 마이크가 내게 전달되었다. “어르신들, 제가 누군지 아시죠?”라는 내 질문에 어르신들은 하나둘 대답하시기 시작했다. “간호 부장”, “우리 요양원에서 제일 바쁜 사람”, “서 부장”, “간호 대빵” 등등. 그러다 내 귀에 그대로 꽂힌 어르신 한 분의 대답, “언제나 휙휙~ 지나가버리는 선생님.” 순간 나는 멈칫했다. 행사가 끝나고 나는 어르신께 물었다. “어르신, 아까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매번 무슨 얘기를 좀 하려고 하면 바쁘니 그냥 휙 하고 지나가서 말을 할 수가 없었어”라는 어르신의 대답에 순간 울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