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거래 어플에서 귀신을 잡으며 자신만의 특별함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악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놓으며 위로를 얻는 등 환상적인 설정을 통해 청소년 독자들의 현실을 위로해 온 부연정 작가가 또 한 번 재치 있고 따뜻한 작품으로 돌아왔다. 『저승 우체부 배달희』는 소극적인 성격 탓에 매번 하고 싶은 말을 삼키던 열네 살 달희가 망자의 마지막 편지를 전하는 저승 우체부가 되며 겪는 성장담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우체부’라는 흥미로운 장치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동시에 가족, 반려견 등과의 이별을 겪는 인물들, 그들을 위로하며 변화해 나가는 주인공을 통해 감동까지 전한다. 멀어진 친구에게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던 달희가 담아뒀던 속마음을 용기 내어 꺼내 보이는 과정을 지켜보며 교우관계에서 고민을 겪는 청소년 독자들 또한 위로와 용기를 얻어갈 작품이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 열네 살 우체부의 특별한 배달 “갑자기 떠나와서 당황스러우시죠? 전하지 못한 진심, 제가 대신 전해드립니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먼저 말 걸어볼걸, 싫은 일은 단호하게 거절했어야 했는데, 엄마한테 괜히 짜증 내지 말걸…….’ 매일매일 주어지는 크고 작은 선택지 앞에서 청소년들은 매번 망설이고 후회한다. 특히나 새 학기 새 학년이면 더더욱 그렇다. 낯선 교실과 처음 만나는 선생님, 어색하기만 한 새 친구들을 마주하는 환경 속에서 청소년들은 관계마저 놓치기도 한다. 『저승 우체부 배달희』의 주인공인 달희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열네 살 달희는 소극적인 성격 탓에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조차 아니라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런 달희에게 어느 날 저승차사가 찾아와 죽은 자의 마지막 편지를 대신 전해주는 업무를 맡긴다. 얼결에 이 세상 유일한 저승 우체부가 된 달희는 매일 밤 특별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저세상을 오가며 망자의 편지를 배달한다. 늘 곁을 지켜주던 안내견 하루와 한 번도 제대로 놀아주지 않았던 것을 자책하는 시각장애인 세희 언니, 값비싼 학원비를 충당하느라 늦게까지 일하는 엄마에게 고맙다는 한마디 전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는 민재, 성적에만 신경을 쏟는 사이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친구 지우까지. 편지를 전해 받은 이들이 후회와 미련을 극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달희 또한 솔직하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순간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는다.
다가가기를 망설이는 이들에게 속삭이는, 후회 없이 진심을 전할 용기 “지금이 아니면 닿을 수 없는 마음이 있어.”
주인공 달희가 가진 가장 큰 후회는 ‘멀어진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지 못했던 것’이다. 작년까지 가장 가까웠던 절친과 이유도 모른 채 서먹해진 달희는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새로운 친구에게 다가가기를 어려워하며, 친했던 친구를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인사하지 못한 채 숨어버린다. 환경 변화 탓에 친구와 멀어진 달희의 모습은 교우관계에 혼란을 느끼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한때 뭐든 함께했던 친구와 어느 순간부터 말 붙이기조차 어려운 사이가 되었던 경험, 쑥스러움 탓에 관심 있던 친구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끝끝내 먼 사이로 남았던 경험 등 아직 관계 맺기에 서툰 청소년들이라면 누구나 곁에 있던 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를 마음속에 품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닮은 달희가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은 가까워지고 싶은 관계에 먼저 손 내밀어 볼 용기, 꼭 필요한 순간 당당히 마음속 진심을 내뱉을 자신감을 심어준다. 이뿐만 아니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망자들의 사연, 이승에 남은 이들의 회복 과정을 통해 친구나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못다 전했던 진심을 한 번쯤 꺼내 보일 힘을 건넨다. 『저승 우체부 배달희』는 먼저 다가가기를 망설이는 청소년 독자에게 후회 없이 진심을 전할 용기를 이어줄 힐링 판타지 성장소설이다. 달희가 이승과 저승을 넘어 편지를 배달했듯이, 지금껏 하지 못했던 한 마디를 건네고 싶은 모두에게 작품이 그 마음을 전할 기회를 열어주기를 바란다.
책속에서
[P. 44] 똑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함께 교문을 통과했다. 그러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한 곳을 바라보았다. 벚꽃나무에 돋아난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었다. 봄날의 연두색은 눈이 부실 만큼 선명했다. “재미없어.” 나도 모르게 그 말을 중얼거렸다. 언젠가부터 습관이 되어버린 그 말을. 삶이 재미있어지는 날이 과연 오긴 올까? 할 수만 있다면 게임처럼 로그아웃을 했다가 다시 접속하고 싶었다. 그럼 이번에는 좀 더 능력 있는 캐릭터를 선택할 텐데. 나처럼 소심하고 어중간한 캐릭터가 아니라.
[P. 88~89]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을까?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건 나답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제자리에 앉아서 상대가 말을 걸어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는데 상대방이 싫어하면 어쩌지? 거절당하면 무척 창피할 거야.’ 수만 가지 걱정이 용기를 꺾은 탓에 나는 한 번도 상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울고 있는 세희 언니를 안아줘야 할 것 같았다. 내겐 하루처럼 부드러운 털이 없지만 그래도 하루처럼 따뜻하게 언니를 위로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