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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벽화 13/유월의 번역 14/상담사 15/나르시시스트 16/품사들 18/공항 19/모판 연구소 20/파피루스 21/유채꽃 사회 22/메멘토 모리 24/헤드라인 25/백화점 26/화병 27/가족 28

제2부
핸드폰 31/바느질 32/모피 찻잔 33/메타세쿼이아 34/훌라후프 36/풍란 37/면장갑 38/계단 39/엄마 이발관 40/오늘의 시험 문제 42/코코넛 마중물 43/장미꽃 44/연못 45/산수유 46

제3부
눈 내린 후 49/천둥 번개 50/꽃양귀비 51/귀가 52/노천극장 53/한 여자의 방 54/거울 앞에서 55/구름의 오후 56/겨울비 57/미용실에서 58/서재 59/트럼펫 연주 60/대나무의 통증 61/저녁노을 62

제4부
눈동자 일러스트 65/AI 연인 66/스테가노그래피 67/엑스터시 68/코로나바이러스 70/해 71/코스모스에 부쳐 72/푸른 통역사들 73/잡곡을 씻으며 74/오르간 76/책 77/문구점에서 78/손가락 79/그대에게 80/등대 81/꽃의 내력 82

제5부
겨울나무 85/우체통 86/후렴부 87/어떤 위력 88/고속도로 89/서표 90/강수진 91/설치미술 1 92/설치미술 2 93/첼로 94/수목장 95/정크미술 96/일출 97/목련 98

해설 신상조(문학평론가)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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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가 일러스트에게 : 김하정 시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186458 811.15 -25-630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0003186459 811.15 -25-630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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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파피루스와 상상하는 감각에게

202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하정 시인의 첫 시집 『파피루스가 일러스트에게』가 가히 시인선 008로 출간되었다. 김하정 시인에게 글을 쓰는 일이란 만물이 만들어내는 기척들을 받아쓰는 행위이다. 또한 아름다움 이면에 도사린 쓰라림을 느끼는 감각이자, 고통이란 이빨에 기꺼이 목덜미를 내어놓는 자발적 무력함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김하정 시인에게 계속해서 시 쓰기를 강제하는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세계와 자기를 확인하려는 내면적 의지의 표현이고 타자를 향한 말 건넴이다. 김하정의 시에서 말 건넴은 은유적 상상력의 소산이자,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세계의 주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김하정 시인은 진지한 고민과 성찰 없이 현실적 목표만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이 문학적 미의식과 관련한 의미 산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해설 엿보기]

문학은 “숨은 실제를 찾아가는 수수께끼와 같은 과정이거나, 언표된 것, 언명된 것을 넘어서는 언어의 바깥”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하정의 시조가 암시적 은유로 풍부하다는 것은 그의 문학이 현실과 상상을 한데 이어 현실을 벗어남으로써 실제적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에 능함을 보여준다. “논두렁에 작업용 면장갑이 버려져 있다//해종일 내린 비로 온몸이 젖어 있어도//주인의 따스한 지문을 꽉 움켜쥐고 있다//혹여 지나가는 발길에 차일까 봐//한 귀퉁이 모로 누워 하늘을 보고 있다//쓸쓸히 잠을 청한다, 노숙의 밤이 길다”란 「면장갑」은 논두렁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사물에 농민의 노동과 노숙자의 비애를 한꺼번에 겹쳐놓는다. 앰프슨(W. Empson)이 모호성을 시적 가치로 내세운 것은 시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다의성을 존중해서다. 시어는 본질적으로 가능한 많은 느낌과 의미를 환기하는 함축성을 지향한다. 시에서의 ‘면장갑’이 노동의 도구로서는 1:1의 지시적 언어라면 내장된 느낌과 의미에서는 다의적이다. 마찬가지로 언어의 다의성이 더욱 풍요롭게 확장되고 있는 「파피루스」를 읽어보자.

바람의 손 부르트도록 역사를 새겨왔다

쉽게 사위어 갈 시간들 끌어모아

수없는 자맥질 속으로 문자 향을 담았다

우거진 늪 속에 구름 피륙 펼치면

첨필을 입에 물고 날아오는 참새들

발자국 다 옮겨놓고 물 한 모금 들이켠다
― 「파피루스」 전문

파피루스(papyrus)는 종이인 paper의 어원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갈대과의 식물 줄기를 압착하고 이를 얇게 발라내어 종이의 역할을 하도록 만든 고대의 기록 매체다. 사위어 가는 시간 속에서 파피루스에 손이 부르트도록 역사를 기록한 주체는 바람이다. 늪에 비친 구름은 피륙이 되고, 참새들은 첨필을 물고 온 후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랜다. 첨필(尖筆)은 점토나 왁스판 위에 글자를 쓸 수 있도록 고안된 딱딱한 침 모양의 필기구다. 첨필로 대자연에 아름다운 문양을 새길 주체는 “잡지도 가두지도 못할/시간”(「구름의 오후」)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파피루스가 천지의 창조주와 함께 태초부터 존재하는 자연 즉, 인간 문명의 바깥에 존재하면서 시인이 그리고 바라는 자연의 근원적 표상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작동하는 시인의 의식 활동에는 은유적 상상으로 풍성하다.
“빗줄기 방아쇠 천지에 쏘아대면/하늘엔 먹구름도 뒤엉켜 달아나고/삼팔선 가로지르며/떠도는 피난민들”(「천둥 번개」)이라거나, “찬바람이 굴뚝 연기에 손을 쬐고”(「귀가」) “맥박이 뛰는 곳마다/폭죽처럼 꽃은 피”(「꽃양귀비」)고 있다는 데서 드러나듯, 김하정 시조의 대부분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미학적으로 예찬하기보다 자연의 빛을 마음껏 향유하는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 신상조(문학평론가)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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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바른 곳으로 나와 앉은 할머니들
담벼락에 무채색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 손에 지팡이를 든
빛바랜 점묘들

주름을 말리느라 햇살들 분주하고
희미한 배경색으로 기억들이 다가오면
한때는 꽃이었던 시절
대낮처럼 환하네

허공을 응시하는 뜨거운 눈빛이여
수없이 그리고 색칠하고 싶은 그 자리
지금은 여백 속으로
새들이 날고 있다
― 「벽화」 전문
녹음을 번역하러 수풀 속으로 들어간다
우거진 낱말들이 열거된 그 속에는
자연이 생산해 내는
수많은 문장이 있다

잎들의 대화를 귀 열고 들으면
갈피를 넘길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들
속마음 열어 보이듯
향기를 내뿜는다

부리로 숲의 자간을 쪼아대는 새소리
우듬지를 교열하는 바람 사이로 어느새
원본을 뒤적이고 있는
태양의 손도 보인다
― 「유월의 번역」 전문
1.
성곽을 지키고 있는 제복 입은 기사가
목각 인형처럼 고개를 숙이지만
방향을 가리킬 때는
날렵한 선이 된다

2.
층층마다 진열된 욕망의 소비재들
냉정한 핸드백들이 제아무리 다짐해도
결국엔 모래성처럼
지폐들은 빠져나간다

3.
첫 출근 했다는 신입사원 AI 로봇
눈부신 조명만큼 상냥한 매너로
상품을 판독하면서
앞장서 걸어간다
― 「
백화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