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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국문요약 8
제I장 서론 10
제1절 연구목적 10
제2절 선행연구 검토 16
제3절 연구범위와 방법 28
제II장 동북항일연군의 패퇴와 하바로프스크회의(1935~1941) 36
제1절 동북항일연군의 결성과 패퇴 38
1. 코민테른 제7차 대회와 동북항일연군의 결성 38
2. 항일무장투쟁의 패배와 연해주로의 탈출 54
제2절 제1차·제2차 하바로프스크회의 64
1. 동북항일연군의 위상 64
2. 제1차 하바로프스크회의 74
3. 제2차 하바로프스크회의 80
제III장 남·북야영의 성립과 스탈린의 세력 확장 구상(1941~1942) 86
제1절 일소중립조약과 동북항일연군 남·북야영의 성립 86
1. 일소중립조약과 동북항일연군 대원들의 연해주 체류 86
2. 동북항일연군 남·북야영의 성립 94
제2절 소련 극동군 정찰부대에의 파견 99
제3절 스탈린의 세력 확장 구상과 제88여단 108
제IV장 제88여단의 창설과 조선인 공산주의자들(1942~1945) 119
제1절 소련극동군 제88여단의 창설과 편제·운영 119
1. 소련 극동군 제88여단의 창설 119
2. 소련 극동군 제88여단의 편제와 운영 130
제2절 소련극동군 제88여단 내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구성과 처지 142
1. 제88여단 내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구성 142
2. 제88여단 내에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처지 153
제V장 제88여단 내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위상(1942~1945) 158
제1절 제88여단 내에서 주요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위상 158
제2절 제88여단 내에서 김일성의 위상 165
1. 와다 하루끼·이재화 논쟁과 김일성의 군색한 처지 165
2. 『세기와 더불어(계승본) 제8권』에서 김일성의 술회 175
3. 제88여단 제1대대 대대장 김일성의 위상 179
제3절 김일성과 제88여단파의 귀국 189
제VI장 결론 199
참고문헌 204
ABSTRACT 230
〈표 2-1〉 1931-1940년 만주지역 항일무장부대 대원 수의 변천 45
〈표 2-2〉 동북항일연군의 지도부(1936-1941) 49
〈표 2-3〉 중국공산당 정규군과 유격대의 편제 비교 51
〈표 4-1〉 제88독립저격여단의 계급별·민족별 병력 수 131
〈표 4-2〉 東北抗日聯軍敎導旅部分人數統計表의 두 번째 표 132
〈표 4-3〉 북조선에서 일하게 될 제2극동전선 제88특별여단 제1대대 명단 144
〈표 4-4〉 제88여단파의 누적인원 152
〈그림 2-1〉 동북항일연군 제1·제2·제3로군의 활동지역 50
〈그림 2-2〉 노령에서 개편한 후의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편제 57
〈그림 2-3〉 제1로군 주요 사령관의 사망 57
〈그림 4-1〉 소련 극동군과 제88독립저격여단 조직도 134
〈그림 4-2〉 제88여단 제1대대 편성표 135
〈그림 4-3〉 제88여단파의 구성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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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소련의 스탈린은 어떠한 이유에서 제88여단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과 이들의 대표 격인 김일성을 북한 정치의 주도세력으로 올려 세웠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제88여단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아 이들의 1930년대 후반 이래 십여 년 동안의 행적을 추적·조사하고 재검토함으로써 현대 북한 핵심지배집단의 기원과 형성과정을 비판적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것을 연구목적으로 하였다.
본 연구의 시적 범위는 1935년에서 1945년까지이다. 연구방법으로는 역사적 접근방법이 사용되었다. 주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체계화하고 분석하여 시간적 흐름에 따라 서술하고 설명하여 가는 것이 역사적 접근방법이다. 아울러 본 연구에서는 주요한 인과관계와 그렇지 않은 인과관계를 구분하고 인과관계의 경중을 가늠하는 데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30년대 후반에 중국의 만주 지역에 머물러 살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 중 일부가 동북항일연군에 편제되어 만주 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했던 바 있었다. 동북항일연군은 명색으로는 중국공산당 산하의 부대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소련이 주도하는 코민테른의 지도 아래 놓여 있었다.
소련은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 사이에 붕괴 직전의 상태에 이른 동북항일연군의 잔존 대원들을 연해주로 불러들였다. 소련 극동군 측과 동북항일연군의 지도부는 1940년 초와 1941년 초의 제1차. 제2차 하바로프스크회의를 통하여 동북항일연군의 잔존 대원들을 소련의 연해주로 불러들여 교육과 훈련에 힘써서 훗날을 기약한다는 데 큰 틀에서 합의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41년에 연해주에 남·북야영이 성립하게 되었고, 1942년에 와서 남·북야영은 대대적인 재편성과정을 거쳤다. 이 재편의 결과가 소련 극동군 제88여단의 창설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소련은 전쟁이 진전되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종전(終戰) 이후 세계질서 수립과정에서 자국의 세력권을 최대한 확장시킬 수 있도록 사전 포석과 준비 작업을 진행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1942년 6월에 스탈린이 직접 지시함으로써 창설된 소련 극동군 예하의 제88여단은 이러한 사전 포석과 준비 작업의 일환이었다.
제88여단의 김일성 등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의 요구에 따라 정식으로 소련 군인이 되어 소련에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소련 측이 판단하기로는 제88여단 시절의 김일성은 소련 측에서 그 행보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88여단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친소적인 인물이었다.
1940년대 전반에 수년간 소련 극동군 제88여단에서 교육·훈련받은 김일성등의 제88여단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직후 스탈린의 선택에 의해 북한 정치의 전면에 내세워졌다. 이들이 갖추고 있던 소련에 대한 충성심과 군사적 경험이라는 자질이 주효했던 것이다. 제88여단파라는 소련 군대 출신의 군인집단이 북한 정치의 본류가 되고 그 후 북한의 핵심지배집단으로 공고화되어 갔다는 사실은 오늘날 북한 체제의 성격과 속성 그리고 변화의 방향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를 탐구하는 것은 향후의 과제로 남겨놓아야 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 사용한 역사적 접근방법은 현상에 대한 분석의 엄밀성이나 정교함에 있어서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하여 역사적 접근방법이 기본이 되고 이를 여타의 사회과학적 접근방법에 의해서 보완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보다 더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원문구축 및 2018년 이후 자료는 524호에서 직접 열람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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