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암암리에 여럿의 나를 옮겨다니는 동안 貴玉/ 모욕/ 낚시의 명수/ 누락의 발견/ 패닉/ 따뜻하고 무겁게/ 소녀일 적에,/ 인비저블/ 왓추어네임?/ 분홍꽃댕강/ 네, 대답하면 세상이 안심한다/ 반향/ 참을 수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미래는, 내가 이름 붙여준 나의 골든레트리버
2부 벽 중독자 지인들/ 바람과 함께/ 균열은, 또다른 길이다/ 사람이 서툴러 사람을 떠돌고 있다/ 집이 날아갔다는 말을 들었다/ 명분/ 타임 리프/ 요요/ 집밥/ 내상/ 클레임/ 경영 철학/ 계승자/ 낙타
3부 삶을 연기할 땐 살아 있는 척 공들/ 드라마 폐인/ 안녕, 하나코 언니/ 프로와 아마의, 거리/ 이건 너무하잖아/ Dear Ms. Dike/ 수완/ 다짜고짜 지인/ 미필적 고의/ 미안, 미안…… ^^/ 불우한 잠/ 밧줄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해/ 비빔밥/ 리프레시
4부 블랙유머의 대가들 유머/ 법정에 가요, 쇼핑하러/ Pearl/ 솔루션-오은영 선생님께/ 나는 이름이 없는 사람입니다/ 기상 레이더/ 모자는 많고 죄는 다양해요/ 괄호/ 좋은 인상/ 플라시보 1/ 플라시보 2/ 희망이 비껴갔다/ 턱/ 위너
해설 | 커튼 있는 집으로 오세요 송현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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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따돌릴 것처럼 혼잣말 : 서귀옥 시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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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게 아니라 웃고 싶은 거라면 해볼게”
이상하고 아름다운 혼잣말을 물고 태어난 미소 천사가 농담처럼 부려놓은 말들의 뒤통수 웃음 왕국에서 온 서귀옥 시인 첫 시집!
2012년 김유정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서귀옥의 첫번째 시집 『우주를 따돌릴 것처럼 혼잣말』을 문학동네시인선 230번으로 펴낸다. 당시 수상 소감에서 “대낮 길거리에서 번개를 맞은 것 같”은 기분으로 “죽고 못 사는 애인 삼아 시를 좇”아왔다고 밝혔던 시인이 13년 만에 첫 시집을 펴내는 그 시간차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어제의 뒤끝을 잡고 오늘을 시작하는” 각오로 선보이는 “쓰디쓴// 쇄신의 맛”(「리프레시」)이 시집 속에 번진다. 어제를 지우고 오늘을 새로이 시작하는 대신, 지난날의 그림자를 대롱대롱 단 채로 다시 태어나야 했던 것은 「유머」에서 언급되는바 “나답게,// 살아보”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였을 터이다. 즉,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이 첫 시집은 “나답게,// 살아보”기 위한 방책으로 ‘유머’를 장착한 시인이 우스갯소리인 척, 싱거운 농담인 척 짐짓 부려놓은 ‘유머 모음집’인 셈이다. 물론 그 유머는 “비행하는 새보다 비행을 저지르는 새가 웃”긴다며 “나는 거 그만두겠다고 날개 꺾은 타조의 극단적인 유머”(「유머」) 같은 구석이 다분하다. “사채 받으러 와선 쪼잔하게 새끼손가락만 달라는 어깨들이, 죽고 싶어도 못 죽게 뒤를 봐주는 것 같은…… 농담”(「지인들」), “꿈에서 추락하면 키 큰다는 말” “완전히 새 됐다는 유머”(「집이 날아갔다는 말을 들었다」)를 들으며 하하 웃고 돌아서는 뒤통수가 따갑다면, 이미 패기만만한 신인의 재기에 걸려들었다는 방증이다. “이번 생이야말로, 리미티드에디션”인데 “SALE, 그러니까 살래?”(「경영 철학」) 물론 “고객님이 주문한 생”이므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언박싱”(「클레임」) 후 반품은 사절입니다. 1부에 붙은 제목 ‘암암리에 여럿의 나를 옮겨다니는 동안’은 홀로 공글리던 혼잣말이 “죽다 살아날 때마다 새로 생기는 한 가닥 실낱처럼 희고, 경쾌”(「클레임」)한 웃음이 되기까지의 긴 세월을 어렴풋이 짐작게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첫머리에 놓인 「貴玉」은 시인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시적 화자의 자기소개서로 읽어봐도 좋겠다.
벵골고무나무 화분에 노란각시버섯이 생겨났다
분실물을 되찾은 것처럼 흐뭇했으나
(……)
엄마가 아버지 몸에서 나를 빼돌린 이후, 나도 내 안의 타인을 떠돌았다 시도 때도 없이 발광해 스크래치가 잦던 열네 살을, 친구 연애 미래…… 포기한 것들이 가장 빛나던 스물네 살을, 영혼까지 털어도 생활에 윤기가 돌지 않던 서른네 살을……
암암리에 여럿의 나를 옮겨다니는 동안
퇴거 명령 아니면 병명 선고 받을 때 근근이 빛을 발하는 이름 하나 남았으나
돌아왔으니, 됐다 _「貴玉」 부분
화자는 화분 귀퉁이에 생긴 노란각시버섯을 보고 내심 반가워한다. 습한 환경에 놓인 화분에서 흔히 자라는 독버섯으로, 식용해선 안 되지만 당장 식물에 이렇다 할 해를 끼치지도 않는 작고 요상한 생명체는 시인과 닮아 있다. 버섯 포자가 공기중을 떠돌듯 그는 “내 안의 타인을 떠”돈다. 스스로를 호명하는 것으로 시집의 문을 열어젖힌 서귀옥은 1부에 수록된 시편을 통해 주류의 세계에서 누락된, 조금쯤 이상하지만 아주 드물지도 않은 존재들의 이름을 부른다. “세계는 넓고 아픈 사람은 많”으며 “안 보인다고, 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 속에서 기필코 “존재의 단서를 찾아”(「누락의 발견」)낸다. 그것은 시인이 “있어, 마땅한 사람”(같은 시)으로 세상에 자리매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2부 ‘벽 중독자’에 수록된 「사람이 서툴러 사람을 떠돌고 있다」는 1부에서 오랫동안 “내 안의 타인을 떠돌”던 배회의 대상을 “사람”으로 확장한다. 그간 내면과 불화하던 화자의 시선이 조금씩 바깥 세계를 향해가고 있다는 뜻이다.
못 박는 일에 번번이 실패했다
벽에 부딪혀 튕겨나온 못마다 쓸쓸한 뒤통수가 생겼다
벽 보고 앉아 혼잣말 세게 하면 우주를 따돌린 것 같은 못, 된 기분도 그렇게 생겼다
젖은 벽지를 손보다 보았다 못 자국들 멋대로 흔적을 남긴 노크들
벽도 못을 견디었던 것이다 _「사람이 서툴러 사람을 떠돌고 있다」 부분
이번 시집의 제목 ‘우주를 따돌릴 것처럼 혼잣말’은 앞 시의 “벽 보고 앉아 혼잣말 세게 하면 우주를 따돌린 것 같은 못, 된 기분”이라는 시구를 변주한 것이다. 그것은 외로움을 걸어두려는 양 혹은 세상에 화풀이하려는 심산인 양 벽에 못을 박듯 내뱉은 혼잣말이 실은 바깥을 향해 노크한 흔적이었음에 대한 고백인 동시에, 못처럼 “차고 뾰족한 말끝”으로 주변 사람들을 상처 입혔을지도 모른다는 자기 반성으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못, 된 기분”에서 활용된 쉼표의 기법이 서귀옥의 시에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글쓰기에 흔히 쓰이기에 독자에게 낯설지 않을 법한 중의적 의미 또는 동음이의어를 시인은 쉼표를 찍음으로써 다시 한번 멈춰 읽게 한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송현지는 이처럼 뻔하고도 엉뚱한 자리에 놓인 쉼표의 역할, 즉 “감추어진 것들을 꺼내어놓는” 시인의 ‘어설픈 위장’에 주목한다. 특히 “살고 싶어 죽겠어, 죽겠다고!”(「클레임」) 혹은 “살고 싶어, 죽겠다!”(「지인들」)와 같은 내적 외침이 드러나는 대목에서 “쉼표의 구분으로 ‘죽겠다’는 발화자의 의지를 강조하”는 한편, “‘살고 싶다’는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가”는 이들의 내면을 헤아린다. 이어지는 3부 ‘삶을 연기할 땐 살아 있는 척’은 이러한 쉼표의 위장술을 시 전반으로 확대한다. TV 프로그램, 광고, 영화, 대중가요, 유행어를 시 곳곳에 등장시킴으로써 독자의 눈을 속인다. 이를테면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지속하기도 끝내기도 애매할 때 시트콤 엔딩의 로고송이 끼어들고(“Cuz you are my girl~ [제작지원: 카페베네]”, 「이건 너무하잖아」), 수치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릴 땐 영화 〈듄〉에 나오는 아라키스 원주민의 방식으로 인사를 한다(“퉤! 받은 게 너무 커서 돌려줄 방법이 없을 땐 다른 행성의 전략을 빌려 프레멘식으로 인사할 줄도 안다”, 「수완」). 4부에 이르러 “살고 싶은 게 아니라 웃고 싶은 거라면 해볼게”(「유머」) 하고 다짐하는 화자는 그러므로 “프로의 내공”(「공들」)을 갖추어 “사는 데 명수”(「낚시의 명수」)가 되었다고 말해도 좋겠다. 시인은 그러나 흐르는 대로 쉽게 살아가기를 거부한다. 웃음 뒤에 숨겨둔 민낯을 정말로 모른 체하며 웃고 넘어가려는 이들을 불러 세우고 “웃으면 우습게 보인다고 누가 그래요?”(「좋은 인상」) 하고 반문하며 삶이라는 거대한 농담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속없는 유머는 되레 더 무서운 법이다. 「법정에 가요, 쇼핑하러」는 스스로를 피고인으로 가장한 화자가 그간 저지른 죄들을 뻔뻔하게 고백하는 시이다. 엄숙한 법정에 선 화자는 돈 대신 “꼬박꼬박 적립해온 불운들”을 모아 “조목조목 진열된 죄들”을 브랜드 제품 지르듯 저지르고, “피팅모델”처럼 “수의”를 걸친 채 “난 VVIP가 될 거야”라고 공표한다. 재미있는 상황극이라 여기며 “좋은 게 좋다고” 읽어내려가다 “등골이 오싹하고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옆구리가 쫙 쪼개지는/ 쇠 맛”(「미안, 미안…… 」) 같은 긴장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활짝 웃는 얼굴 아래에 “죽상”(「좋은 인상」)을 숨기고 “눈물을 단속하는”(「솔루션─오은영 선생님께」) 시인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안타깝게 여겨져야 할 생이 아니라, “벽 보고 앉아 있던 날들이”(「밧줄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해」) 달아준 훈장이 아닐까. 미소와 눈물이 뒤섞인 채 구겨진 그 얼굴이야말로 그저 “사람으로만 살”(「위너」)기에도 버거운 삶 속에서 끝끝내 지켜낸 사람의 얼굴이므로.
사람으로만 살아요
외모 능력 재력 운…… 그건 사람이라는 사실에 약간의 입체감을 주기 위해 연출한 포인트 펄 같은 거예요
반짝, 떴다 소멸하죠
강렬하고 화려하고 쨍한 것들 다 떼고 나면 비로소 시작되는 적나라한
사람, 그러고도 살아 있으면 이기는 거예요
천하의 왕세자비였던 사람이 비행기 화물칸에서 내렸다는 거, 알아요? 예우도 자비도 없죠 죽으면 한낱 수하물일 뿐이에요
루저면 어떻고 잉여면 어때요
얼어붙지 않으려고 멍을 옮겨 달고, 좀더 유연해지려고 구겨지는 거예요
차라리 새벽 첫 버스를 타요 출근이면 어떻고 퇴근이면 어때요
아주 잠들지 않게 열하나 열둘 열셋…… 가로등 폭죽을 터뜨리면서
자축하면서
살기만 해요, 우리 _「위너」 전문
■ 서귀옥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Q1. 20212년에 시인으로 데뷔하신 이후 13년 만에 첫 시집을 펴내게 되셨습니다. 시인과 생활인 사이를 오가는 정서가 시집 곳곳에 숨어 있기도 한데요. 오랜 시간을 건너 마주한 독자님들께 첫인사를 전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서귀옥입니다. 시가 안 돼서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약이려니 했으나 시는 적극적인 관리와 적절한 처방이 필요한 병 같은 것이더군요. 다행히 결핍에 내성이 생겨 근근이 버텼고 이렇게 첫 시집을 엮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 시집, 첫인사…… 왜 단어 앞에 첫,을 붙이면 심장이 간지러울까요. 문득 첫,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고 아름다운 열쇠처럼 느껴지네요. 두려움과 호기심의 경계에 놓인 문이란 문, 모두 열 수 있는 마스터키. 늦게 시작된 첫! 찰나의 순간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Q2. 이번 시집의 제목은 「사람이 서툴러 사람을 떠돌고 있다」 속 구절인 “벽 보고 앉아 혼잣말 세게 하면 우주를 따돌린 것 같은 못, 된 기분도 그렇게 생겼다”를 변주한 것입니다. 어떻게 쓰게 되신 문장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감정 교류에 서툰 편이에요. 사람 속에서 애쓰는 저를 보는 게 딱할 만큼이요. 쇼펜하우어를 곁에 두고 산 날이 제법 길어요. ‘타인의 부재에서 오는 감정적 고통이 외로움’이라면 저는 되게 아프진 않았거든요. 자발적으로 택한 혼자여서 그런지 오히려 심간이 편했어요. 그래서 주문 걸었죠. 나는 외로운 게 아니라 고독한 거다. 나는 타인보다 나를 알아가는 것이 재밌고 흥미진진하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가 될 수 없다는 데서 온다.’ 그렇게 믿으며 혼자 노는 법을 터득했어요. 그게 외로움이야! 누군가 찬물 끼얹으면, 나름 야무지고 확고한 외로움이라고 우길 수 있을 만큼이요. 타인도 나를 견디느라 아프겠지, 짐작하면서도 “사람을 떠돌고 있”는 저를 들키지 않으려고 우주를 따돌리듯 방문 걸어 잠그고 기껏 벽에다 화풀이하고 그랬어요.
Q3. 시집 전반에 말장난 또는 농담이 자주 눈에 띄어요. 그 유머 감각이 때로는 재밌고 때로는 의미심장하고 때로는 싱겁게 느껴졌어요. 선생님께 유머 혹은 웃음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이웃 할머니께 안부 인사를 하면 늘 웃으면서 “더 살아서 뭐해. 빨리 죽어야지” 그래요. 보양식 꼬박꼬박 챙겨 드시면서요. 누가 봐도 관심 가져달라는 소심한 부탁이잖아요. 웃으면 안 되는데 웃긴 상황 맞닥뜨릴 때마다 저렇게 유발된 웃음 속엔 어떤 고단함이 숨어 있을지 상상하곤 해요. 내가 처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웃을 수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게 제 유머의 핵심인 것 같아요. 현실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울 때 저는 실없는 소리 하면서 내적 공포랄까, 불안이랄까 그런 걸 싱겁게 만들어버려요. 물론 완전히 해소되진 않죠. 그래서 저는 과장되게 웃는 사람 보면 마음이 짠해요. 금방 들키는 거짓말처럼 어설픈 위장이 안쓰러워서요. 이 시집의 해설을 써주신 송현지 선생님도 제 웃음코드에 마음이 짠했나봐요. 살짝 인용해보면, “겉으로 보이는 경쾌함은 시 속 인물들의 비참을 부각시키는 장치”라거나 “위장의 목적이 그들 삶의 비극을 감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감춤에 실패하는 데 있다”거나 “우스꽝스러운 농담 같은 말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살아남기 위한 사투”라면서 위장 너머를 응시해주셨거든요. “독자가 그 경쾌한 표면을 벗길 때 시의 위장은 비로소 완성된다”는 따뜻한 말도 덧붙여주셨고요. 유머 속에 감춰진 진심을 오래 바라봐주신 것 같아 울컥, 했어요.
Q4. 이번 시집에서 특히 아끼는 시가 있다면 무엇인지, 그 이유와 함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끼는 것이 마음 쓰이는 거라면 「법정에 가요, 쇼핑하러」가 아닐까 해요. 법정을 백화점 가듯 가서는 안 되잖아요. 저는 백화점 없는 곳에서 살았어요. 처음 백화점 구경할 때 압도당한 기분, 잊을 수가 없어요. 점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와 범접할 수 없는 가격표, 무엇보다 먹고사는 데 필요 없는 고가의 장식품…… 갈 곳 못 된다 싶으면서도 뭐든 저지를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은 충동. 지금이야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가기도 하지만요. 법정도 다르지 않잖아요. 범죄 백화점, 비리 백화점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백화점이 쉬워진다는 생각을 해요. 죄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저지르다’에 대해 질문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나는 무관한가. 상상 속에서 수없이 죽인 것들과 대수롭지 않게 저지른 불법들 수면 위로 밀어올리면서, 자백하는 심정으로 써서 마음 쓰이는 걸 거예요.
Q5. 살아 있다는 실감이 필요한 존재들에 대한 기록으로 이 시집을 읽어봐도 좋겠습니다. 살아 있음을 감각하는 방식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시예요, 시! 시만 쓰면 아픈데, 그럴 때 제가 진짜처럼 느껴져요. 저는 매일 저에게 물어요. 오늘도 살아야 할 것 같지? 몇 개의 생활반응으로 알아낸 건 살아 있다는 정황일 뿐 물증은 아니잖아요. 이 시집 속에는 ‘살고 싶다’ 또는 ‘살아 있었네!’ 이런 구절이 더러 있어요. 저는 이런 말이 심증처럼 느껴져요. 살아 있을까? 의문이 들거든요. “살아야 할 것 같아서”(「다짜고짜 지인」). 저는 이 말이 좋아요. 딱히 살고 싶은 건 아닌데 성의 봐서 살아주겠다는 식으로 툭, 내뱉고는 어찌어찌 살아낼 것만 같아서요. 살짝 귀띔하자면, 가장 힘주어 쓴 문장이기도 해요. 그래서 부탁드려요. 시집 속에서 ‘살고 싶은’ 또는 ‘살아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 따뜻하게 들여다봐주시길. 만약 숨어서 안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안에 있어요?’ 한 번씩 물어봐주시길……
책속에서
미래를 처음 만났을 때
미래가 내 것도 아니고 아직 미래도 아니었을 때
놈은, 아스팔트 위에 펼쳐져 있었다. 타탄 패턴의 스키드 마크 때문일까. 스코틀랜드산 킬트를 입은 것처럼 보였다. 스포란과 백파이프만 있으면 영락없는 하이랜더였다.
더럽혀지기 전 병원에 데려가 탈골된 숨을 맞춰주려고 놈을 끌어안았다.
불확실한 미래를 떠안은 기분이었다.
지금껏 살아본 적 없는 시간대에 발 들인 것 같은, 지구본 위에 있지만 가본 적 없고 가고 싶지만 갈 방법은 모르겠는 스코틀랜드…… 내 꿈의 시발이었다. _「미래는, 내가 이름 붙여준 나의 골든레트리버」 부분
이사오는 동네마다 폐가가 있으니까 한 번쯤 살다 나온 집으로, 번번이 돌아오는 것 같다
어제보다 멀리 가보려고, 내일의 날짜로 딱지 접으면서 하이힐 커리어우먼 라이프스타일 캐리어…… 꿈에 주워들은 말들 흘리고 다니면서 차차 집 밖의 시간을 늘리면서 수순처럼 집을 빠져나왔고
집으로, 도망치지 않으려고
빗소리에도 젖는 벽과 지린 햇빛 몇 방울이 묻어 있는 창문과 가만히 누워서 올려다보면 타인의 발바닥이 발견되는 방으로 옮길 때마다 한 번씩 딴 맘 먹곤 했는데
집밥 먹으러 와!
서랍 안쪽에 둔 다이어리처럼 잘 숨길수록 크게 들키는 마음 _「요요」 부분
고객님이 주문한 생입니다. 피팅모델의 옷처럼 딱 들어맞을 순 없지요.
패셔니스타가 되겠다는 게 아니라 누굴 만나 어떤 말을 듣고 돌아와도 피가 아프지 않은 사람으로 딱 하루만 살아보고 싶다는 뜻이에요.
(……)
온라인 쇼핑이 그렇지, 좋은 게 좋지, 짧게 쓰고 버리면 그만이지……
그랬다, 나는 딴죽 한번 걸지 못하고 부실을 떠안은 채 살았다.
뒤섞인 박스 속에서 제 것을 찾아 관리실을 나가는 여자의 등뒤로 허밍 한 자락이 나부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