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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국문초록 14

ABSTRACT 17

제1장. 서론 21

1-1. 연구 배경과 목적 21

1-2. 연구 대상과 범위 24

1-3. 연구 방법과 진행 26

제2장. 진전의 역사적 고찰 29

2-1. 원묘제도(原廟制度)와 진전 29

2-1-1. 원묘의 기원과 진전 건립 29

2-1-2. 진전 건립의 성행 32

2-2. 고려시대 진전 건립과 운영 38

2-2-1. 사찰 내 진전 38

2-2-2. 궁궐 내 경령전(景靈殿) 42

2-2-3. 태조 진전 47

제3장. 조선시대 진전의 건립 배경과 운영 56

3-1. 조선 초기 원묘제도의 정비와 진전 건립 57

3-1-1. 원묘 정비와 문소전(文昭殿) 건립 57

3-1-2. 외방 진전의 건립과 운영 61

3-2. 조선 후기 진전 건립과 운영 특성 68

3-2-1. 외방 진전의 소멸과 중건 70

3-2-2. 보장지(保障地) 진전의 건립과 운영 72

3-2-3. 도성 내 진전의 건립과 운영 75

3-2-4. 궁궐 내 진전의 건립과 운영 82

3-3. 조선시대 진전의 유형별 기능과 성격 87

제4장. 조선 초기 진전의 건축 규범 91

4-1. 문소전(文昭殿)의 건축 형식 91

4-1-1. 고례(古禮)와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적용 91

4-1-2. 고려 경령전(景靈殿)과의 비교 96

4-2. 진전의 건축 규범과 의례 101

4-2-1. 진전의 건축 규범 101

4-2-2. 진전 의례(儀禮) 107

4-2-3. 고려 진전과의 비교 111

4-3. 소결 116

제5장. 조선 후기 진전의 공간 구성과 변화 118

5-1. 외방 진전과 보장지 진전 118

5-1-1. 태조 진전 118

5-1-2. 장녕전(長寧殿) 146

5-1-3. 화령전(華寧殿) 158

5-2. 도성 내 진전과 궁궐 내 진전 167

5-2-1. 영희전(永禧殿) 167

5-2-2. 선원전(璿源殿) 190

5-3. 소결 211

제6장. 진전의 건축 특성과 변화 요인 214

6-1. 진전의 건축 특성 214

6-1-1. 배치와 공간 구성 214

6-1-2. 정전(正殿)의 형식 221

6-2. 진전의 변화 양상과 요인 224

6-2-1. 행례(行禮)를 위한 변화 224

6-2-2. 영정 보호 대책으로 인한 변화 240

6-3. 소결 249

제7장. 결론 252

참고문헌 256

표목차

[표 1-1] 연구 대상 진전 25

[표 2-1] 송나라 경령궁 주요 연혁 35

[표 2-2] 고려 인종연간 위숙군이 배치된 진전사원 40

[표 2-3] 태조-인종까지 왕위계승 (굵은 글씨는 위숙군이 배치된 진전사원에 배향된 왕과 왕후) 41

[표 2-4] 『고려사』에 수록된 상·장례 관련 신주 및 영정 봉안 주요 기록 43

[표 2-5] 소목제(昭穆制)에 따른 시기별 경령전의 영정 봉안 45

[표 2-6] 고려시대 태조 진영 및 소상 봉안 장소 48

[표 2-7] 고려시대 서경 성용전(聖容殿)에 관한 기록 51

[표 3-1] 조선 초기 진전 62

[표 3-2] 조선 후기 진전과 봉안 영정 86

[표 4-1] 조선 세종대 태조 진전의 제도 및 건축 관련 주요 기록 102

[표 4-2] 진전에서의 진설(陳設)시 위차(位次) 107

[표 4-3] 봉은사 태조 진전의 행례 위치와 동선 115

[표 5-1] 조선 후기 태조 진전의 건축 관련 기록 118

[표 5-2] 『북도능전지』에 기록된 준원전의 건축 구성 121

[표 5-3] 경기전 정전 영역의 건축 구성과 세부 수법 125

[표 5-4] 고지도에 보이는 경기전의 건축 구성과 특징 130

[표 5-5] 『조경묘경기전대수리등록』에 기록된 1872년 경기전 수리 내용 134

[표 5-6] 경기전 부속채의 건물별 기능 및 특징 140

[표 5-7] 장녕신전 건축 관련 주요 기록 150

[표 5-8] 「강화부궁전고」에 수록된 영정 봉안 건물 관련 기록 156

[표 5-9] 1662년(현종 3년) 남별전 중수 기록 169

[표 5-10] 『남별전중건청의궤(南別殿重建廳儀軌)』에 기록된 남별전의 건축 구성 172

[표 5-11] 『승정원일기』 수록 영희전 중건(1748년) 이전 건축 관련 주요 기사 174

[표 5-12] 『영희전지(永禧殿志)』에 수록된 영희전 각 건물의 규모와 특징 177

[표 5-13] 『승정원일기』 수록 영희전 증건 이후 건축 관련 주요 내용 179

[표 5-14] 영희전 제례의 종류와 특징 186

[표 5-15] 영희전 친향에 따른 진전 의례의 변화 187

[표 5-16] 『진전중건도감의궤』에 기록된 경운궁 선원전 중건 기록(이건 후) 205

[표 5-17] 선원전 증건 후 주요 건축물의 구성과 규모 208

[표 6-1] 진전의 배치 형식 214

[표 6-2] 1901년 이후 선원전과 영희전의 주요 건축 구성 비교 217

[표 6-3] 진전의 평면 형식 222

[표 6-4] 정전의 공포 형식과 닫집의 설치 유무 223

[표 6-5] 일제강점기 태조 진전 정전과 정자각의 건축구성 224

[표 6-6] 시대별 정전의 평면 형식 232

[표 6-7] 현존하는 진전의 구조와 규모 233

그림목차

〈그림 1-1〉 연구 진행 순서 및 내용 28

〈그림 2-1〉 북송대 경령궁의 위치 36

〈그림 4-1〉 문소전도 (국조오례의에서 모사) 92

〈그림 4-2〉 당나라 가공언(賈公彦)이 주장한 제후5묘제 100

〈그림 4-3〉 진전도(眞殿圖) (『국조오례의』에서 모사함) 103

〈그림 4-4〉 송나라 맹묘도(1373년 모사) 104

〈그림 4-5〉 진전 제례 시 추정 동선도 108

〈그림 4-6〉 문소전·의묘 사시속절 제례시 제품과 진설 (『국조오례의』에서 모사) 110

〈그림 4-7〉 숭선사지 중심 건물지 112

〈그림 5-1〉 준원전도 (『北道各陵殿圖形』 〈준원전도〉모사) 122

〈그림 5-2〉 규장각 소장 전주지도에 보이는 경기전 (군막과 시위청 표시함) 132

〈그림 5-3〉 완산부지도십곡병풍에 보이는 경기전 135

〈그림 5-4〉 경기전 배치도 (『慶基殿儀』에서 모사) 136

〈그림 5-5〉 조경묘경기전도형에 보이는 경기전 137

〈그림 5-6〉 강화부궁전도에 보이는 장녕전 153

〈그림 5-7〉 강화부궁전도 154

〈그림 5-8〉 장녕전 일곽(강화부궁전도) 155

〈그림 5-9〉 강화부궁전도에 보이는 만녕전(좌)과 봉선전(우) 157

〈그림 5-10〉 화령전 원형 추정 및 동선도 161

〈그림 5-11〉 진전도 175

〈그림 5-12〉 영희전도 175

〈그림 5-13〉 『춘관통고』에 수록된 〈영희전전도〉 (오른쪽이 북쪽임, 건물 명칭은 한글로 고침, 길의 명칭은 필자 기입) 180

〈그림 5-14〉 『남전속지(南殿續誌)』 수록 영희전 전우간가도 (명칭 및 칸수는 장필구 논문을 참조하여 재작성) 182

〈그림 5-15〉 『경모궁개건도감의궤, 1776년』 수록 경모궁전도 183

〈그림 5-16〉 『영희전영건도감의궤(1900년)』 수록 영희전 배치도 (검게 칠한 부분은 경모궁 자리에 영희전을 옮기면서 새로 지은 건물임) 184

〈그림 5-17〉 영희전 행례 시 위치와 동선 188

〈그림 5-18〉 영희전 진입 동선 189

〈그림 5-19〉 영희전 속절 제사시 찬품 진설도 (『국조속오례의』) 189

〈그림 5-20〉 동궐도 중 창덕궁 선원전 일곽 191

〈그림 5-21〉 선원전 북쪽에 위치한 부속 시설 192

〈그림 5-22〉 창덕궁 선원전 일곽(동궐도형 모사) 193

〈그림 5-23〉 조선고적도보 수록 창덕궁배치도 중 선원전 일곽 (검게 칠한 부분은 당시 현존 건물) 196

〈그림 5-24〉 북궐도형에 보이는 경복궁 선원전 일곽(명칭 필자 기입) 198

〈그림 5-25〉 조선고적도보 수록 경복궁배치도 중 선원전 영역 (검게 칠한 부분은 당시 현존 건물) 201

〈그림 5-26〉 경복궁배치도 중 선원전 영역 201

〈그림 5-27〉 경운궁 선원전 이건 후 위치 204

〈그림 5-28〉 『진전중건도감의궤』 수록 선원전도(건물의 명칭 및 칸수는 필자 기입) 206

〈그림 6-1〉 경복궁 선원전의 추정 동선 219

〈그림 6-2〉 현재 경기전에서 행해지는 제례시 제관의 위치와 동선 225

〈그림 6-3〉 집경전구기도(장서각소장) 227

〈그림 6-4〉 경기전 정전과 정자각의 지붕 구성 230

〈그림 6-5〉 우천시 화령전 영정 이안 추정 동선 242

〈그림 6-6〉 장녕(구)전의 협실 245

사진목차

〈사진 4-1〉 경령전 추정 17호 건물지(우)와 18호 건물지(좌) 97

〈사진 4-2〉 현행 경기전 제례 시 배위(拜位) 109

〈사진 4-3〉 숭선사지 추정 영당지 112

〈사진 5-1〉 준원전 정전 내부 공포 120

〈사진 5-2〉 준원전 정전 공포 120

〈사진 5-3〉 준원전 전경 122

〈사진 5-4〉 준원전 정전 122

〈사진 5-5〉 경기전 정전 영역 123

〈사진 5-6〉 경기전 감실 정면 125

〈사진 5-7〉 경기전 정전 보개천장 125

〈사진 5-8〉 경기전 감실 하부 석탑(石榻) 125

〈사진 5-9〉 경기전 내신문 127

〈사진 5-10〉 경기전 외신문 127

〈사진 5-11〉 2004년 복원한 경기전 부속채 영역 141

〈사진 5-12〉 목청전 정전 142

〈사진 5-13〉 목청전 외경 142

〈사진 5-14〉 목청전 추정 위치 (배경 사진은 구글어스에서 캡쳐) 143

〈사진 5-15〉 목청전 위성 사진 (구글어스에서 캡쳐) 144

〈사진 5-16〉 목청전 내부 144

〈사진 5-17〉 목청전 정전 현재 모습 145

〈사진 5-18〉 목청전 비각 현재 모습 145

〈사진 5-19〉 복원한 경희궁 자정전 149

〈사진 5-20〉 화령전 배면 아궁이 151

〈사진 5-21〉 일제강점기 화령전 정전 162

〈사진 5-22〉 화령전 전경 164

〈사진 5-23〉 화령전 정전과 이안청, 복도각 166

〈사진 5-24〉 화령전 정전 166

〈사진 5-25〉 화령전 정전 배면 화방벽 166

〈사진 5-26〉 화령전 정전 측면 아궁이 166

〈사진 5-27〉 화령전 재실 167

〈사진 5-28〉 화령전 전사청과 향대청 167

〈사진 5-29〉 창덕궁 옛 선원전 195

〈사진 5-30〉 경복궁 선원전 199

〈사진 5-31〉 1876∼1888년 사이의 경복궁 선원전의 모습 200

〈사진 5-32〉 선원전 행각 200

〈사진 5-33〉 박문사 정문 (경희궁 興化門을 뜯어다 사용함) 202

〈사진 5-34〉 박문사 본당 (왼쪽에도 한옥이 보임) 202

〈사진 5-35〉 博文寺로 옮겨진 선원전(일제 강점기 엽서) 202

〈사진 5-36〉 ‘(京城) 春畝山博文寺 庫裡と渡廊’라 쓴 일제 강점기 엽서 203

〈사진 5-37〉 선원전 정전을 ‘博文寺 庫裡’라 쓴 일제 강점기 엽서 203

〈사진 5-38〉 신선원전 정전 209

〈사진 5-39〉 신선원전 정전 내부 210

〈사진 6-1〉 집경전 구기도에 그려진 석구조물 227

〈사진 6-2〉 ‘집경전구기’ 비석 227

〈사진 6-3〉 경기전 정자각 231

〈사진 6-4〉 경기전 제례시 집례자와 준소의 위치(국립민속박물관 최순권 제공) 231

〈사진 6-5〉 경기전 제례시 정전 내부에서의 행례(국립민속박물관 최순권 제공) 235

〈사진 6-6〉 경기전 서익랑에 위치한 홍장(紅藏) 및 홍궤(紅櫃) 238

〈사진 6-7〉 경기전 현행 중양대제 시 동익랑에 설치된 소차(小次) (최순권 제공) 238

〈사진 6-8〉 조경묘 내신문 좌우의 첨각 239

〈사진 6-9〉 조경묘 서월랑 (홍장궤 설치) 240

〈사진 6-10〉 조경묘 동월랑 (1칸은 이안청) 240

도면목차

〈도면 4-1〉 경령전 추정 건물지 발굴 배치도 96

〈도면 4-2〉 경기전 정전 일곽 배치도 103

〈도면 4-3〉 개태사지 추정 금당지 112

〈도면 4-4〉 숭선사지 추정 영당지 발굴 평면도 112

〈도면 5-1〉 경기전 정전 일곽 종단면도 124

〈도면 5-2〉 경기전 정전 평면도 126

〈도면 5-3〉 경기전 정전 종단면도 126

〈도면 5-4〉 경기전 정전 정면도 126

〈도면 5-5〉 경기전 정전 동측면도 126

〈도면 5-6〉 장녕구전 추정 평면도 (남한산성에 복원된 좌전의 주간을 기준으로 작성) 146

〈도면 5-7〉 장녕신전 초기 추정 평면도 149

〈도면 5-8〉 장녕신전 이건 후 추정 평면도 154

〈도면 5-9〉 화령전 현황 배치도 163

〈도면 5-10〉 화령전 정전·복도각·이안청 현황 평면도 165

〈도면 5-11〉 신선원전 평면도 210

〈도면 5-12〉 신선원전 종단면도 211

〈도면 6-1〉 화령전 정전 원형 추정 평면도 246

초록보기

본 연구는 원묘제도(原廟制度)와 의례(儀禮)를 주된 관점으로 역사서와 고지도, 관련 의궤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 고찰하여 조선시대 진전(眞殿)의 건립 배경과 운영 특징, 진전의 건축 규범, 건축 특성과 변화 요인 등에 대해 규명하고자 했다.

원묘제도(原廟制度)와 함께 진전을 고찰한 결과 조선시대 진전은 일정한 규범 속에서 건립되고 운영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유형별로 성격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진전의 의례(儀禮)는 조선 초기에 정비되어 큰 변화 없이 조선 후기까지도 이어졌다. 다만 숙종과 영조대에 영희전이 왕이 친향(親享)하는 진전으로 격상되면서 이에 따른 절차만 일부 추가되었을 뿐이다. 연구 결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조선시대 진전의 건립 배경과 운영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조선시대 진전의 건립 양상은 중국과 고려와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조선시대 진전을 건립 목적과 기능에 따라 유형별로 분류하면 외방 진전, 보장지 진전, 도성 내 진전, 궁궐 내 진전으로 구분할 수 있다.

2. 조선 초기에는 국가에 공이 큰 왕 즉, 불천위(不遷位)를 위해 세우는 외방 진전만 건립하였다. 태조 진전은 한나라의 원묘제도(原廟制度)를 따라 외방 5곳의 진전을 운영하였다. 반면에 세조의 진전인 봉선전은 고려시대 상·장례(喪·葬禮) 절차를 따라 건립한 것이다.

3. 조선 후기에는 외방 진전 외에도 보장지 진전과 도성 내 진전, 궁궐 내 진전이 건립되었다. 조선 후기 진전 운영의 가장 큰 특징은 도성 내 진전인 영희전과 궁궐 내 진전인 선원전을 열성(列聖) 진전으로 운영했다는 점이다. 영희전은 조선 초기 외방 진전처럼 국가에 공이 큰 왕을 봉안하는 진전이었으며, 선원전은 세차(世次)를 따라 역대 왕을 봉안하는 진전으로서 왕실 가묘(家廟)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보장지 진전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대부분의 영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유사시를 대비할 목적으로 세운 임시 진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4. 열성 진전에서는 처음에 ‘소목제(昭穆制)’를 따라 영정을 봉안했으나 나중에는 서상(西上)의 원칙으로 영정을 봉안하는 ‘동당이실제(同堂異室制)’변화되었다. 그 시기는 영희전의 경우 1688년(숙종 14) 태조를 봉안하면서부터이고, 선원전은 1846년(헌종 12) 5실로 증건(增建)한 이후부터로 판단된다. 한편, 이안청(移安廳)에서는‘소목제’를 따라 영정을 봉안했다.

둘째, 조선시대 진전의 건축 규범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진전의 건축 형식이 완성되고 제도가 완전히 정비되는 시기는 1442년(세종 24)이다. 당시 정비된 진전의 모습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수록된 <진전도(眞殿圖)>와 같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진전은 대체적으로 문소전의 건축 구성을 따랐는데 그 이유는 진전과 문소전 모두 원묘(原廟)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2. <진전도>는 조선 초기 진전의 건축 규범으로 볼 수 있으며 진전이 3칸이라는 인식은 조선 후기까지도 이어졌다. 정전(正殿)은 묘(廟)의 건축 형식을 따라 전면에만 문을 내고 나머지 삼면은 벽으로 축조하였으며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다. 그러나 묘(廟)의 건축 형식은 영정 봉안에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에 1439년(세종 21)부터 정전 내 침실 바닥에는 온돌을 설치한다.

3. <진전도>에 보이는 익랑과 월랑, 첨각은 비가 올 때 행례를 대비할 목적으로 건립한 것이다. 이들은 정전(正殿)과 마당을 둘러 싸 제례를 위한 엄숙한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셋째, 조선시대 진전의 건축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진전의 보편적인 배치 형식은 중앙에 정전이 있고 정전 동쪽에는 별전(別殿)이 자리하며 서쪽에는 부속채 영역이 자리한다. 영희전의 경우 이안청이 정전 북쪽에 있는 것은 원종의 별묘(別廟)를 그대로 진전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2. 진전의 배치 구조는 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다르다. 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진전은 정전(正殿) 영역 동쪽에 어재실(御齋室) 영역이 자리한다. 화령전이 외방 진전임에도 불구하고 재실(齋室)이 동쪽에 있는 이유는 영희전을 모방한 이유도 있지만 왕이 직접 제사를 지낼 목적도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3. 선원전과 진전이 같은 열성(列聖) 진전임에도 불구하고 건축 구성이 서로 다른 이유는 의례의 차이 때문이다. 선원전에는 왕실의 여인들이 탄신다례(誕辰茶禮)에 참여하고 제수 마련에도 관여하였기 때문에 왕실 여인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선원전에 공통적으로 건립된 숙경재(肅敬齋)는 왕실 여인들의 재실(齋室)이며, 정전(正殿) 북쪽에 자리한 내재실(內齋室)은 왕실 여인들이 전배(展拜)하는 공간이었다.

넷째, 진전의 변화 요인은 행례를 위한 변화와 영정 보호 대책을 들 수 있다.

1. 진전의 변화 요인 중 행례를 위한 변화 양상은 태조 진전에 정자각이 부설되는 것과 정전 내부 공간의 확장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영정 보호 대책으로 인한 변화는 별전(別殿) 건립, 봉안 방법 변경 및 분합문(分閤門) 설치, 협실 부설과 온돌 설치, 화재 예방을 위한 온돌과 바닥 개조 등을 들 수 있다.

2. 태조 진전은 후대에 정자각이 부설된 것으로 판단되며 그 이유는 우천 시 준소(준所)를 가리기 위함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 건립된 진전에서 정면 퇴를 개방한 이유도 준소가 설치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태조 진전에 정자각이 부설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경기전을 볼 때 적어도 1658년(효종 9)년 이전에 부설되었음을 규명할 수 있었다. 이후 태조 진전은 정자각 형태로 인식됨에 따라 유사시 봉안처인 행궁(行宮)도 정자각으로 건립했으며, 1901년에 중건한 목청전도 정자각 형태로 건립되었다.

3. 정전(正殿) 좌우에 있는 협실(夾室)은 일반적인 묘(廟)에서 보이는 협실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공간이다. 열성 진전에 협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688년(숙종 14) 영희전에 태조 영정을 함께 봉안(奉安)하면서부터다. 협실을 부설한 본래 목적은 제상(祭床) 등 여러 물품을 보관하기 위함이었으며 통로로 사용되기도 했다.

4. 영희전과 화령전의 경우 협실은 방으로 꾸미고 온돌을 설치하였는데 그 이유는 정실(幀室)에 설치한 온돌만으로는 건물 안 습기를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가 내릴 때 영정을 옮기는 것을 대비하여 협실과 이안청을 연결하였다.

5. 진전은 영정을 봉안했기 때문에 습기에 취약한 영정을 보호하기 위해 온돌은 필수 시설이었다. 그러나 온돌은 화재의 위험과 연기(煙氣)로 인해 영정이 훼손될 수 있는 단점이 있어 1872년(고종 9)에 일괄적으로 대청(大廳)으로 개조하였다. 그러나 이후 온돌이 다시 설치되고 바닥재가 변경되는 이유도 모두 영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본 연구는 묘제(廟制)와 의례(儀禮)를 주된 관점으로 고찰하였기 때문에 진전의 배치 구조와 정전(正殿)을 위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또한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원형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향후 각 진전별로 부속채 영역을 포함한 건축 구성과 공간 활용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